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조선사 수주 대폭 증가에도 RG 한도 증가 낮아재무 탄탄한 대형 조선사로 금융지원 집중 영향신용도 기반 RG 한도…수익성 개선에 한도 증가 기대
한국 조선산업이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대형 조선사들은 매년 수주 잔고를 쌓으며 수익성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고공행진 중인 선박 가격도 수익성 개선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중견 조선사들은 대형 조선사에 비해 수익성 확대 속도가 더디고 안정적인 매출을 뒷받침할 수주 잔고도 불안정한 상황이다. 이는 중국 조선업계의 거센 추격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중국은 화물선을 중심으로 조선 산업을 성장시키며, 이는 국내 중견 조선사의 주력 선종과 겹쳐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아울러 중국 조선사의 시장 확장세는 대형 조선사에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하고 있다. <IB토마토>는 한국 중견 조선사의 어려움을 분석하고, 이들의 생존 전략과 한국 조선산업의 지속적인 성장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정준우 기자] 중견 조선사들이 부족한 RG(선수금 환급 보증) 한도로 인해 적극적인 수주 활동을 펼치기 어렵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중국 조선산업과 사업 영역이 겹치는 까닭에 수주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금융지원이 더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RG는 조선사가 기한 내 선박을 건조하지 못하거나 파산할 경우 금융기관이 선수금을 대신 갚아주는 지급 보증 제도다. 이 때문에 선주들은 선박 주문 시 RG 발급을 요구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지난해 중견 조선사에 대한 RG 지원 확대가 이뤄졌으나, 선박 가격 상승 및 수주 잔고 증가 속도가 빨라 RG 한도 확대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이다.
국내 중견 조선사의 경쟁대상인 중국 중소선박(사진=CSSC)
금융지원 확대 기지개 켰지만
24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시중 은행들도 중견 조선사에 RG 발급을 재개하는 등 중견 조선사에 대한 금융지원이 확대됐다. 원래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만이 중견 조선사에 대해 RG를 발급했지만, 지난해 상반기 이후부터 시중은행들도 중견 조선사에 대한 RG 발급을 재개했다.
RG는 선박 수주 확대에 필수적이다. 선주들이 선수금을 떼일 우려를 없애기 위해 선박 주문 과정에서 RG 발급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에 수주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려면 RG한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RG 발급은 신용도가 반영되기 때문에 재무적으로 탄탄한 대형 조선사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에 중견 조선 업계는 수주 확대 증가에도 불구하고 금융지원은 수주 확대 속도를 못 따라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일례로 케이조선의 지난해 3분기 RG 총액은 5억6528만달러로 직전연도 3분기(4억8790만달러)에서 15.9% 늘었지만, 같은 시기 케이조선의 수주 잔고는 8억107만달러에서 13억1252만달러로 63.8%나 늘었다. 수주 확대 속도에 비해 금융지원 확대폭은 이를 밑돌았다. 이에 중견 조선사의 수주 활동이 다소 제약 받을 수 있다. 추가 RG 확대가 없다면 RG 한도에 맞춰 수주를 따오거나 현재 건조중인 선박을 인도해 RG 잔고를 늘린 후 인도된 선박 가격과 비슷한 규모의 수주를 받는 방법 밖에 없다.
이와 반대로 대형 조선사들은 넉넉한 RG 한도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수주를 늘리고 있다. 조선업계 1위인 HD현대중공업의 지난해 3분기 지급보증 한도는 152억1264만달러로 직전연도 3분기(121억7505만달러)보다 25% 증가했다. 같은 시기 현대중공업의 수주 잔고는 13.6% 증가했다. 이는 대형 조선사에 대한 금융지원이 더 몰리고 있는 상황으로 해석된다.
대형 조선사로 몰리는 금융지원으로 인해 중견 조선사들은 중국 조선산업과의 경쟁에서 고전하고 있다. 중국 조선업계는 조선사 산하에 금융 계열사를 두고 전폭적인 금융 지원도 나서고 있다. 이에 국내 중견 조선사에 대한 금융 지원도 보다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재무구조 개선으로 RG발급 확대
다만, RG 발급 한도는 현재 중견 조선사들의 재무 구조를 살펴봤을 때 단기간에 확대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중견 조선사들의 수익성, 현금흐름 등은 개선되는 모습이지만 부채비율, 차입금 의존도 등은 여전히 대형 조선사에 비해 높기 때문이다. 최근 중견 조선업계가 선박 수주를 늘리는 속도를 고려했을 때 RG 확대가 적절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수주 활동에 차질이 빚어지는 문제가 지속될 수 있다.
중견 조선사들의 재무구조는 대형 조선사에 비해 약하다. 2010년대 조선업계를 강타한 불황의 여파가 아직 회복되지 않은 영향으로 풀이된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23년 대한조선 부채비율은 374%을 기록했으며, 지난해 3분기 케이조선 차입금의존도는 34.4%를 기록했다. 현재 워크아웃 중인 대선조선은 자본총계가 -88억원을 기록해 자본잠식 상태다.
대조적으로 대형 조선사의 재무 구조는 탄탄하다. 현대중공업은 차입금을 대폭 상환하며 차입금 의존도를 지난해 3분기 8.7%로 낮췄다. 직전연도 3분기 현대중공업의 차입금의존도는 18%였다.
이에 향후 RG 한도를 늘리려면 지속적인 수익성 개선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이 요구된다. 케이조선은 지난해 3분기 영업활동현금흐름 현금 유출 규모가 317억원을 기록했는데, 직전연도(1057억원 유출)보다 개선되고 있다. 다만, 케이조선은 최근 몇년간 수익성이 흑자와 적자를 오가는 모습이다. 케이조선은 2021년 2001억원 적자를 기록한 후 2022년은 232억원 흑자를 기록했고, 이어 2023년은 596억원 적자를 기록하는 등 다소 불안한 수익성 추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는 3분기까지 158억원 흑자를 기록하며 연간 실적에서 흑자 전환이 예상된다.
한편 정부와 금융기관은 중견 조선소에 대한 금융지원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해 시중은행 등은 대한조선과 케이조선에 2억6000만달러 규모의 RG를 발급했고, 산업은행도 두 조선사에 5억3000만달러 규모의 RG를 발급한 바 있다. 또한 지난해 중형 조선사 RG발급 확대 정책은 지방은행도 포함돼 있어 영남권에 위치한 중견 조선사들도 수혜를 받은 것으로 파악된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향후 중견 조선사들의 기업 신용도가 재평가된다면 RG발급 한도도 크게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정준우 기자 jw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