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정준우 기자]
고려아연(010130) 임시주주총회에서 핵심 안건인 집중투표제 도입이 가결되면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경영권 방어에 청신호가 켜졌다. 소수주주에게 유리한 제도로 알려진 집중투표제는 지분율 측면에서 MBK-
영풍(000670) 연합보다 열위인 최 회장 측에 유리한 카드로 평가된다. 집중투표제 도입으로 경영권 분쟁은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려아연 측이 상호주 의결권 제한 규정에 따라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영풍 측은 의결권 제한 조치에 크게 반발하며 향후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 현장(사진=고려아연)
소수주주 권리 확대…집중 투표제 도입
23일 용산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에서 고려아연 주주 유미개발이 제안한 집중투표제 안건이 출석주식 901만6432주 중 76.4%(689만6228주) 찬성으로 가결됐다. 이에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집중투표제 도입은 소수주주의 권리를 확대할 방안으로 꼽히는데, MBK-영풍 연합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분율이 열세인 최 회장 측이 집중투표제 도입의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서 선임하고자 하는 이사의 수만큼 1주당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로 주주의 신임을 받는 이사에 대한 표 몰아주기가 가능하다. 아울러 선임하고자 하는 이사의 수가 많을수록 이사 선임에 필요한 최소 주식 수가 낮아지기 때문에 선임에 요구되는 최소 확보 의결권도 적어진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집중투표제는 소수주주 의견이 관철될 수 있는 제도로 평가된다. 따라서 MBK-영풍 연합보다 지분율이 적은 최 회장 측의 의결권 효과가 보다 강화될 수 있다. 국민연금 등 고려아연 주요 주주들뿐 아니라 일부 소수주주들도 의결권을 강화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집중투표제에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집중투표제 표결 여건은 최 회장 측이 유리한 것으로 파악된다. 현행 상법 542조의7 3항에 따라 집중투표제가 정관상 배제된 상장사가 그 정관을 변경하려는 경우 3% 이상의 주주는 최대 3%의 의결권 밖에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상대적으로 적은 지분율에 주주 수가 많은 최 회장 측이 유리하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최 회장 측 지분율은 17.5%, 특별관계자 수는 53명에 달한다. 영풍 측의 지분율이 지난해 12월 기준 40%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특수관계인 수가 18명에 불과했다. 상대적으로 1인당 지분율이 높은 영풍 측이 3%룰 적용에서 불리할 것으로 보인다.
상호 의결권 제한까지…갈등 심화
집중투표제 도입으로 최 회장 측의 경영권 방어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갈등의 강도는 더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번 임시주총에서 영풍은 의결권이 제한당한 탓에 큰 반발이 있었다. 영풍은 25%가량의 고려아연 지분을 들고 있는 고려아연의 단일 최대주주다.
의결권 제한은 상호주 의결권 제한 규정에 따른 것으로 파악된다. 고려아연의 손자회사인 SMC(썬메탈코퍼레이션)는 임시주총 전날인 22일 영풍정밀 등이 보유하고 있던 영풍 지분 10.3%를 취득했다. 이에 따라 지난 23일 임시주총에서 고려아연 측 법률대리인들은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 25%가량에 대해서는 의결권이 없다는 법률 해석을 내렸다.
영풍의 의결권이 제한된 이유는 상법상 규정된 의결권 제한 규정 때문이다. 현행 상법 369조 3항은 회사, 모회사 및 자회사 또는 자회사가 다른 회사 발행주식 총수의 10%를 초과하는 주식을 가질 경우, 그 다른 회사가 가지고 있는 회사 또는 모회사 주식은 의결권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가령 A회사 자회사 등이 B회사 발행주식 총수의 10%를 초과하는 지분을 가지고 있을 경우, B회사가 가지고 있는 A회사 주식은 의결권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출자 없이도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해 의사결정을 왜곡시키는 상황을 막기 위함이다. 즉, 고려아연 지분이 없는 SMC가 영풍을 통해 고려아연 임시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MBK-영풍 측은 고려아연 측의 상호주 의결권 제한 조치에 대해 순환출자이자 SMC가 국내 주식회사가 아님을 이유로 부정하고 향후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따라서 향후 주주총회에서 이뤄진 의사결정들이 법원의 판단으로 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법원의 판단이 장기화될 경우 갈등 역시 장기화될 것이라 전망한다.
한편, 최 회장 측과 MBK-영풍 측의 갈등은 임기 만료를 앞둔 이사들의 연임 등 여부를 두고도 갈등이 예상된다. 이사들의 임기 만료는 오는 3월31일로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오는 3월 고려아연의 정기 주주총회에서 해당 이사의 연임 여부가 결정된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오는 3월31일 임기가 만료되는 고려아연 이사는 5명으로 임시주주총회 이전 총이사 수(12명)의 42%에 달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MBK-영풍 연합이 법적 대응에 돌입할 경우 갈등이 장기화될 것"이라 말했다.
정준우 기자 jw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