(IPO 거품론)③공모가 '뻥튀기' 막다 저평가 늪에 빠지나
상장 지연에 몸값도 낮춰…LG씨엔에스 폭락 여파
금융당국, 제도개선 시행 전에 이미 시장서 '효과'
지나친 규제 '우려'…수요예측에 개인투자자 참여도
공개 2025-03-13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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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공개(IPO) 시장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파두 사태 이후 공모가 적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면서, 투자자 보호와 시장 정상화에 대한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기업가치 산정 기준부터 수요예측 방식, 증권사의 역할까지, 시장 구조 전반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IB토마토>는 IPO 시장의 성적표를 분석하고 시장 정상화 가능성을 진단하며 개선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홍준표 기자] 금융당국이 기업공개(IPO) 제도 정비에 나서면서 '공모가 뻥튀기' 논란은 다소 진화되고 있는 분위기지만, 일각에선 부작용 가능성을 제기한다. 금융당국의 압박이 '노시보 효과'로 번지면서 오히려 저평가 논란이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다.
 
1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IPO 시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격하게 얼어붙어 몸값을 최대로 깎거나, 상장 시기를 늦추자는 분위기다. 
 
특히 LG씨엔에스(064400)의 상장 이후 상장사 9곳 중 8개 기업의 주가(10일 종가 기준)가 공모가를 웃돌고 있음에도,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다. LG씨엔에스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코스닥에 입성한 엠디바이스(226590)(+46%), 대진첨단소재(393970)(+58%), 엘케이켐(489500)(+26%), 위너스(479960)(+72%), 모티브링크(463480)(+67%), 동국생명과학(303810)(+14%), 오름테라퓨틱(475830)(+36%), 아이에스티이(212710)(+2%) 등은 현재 주가(10일 종가 기준)가 공모가를 상회하고 있고, 공모가를 밑도는 곳은 동방메디컬(240550)(-9%)뿐이다. 
 
사진=한국거래소
 
상장 늦추거나 '몸값 반 토막' 감수
 
올해 초 코스피에 입성할 것으로 기대됐던 케이뱅크와 DN솔루션즈는 아직까지 재도전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케이뱅크는 지난해 10월에 이어 올해 1월에도 상장을 철회, 저평가를 경계하면서 4수 시기를 재고 있고, DN솔루션즈는 늦으면 올 하반기 상장에 무게를 두고 증권신고서 제출 시점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달리 서울보증보험, 씨케이솔루션은 이번 달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 재차 도전하면서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상장을 미루는 대신 몸값을 반 토막 수준까지 대폭 낮췄기 때문이다.
 
오는 14일 코스피에 신규 입성하는 서울보증보험은 2023년 첫 IPO 도전 당시에 비해 공모가 희망 범위를 30% 이상 낮췄음에도 수요예측 부진으로 희망밴드(2만6000~3만1800원) 최하단인 2만6000원으로 확정했다. 이에 따른 예상 시가총액은 1조8000억원으로, 당초 몸값으로 최대 3조6000억원을 기대했던 것과 비교하면 가치가 절반이나 깎인 셈이다.
 
이차전지 관련 기업인 씨케이솔루션은 공모주식수를 대폭 줄이는 방식으로 몸값을 줄였다. 공모가는 희망밴드(1만3500~1만5000원) 최상단인 1만5000원으로 확정됐지만, 지난해 314만5000주를 공모하겠다는 계획을 접고 150만주로 절반 넘게 축소했다. 이에 따른 예상 시가총액은 최대 2264억원에서 164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IB업계 관계자는 "LG씨엔에스의 주가 하락 여파가 여전하다"라며 "대어로 꼽히는 서울보증보험의 상장 이후 분위기를 보고 향후 상장 도전 흐름도 변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당국 '칼질' 압박에 부정적 효과 나타나
 
금융당국의 IPO시장 제도 개선 발표 등으로 노시보 효과가 번졌다는 진단도 나온다. 금융당국의 개선 방안이 실제로 시행되지도 않았음에도 그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이 이미 확대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금융당국은 지난 1월 공모가 산정 왜곡 등을 막기 위한 'IPO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단기차익 목적 투자에서 기업가치 기반 투자 중심으로 제도를 정비하기 위한 목적의 ▲기관투자자 의무보유확약 확대 ▲수요예측 참여자격·방법 합리화 ▲주관사 역할·책임 강화 등 세 가지 방안이다.
 
의무보유확약 위반자에 대한 처벌 강화는 4월부터, 의무보유확약과 관련한 우선배정제도와 가점 확대, 정책펀드 의무보유확약 확대 등은 오는 7월부터 시행된다.
 
다만 해당 개선 방안들은 기존 제도를 단순히 강화한 것에 가까워 본질적인 대책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일찍이 제기된 바 있다.
 
대표적으로 주관사의 의무보유(락업) 기간을 최소 3개월에서 최대 6개월로 늘리겠다는 것이지만, 현행 규정으로도 취득가와 공모가의 차이가 50% 이상일 경우 6개월간 의무보유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같은 6개월 의무보유 기준을 취득가와 공모가 괴리율 50%가 아닌 30%로 줄여 제도를 강화하겠다는 것이지만, 업계에선 실질적인 효과보단 노시보 효과가 더 컸다는 평가다.
 
이외에도 의무확약 위반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기관투자자의 자격을 강화하는 등 기존 규제 내용을 단순 확대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IB업계 관계자는 "가장 큰 문제는 장기적인 추세 속에서 국내 상장사들의 가치가 공모가와 비교해 지속적으로 하락한다는 것이 핵심이지만, 문제의 방점이 공모가에 치중된 나머지 단순 몸값 낮추기에만 급급한 것이 현재 IPO시장의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올해 초 금융당국의 개입으로 인한 노시보 효과가 나타나면서 한파가 불고 있다"라며 "오히려 상장 시기를 늦춘 기업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공모주 저평가 현상이 나타나면서 몸값을 크게 낮추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나친 규제가 시장 망가트릴 수 있어"
 
일각에선 공모가 결정에 개인투자자 청약률 정보를 활용하지 못하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현행 제도는 주관사가 우리사주조합 배정(20%) 여부에 따라 기관투자자에는 60~80%, 개인에게는 20~30%의 IPO 공모주를 배정하고 있다. 주관사는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수요정보를 받아 결정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지만, 현실적으론 개인투자자들의 IPO 공모주 투자 확대로 인해 상장 이후 주가의 변동이 심하게 나타나고 있어 이를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지난해 9월경 기관들을 대상으로 개인투자자들의 수요예측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IPO 공모주가 아닌 공모 회사채 발행에 대한 설문조사였지만, 불량 채권을 선별해내는 능력과 가격 발견 기능 등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설문에 참여한 기관투자자들 모두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대만·홍콩의 경우, 개인투자자도 수요예측에 참여한 뒤 공모가를 결정하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홍콩은 주관사가 최대 2주간 기관투자자 대상의 수요예측을 진행한 뒤 공모가 희망밴드를 설정, 마지막으로 3~4일에 걸친 개인투자자 공모 절차를 거친다. 대만도 주관사는 4영업일 동안 기관투자자 대상의 수요예측을 진행하며 수요예측 2일차부터 개인투자자 대상으로 공모한다. 일본은 상장 후 시초가가 공모가를 크게 웃도는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일본증권업협회와 관계당국 간 협의를 거쳐 개인투자자도 수요예측에 참여시키도록 관련 제도를 손질했다.
 
나아가 전반적으로 금융당국의 징벌적인 수단을 앞세운 규제 강화 등으로는 제도 개선의 한계가 뚜렷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특례상장과 관련한 규제 강화가 자칫 잘못하다간 IPO시장 경쟁력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영국의 경우 지나친 규제로 인해 지난해 런던증권거래소(LSE)의 상장사 수는 2008년 대비 40% 감소했으며, 생명과학·기술 분야의 영국 기업들은 소수만 런던에 상장하고 미국·프랑스·네덜란드 등지로 탈출하는 상황이다. 영국은 최근 상장 간소화, 차등의결권 제도 확대 등을 통해 경쟁력 회복에 나섰는데, 우리나라도 제도 개선 방향에 있어 글로벌 경쟁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IB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수요예측 과정에서 개인투자자들의 참여는 일정 기간 혼란이 예상되지만 장기적으로 공모가의 적정성에 대한 논란은 일부 해소될 수 있다고 본다"라며 "제도 정비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IPO시장 경쟁력도 고려한 조치가 나오길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홍준표 기자 junpy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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