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새 회계기준인 IFRS17이 도입된 지 3년째지만 혼란은 여전하다. 보험 상품에 적용하는 각종 계리적 가정이 계속 조정되고 있어서다. 보험사 재무 상황은 그때마다 요동쳤다. 업계와 학계 곳곳에서는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 설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들린다. <IB토마토>는 IFRS17의 조정이 보험사에 미치는 영향과 주요 쟁점을 짚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황양택 기자] 보험업계가 지난해 4분기 무·저해지 상품 가이드라인을 적용한 결과, 결산에서 대규모 계약마진(CSM) 조정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금융당국 권고에 따라 상품 해지율을 더욱 보수적으로 잡은 탓인데, 대형 보험사도 CSM이 크게 부진했다. 새 국제회계기준인 IFRS17 도입 이후 계속되고 있는 제도적 불확실성이 보험 업종의 리스크가 됐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무·저해지 해지율 산출 강화에 ‘CSM 조정’
적용된 가이드라인은 무·저해지 상품 해지율 산출 기준 조정, 단기납 종신보험 보너스 지급 시점에서 추가 해지 반영, 손해율 연령별 군단 구분 등 세 가지에 대한 것이다. 이는 지난해 4분기 실적서부터 반영되고 있는데, 특히 무·저해지 부문의 영향이 컸다.
(사진=연합뉴스)
무·저해지 보험은 해약환급금이 일반 보험보다 적은 대신 보험료가 10%~40% 저렴한 상품이다. 계약자가 납입 기간에 중도 해지할 경우 환급금이 전혀 없거나, 납입 후에는 표준형 대비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상품에 적용하는 해지율 예측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손익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진다. 실제 해지율이 예정보다 낮을 경우 재원이 부족해져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그동안 보험업계서 예상 해지율을 완납 직전까지 높게 잡아 해지자가 많을 것으로 추정했고 그에 따른 가정에 기반해 상품 수익성을 비합리적으로 산출했다는 것이 금융당국 판단이다. 이러한 기초 가정이 향후 과소 해지로 인한 손실 위험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해지율 산출에 대해 ‘로그-선형모형(해지율 0.1% 수렴)’이라는 원칙모형 적용과 완납 후 해지 증가 효과 반영, 최종해지율 0.8% 적용 등으로 조정했다. 이는 보험료 납입 중이나 완납 후 기간 전반에 걸쳐 해지율 가정치를 기존보다 더 낮추는 요인이다.
상품 계리적 가정을 보수적으로 조정하면 보유계약(보험부채) 수익성이 저하된다. 이는 재무적으로 부채 항목 가운데 최선추정부채(BEL) 규모를 늘리고, CSM은 줄이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친다. CSM은 장래 미실현이익을 뜻한다. CSM이 감소하면 미래 수익 성장성뿐만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산출하는 자본적정성 지표인 K-ICS 비율도 하방 압력을 받는다.
김지원
다올투자증권(030210) 연구원은 “지난해 보험사 실적은 업종 특성상 불가피한 변동성이 확대된 모습”이라며 “제도 등 환경 변화와 계리적 가정 변경에 따른 CSM 조정으로 CSM 잔액 감소 압력이 가중됐다고 정리할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사진=연합뉴스)
"제도 불확실성·재무 변동성, 업계 리스크로"
계리적 가정 조정은 앞서 IFRS17을 도입한 2023년에도 한차례 크게 시행됐다. 당시 금융당국은 IFRS17 회계를 적용한 지 5개월 만에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보험사가 의도적으로 낙관적 가정을 사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명분에서였다. 합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보험부채를 평가하라는 것이다.
최초 가이드라인 내용은 ▲실손의료보험 보험금 추세 및 갱신보험료 조정 산출 기준 ▲무·저해지 보험 해약률 산출 기준 ▲고금리 상품의 해약률 가정 산출 기준 ▲보험손익 인식을 위한 CSM 상각 기준 ▲보험손익 인식을 위한 위험조정(RA) 상각 기준 등이었다.
당시에도 가이드라인 적용에 따라 보험사 재무에서 BEL 증가와 CSM 감소, K-ICS 비율 하락 등의 영향이 있었다. 특히 실손보험 관련 조정의 경우 보험금 예실차(예상과 실제 금액의 차이를 반영하는 계정) 확대로 보험손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 설정이 매년 큰 폭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제도적 불확실성과 그에 따른 보험사 재무 변동이 업종의 리스크 요인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중소형사부터 대형사까지 업계 전반에 재무 부담을 주고 있고, 해를 거듭할수록 변동성 수준도 커져서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에 “금융당국의 계리적 가정 조정이 있을 때마다 보험사는 수익성과 자본성 모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라면서 “IFRS17이 도입된 이후 제도적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는데, 이는 보험 업종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을 약화하는 리스크가 됐다”라고 말했다.
황양택 기자 hyt@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