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자금 조달 전략을 다각화하고 있다. 금융지주사의 위험가중자산 관리가 핵심 경영 지표로 떠오르면서, 대표 자회사인 은행들도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받고 있다. 특히 기준금리 인하로 수익성 둔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저비용 자금 조달의 중요성이 한층 커지고 있다. <IB토마토>는 은행권의 자금 조달 전략을 심층 분석하고, 이러한 전략이 주요 경영 지표에 미치는 영향을 짚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이성은 기자] 4대 시중은행이 전통적인 자금 조달 방식을 강화하고 있다. 비용 절감 경쟁이 치열해진 데다 잇따른 수익성 악화 전망 속에서 일반 관리비와 조달 비용을 줄이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금 조달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저원가성 예금을 확대하기 위해 상품 다양화에도 힘쓰고 있다.
사진=각 사
저비용 자금 확보 경쟁 본격화
12일 금융업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의 요구불성 예금은 528조2000억원이다. 이는 핵심예금과 시장금리부 수시입출금식 예금(MMDA)을 합한 값이다. 요구불성 예금은 입출금이 자유롭다. 사용자는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낮은 금리를 제공받는다. 반면 은행 입장에서는 언제든 빠져나갈 수 있는 돈이지만, 아주 적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요구불 예금은 대표적인 저원가성 예금이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확보하느냐에 따라 은행의 자금 운용과 수익성이 좌우된다. 이에 따라 4대 시중은행 간 저원가성 예금 유치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국민은행은 은행권 최초로 스타벅스와 협업을 추진 중이다. 다음 달 출시 예정인 ‘스타벅스 전용 통장’을 통해 저원가성 예금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 통장은 스타벅스 앱에서 계좌 간편 결제를 지원하며, 기존 스타벅스 카드 결제 시 제공되던 리워드를 통장 결제에서도 동일하게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스타벅스 고객층을 은행 고객으로 끌어들이며 저원가성 예금을 늘리려는 전략이다.
신한은행은 '모임 통장' 서비스에 집중하고 있다. 2021년 첫 선을 보였으나 실적 부진으로 서비스를 철수했다. 지난달 서비스 강화와 함께 재출시하면서 영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광고 모델로 유명 연예인을 기용하고, 모임비 지원 이벤트도 진행 중이다.
우리은행은 2018년 모임 통장 시장에서 철수했으나 최근 다시 뛰어들었고, 하나은행도 신속히 대응에 나섰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연 3% 금리의 급여 통장을 출시하며 급여 이체 고객에게 우대 금리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저축성 예금 줄고, CD·RP 등 늘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4대 은행이 저원가성 예금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이유는 올해 1월 은행권의 수신 추이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월 저축성 예금과 실세요구불예금 모두 감소한 반면, 양도성예금증서(CD)와 환매조건부채권(RP), 표지어음 규모는 증가했다.
1월 한 달간 은행권에서 빠져나간 저축성 예금은 33조1000억원으로, 이중 29조2000억원이 수시입출식 예금이었다. 실세요구불예금은 어음, 정부 관계 예금 등을 제외한 값으로, 한 달 동안 3조1000억원이 감소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실세요구불예금을 비롯한 저축성 예금이 증가했으나, 이번에는 반대 흐름을 보였다.
4대 시중은행이 뒤늦게 모임 통장 서비스를 강화하는 배경에는 인터넷은행의 성공 사례가 있다. 카카오뱅크와 같은 인터넷은행은 저원가성 예금을 기반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다. 지난해 말 카카오뱅크의 수신 잔액은 55조원으로, 요구불예금이 33조 300억원을 차지했다. 정기예금은 13조 8000억원, 정기적금은 7조 7000억원으로 저원가성 예금 비중이 높다. 특히 모임 통장 잔액은 8조 4000억원이다. 전체 수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6%로 전년(55.3%)보다 5.3%p 증가했다. 이는 4대 시중은행의 평균 저원가성 예금 비중보다 22.3%p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말 4대 시중은행의 요구불성 예금 비중(원화 조달 자금 기준)은 ▲국민은행 37.8% ▲신한은행 46% ▲우리은행 36.5% ▲하나은행 36.8%였다. 5년 전과 비교하면 국민은행의 비중이 4.4%p 하락하며 감소 폭이 가장 컸다. 반면 저축성 예금, 시장성 예금(CD·RP 등), 원화 발행 채권 비중은 증가했다.
카카오뱅크는 높은 저원가성 예금 비중 덕분에 자금 조달 비용을 크게 낮췄다. 2023년 말 기준 카카오뱅크의 누적 자금 조달 비용률은 2.37%다. 지난해에는 1분기 2.42%에서 점차 하락해 4분기 2.22%까지 떨어졌다. 2023년 4대 시중은행 평균 누적 조달 비용률은 2.74%다. 같은 기간 카카오뱅크에 비해 0.37%p 높았다. 지난해 3분기에는 카카오가 2.33%, 4대 시중은행이 2.71%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
조달 비용률은 자금 중 금융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로, 낮을수록 은행이 더 저렴하게 자금을 조달했음을 의미한다. 이는 원가 절감으로 이어져 수익성을 높이는 핵심 요인이다. 인터넷은행의 성장 배경에는 이러한 저비용 조달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저원가성 자금 조달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라면서 "인터넷 은행의 사업 영역으로도 뻗어 나가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성은 기자 lisheng12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