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부터 기업공개(IPO) 제도가 개편됐다. 시장의 뿌리 깊은 문제를 바로잡으려고 금융당국이 대응에 나선 것이다. IPO 시장은 그간 ‘묻지마 수요예측’이나 ‘공모가 고평가’, ‘상장일 기관투자자 매도’라는 패턴이 반복되며 신뢰를 잃어왔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IPO 77건 중 49건에서 수요예측 참여물량의 90% 이상이 공모가 밴드 상단을 초과하는 가격을 제시했다. 이에 단기 차익을 노리는 분위기가 확산됐고, 중장기 투자자 역할이 기대됐던 기관들조차 상장 당일 보유지분을 팔아치웠다.
실제로 전체 77개 IPO 중 74개 종목에서 상장일 기관 순매도가 발생했다. 당연히 주가는 급락했고 ‘따상’은커녕 공모가 방어조차 어려웠다. 이쯤 되면 IPO는 더 이상 기업의 성장 자금 조달 수단이 아니라, 단기 수익 실현의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한국거래소)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반복될수록 IPO 제도의 본래 취지와 기능이 왜곡된다는 데 있다. IPO에 앞서 이뤄지는 수요예측은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절차인데, 허수와 과도한 평가로 이루어질 경우 결국 공모가는 적절한 시장가를 반영하지 못한 채 부풀려지게 된다. 물론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투자자에게 전가된다.
결국 제도 개편은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개편안을 보면 ▲기관투자자 의무보유 확약 실효성 강화 ▲수요예측 참여 자격과 방식의 현실화 ▲주관사의 배정·실사·사전취득 기준 명확화 등이 핵심이다.
제도 시행에 따라 이달부터 확약 비중이 평균 20% 미만에 머물던 현실이 개선된다. 정책펀드를 제외한 기관 배정 물량의 40% 이상을 확약 기관에 우선 배정하고, 미달 시 주관사가 일부 물량을 6개월간 보유해야 한다. 확약 기간에 따라 부여되는 가점도 최대 6개월(7점)까지 확대됐다.
수요예측에 참여할 수 있는 기관 자격도 엄격해졌다. 기존에는 펀드 또는 일임재산의 경우 자본시장법상 요건이 비교적 완화됐지만, 이번 개편으로 고유재산 요건과 동일하게 적용된다. 등록 후 2년 이상, 최근 3개월 일평균 위탁재산 50억원 또는 총 300억원 이상을 충족해야 참여 가능하다. 허수 청약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주관사 내부 기준도 정비됐다. 공모가 산정 과정에서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실사자료 작성, 배정 기준 명문화, 공정가치 평가 내역 보관 등이 의무화됐다. 특히 코스닥 상장의 경우 상장 전 6개월 이내 취득 주식이 공모가보다 30% 이상 낮으면 의무보유 기간이 3개월로 두달 연장된다.
그렇다고 단기 차익 기회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제도적으로는 확약 투자자에게 일정 비율을 우선 배정하지만, 전체 기관 배정 물량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비확약 투자자'에게도 돌아간다. 여전히 상장 직후 매도가 가능하며, 공모가가 저평가된 경우 단기 수익도 낼 수 있다.
확약 가점 구조 역시 배정 우선권에 그치기 때문에 일부 기관은 ‘확약+비확약’ 전략을 고민 중이다.
주관사 책임도 분명해졌지만, 기업가치 산정 과정에서 과거와 같은 고평가 압박이 완전히 해소됐는지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특히 기술특례 상장 등 성장성이 강조되는 분야는 더욱 그렇다.
시장 반응은 신중하다. IPO 위축 가능성과 공모 규모 축소를 우려하지만, 과열된 시장 리스크를 고려하면 일정 수준의 속도 조절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 역시 제도 실효성을 위해 일정 기간 지켜보자는 데 의견을 모은다.
결국 제도 개편으로 형식적 조건은 까다로워졌지만 시장 관행이 달라질지는 미지수다. IPO 시장의 신뢰 회복은 단순히 제도 변경만으로는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단기 차익을 노리는 매매가 그대로라면, 개선안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금융당국은 의지를 명확히 밝혔다. 이제 시장이 답할 때다. 늘 그렇듯, 변화의 몫은 결국 시장이다.
유창선 금융시장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