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정준우 기자] 이차전지 장비 업계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감소 현상)으로 수주 잔고가 감소하는 가운데
피엔티(137400)는 수주 잔고를 늘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업계 불황에도 불구하고 수주 잔고를 늘릴 수 있었던 것은 사업 다각화 때문으로 보인다. 동종업체들이 이차전지 장비 제조 사업에서 매출 대부분이 나오지만, 피엔티는 전자 관련 설비 제조 사업인 소재 사업의 수주 잔고가 크게 늘면서 이차전지 설비 사업 수주 둔화 문제를 해소하고 있다. 피엔티는 LFP배터리 소재 공급 등 신사업과 기존 이차전지 제조 사업의 고도화를 통해 불황을 돌파한다는 방침이다.
(사진=피엔티)
동종업계 수주 감소에도 나홀로 ‘증가'
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피엔티는 지난해 매출 1조351억원, 영업이익 1632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직전연도와 비교했을 때 매출(5454억원)은 89.8%, 영업이익(769억원)은 112.2% 증가했다.
높은 매출과 영업이익 증가는 수주 잔고 증가 덕분이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피엔티의 수주 잔고는 1조8947억원으로 직전연도 말(1조8308억원)에서 3.5% 증가했다. 아울러 지난 1월 피엔티는 추가 설비 수주 등으로 수주 잔고가 2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파악된다. 수주 산업의 특성상 수주 잔고는 시간차를 두고 매출로 전환되기 때문에 수주 잔고가 늘어나면 향후 매출도 늘어날 수 있다.
다만, 수주 잔고 구성비를 살펴보면 이차전지 설비 수주 잔고는 1조5535억원으로 2023년 말 대비 2.2%에 그쳤다. 따라서 소재 사업의 수주 잔고 증가가 전체 수주 잔고 증가를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소재 사업은 전자 회로 등을 제작하는 설비 제조 사업이다. 소재 사업의 수주 잔고도 2023년 말 기준 3107억원에서 지난해 3분기 말 3412억원으로 9.8% 늘었다.
소재 사업부는 전자 시장의 영향을 받는데, 최근 인공지능이 탑재된 전자기기 출시를 앞두면서 설비 투자도 늘어나고 있어 피엔티의 매출 및 수주 포트폴리오에서 비중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국내 정보통신기기 산업 생산량은 전년대비 5~10% 증가가 예상된다. 아울러 가전과 디스플레이 등도 5% 이내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피엔티의 소재 사업은 매년 비중이 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총매출에서 설비 제조 매출 비중은 75%, 소재 사업은 20%를 차지했다. 2023년 3분기 매출 구성은 설비 제조 매출 88%, 소재 사업 7%였다. 1년 사이 소재 사업의 비중이 3배 가까이 늘었다.
피엔티는 소재 사업의 선전에 힘입어 동종업계가 수주 잔고 감소를 겪고 있는 가운데도 수주 잔고 증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피엔티의 동종업체들은 지난 2023년 말 대비 지난해 3분기 말 수주 잔고 감소율이 34~39% 수준에 달했다.
사업 다각화가 안 된 업체들은 수주 잔고가 증가세로 돌아서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장비 제조사의 수주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차전지 제조사들의 설비 투자가 줄어들고 장기화될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LG에너지솔루션(373220)은 올해 필수 투자를 중심으로 집행하되 시급하지 않은 투자는 이연 혹은 조정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삼성SDI(006400)도 올해 투자 축소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사업다각화로 이차전지 불황 대응
이차전지 제조사의 설비 투자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피엔티는 기존 소재 사업뿐 아니라 LFP배터리 소재 사업 등 신사업, 이차전지 사업의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피엔티는 LFP배터리 소재 사업에도 진출했다. LFP배터리는 낮은 가격을 바탕으로 점유율을 늘리고 있는 이차전지로 가성비 배터리로 인식된다. 이에 전기차 업계도 LFP배터리 채택을 늘리는 추세다. 다만, 지난해 3분기 기준 피엔티의 LFP배터리 소재 사업 매출은 11억원으로 총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한 수준이다. 아직 국내 이차전지 제조사들이 LFP배터리 사업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기존 사업을 고도화해 수주 잔고를 늘리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업계에 따르면 이차전지 건식 공정 설비와 전고체 배터리 설비가 사업 고도화 방안으로 꼽힌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피엔티의 건식 공정 및 전고체 배터리 설비 수주 잔고 비중은 2%에서 점차 늘며 현재 5% 수준인 것으로 파악된다. 피엔티는 이차전지 제조사와 공동으로 전고체 배터리 연구개발을 하며 설비 수주까지 따낸 것으로 알려졌다.
건식 공정을 채택하는 경우는 앞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테슬라는 건식 공정으로 일부 배터리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국내 이차전지 제조사들은 오는 2027~2028년 건식 공정을 적용할 예정이다. 업계에 따르면 건식 공정은 습식 공정에 비해 제조 비용을 20~30%가량 낮출 수 있다. 또한 전고체 배터리는 화재 위험도가 기존 리튬 배터리보다 대폭 낮아진다는 장점때문에 주목받고 있다.
피엔티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기존에 확보한 수주 잔고를 바탕으로 기존 이차전지 설비 수주를 확대하고 소재 신사업도 진행하며 성장을 도모하는 중”이라며 “전고체 배터리 관련 사업은 현재 연구개발과 매출 발생이 하면서 사업화가 진행 중”이라 말했다.
정준우 기자 jw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