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스테이블코인, 다리가 부실하면 시장도 무너진다
원화스테이블코인 태동단계 '제한적'
실사용 인프라 연계 등 선결 과제 산적
공개 2025-08-13 11:24:45
이 기사는 2025년 08월 13일 11:24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최근 만난 한 증권사 임원이 물었다. 스테이블코인으로 돈 벌 수 있는 방법 좀 가르쳐달라고. 돌아가는 판을 보면 분명 돈이 될듯한데, 정작 방법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요즘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아직 체감되지는 않는다. 딱히 한국어로 번역된 단어도 없다.
 
스테이블코인은 쉽게 말해 달러나 원화처럼 법정통화에 연동된 디지털 자산이다. 비트코인과 유사하지만 실제 통화가 기반이다. 이미 달러 스테이블코인(USDT, USDC 등)은 전 세계 가상자산 결제·송금 시장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가상자산시장 분석업체인 코인게코(Coingecko)에 따르면 지난 6월말 기준 스테이블코인 규모는 2629억달러로 이 중 99%가 미국 달러 기반이다.
 
미국 의회는 최근 발행자 자격, 감독 체계, 이용자 보호 규정 등을 담은 법안을 통과시키며 제도권 편입을 본격화했다. 달러 결제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달러·미국 국채 수요를 높이는 '디지털 달러 패권' 전략의 일환으로 보인다. 스테이블코인 결제와 송금이 확대되면 담보인 달러나 미국 국채 수요가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이다. 담보 자산에 대한 이자로 운영비를 뽑을 수도 있다.
 
스테이블코인의 제도권 편입을 위한 정책토론회 전경(사진=연합)
 
반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태동 단계다. 기축통화인 달러와 달리 시장 규모가 작고, 안정적 수익 모델도 확립되지 않았다. 담보 자산 운용으로 발생하는 이자 수익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안정성 역시 문제다. 스테이블코인이 '달러를 대신하는 안전자산'이라는 오해는 금물이다. 발행업체가 지급준비금을 100% 보유한다고 해도 정부 보증이나 예금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담보 자산 가치가 하락하거나 발행업체가 부도에 직면하면, 보유자는 현금 환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2023년 USDC가 은행 파산에 1달러 아래로 떨어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국내 제도화 논의도 걸음마 단계다. 이제서야 국회에 디지털자산기본법이 발의된 수준이다. 발행업체 자격 요건과 지급준비금 관리 방식, 이용자 보호 장치 등 갈 길이 멀다. 법안이 통과된다 해도 제도가 시장의 신뢰를 완전히 보장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국과 EU 사례에서 보듯 틀이 갖춰져도 사업자가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소용없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성공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붙는다.
 
먼저 결제·송금 등 실사용 인프라와의 긴밀한 연계다. 발행만으로는 수익성이 적어 카드사·PG사·해외송금 네트워크 등과 결합한 새로운 유통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글로벌 호환성도 필수다. 해외 결제·송금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과 경쟁하려면 국제 금융망 연결이 전제돼야 한다. 이용자 보호를 위한 투명한 담보 운용과 상시 환매 보장 시스템도 필요하다.
 
사실 투자자 입장에서 스테이블코인은 투자 대상이 아니라 결제 수단에 가깝다. 게다가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처럼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도 없다. 지금 단계에서는 코인 자체보다는 발행·유통 인프라를 구축하는 기업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금융과 디지털 자산 시장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리가 튼튼하지 않으면 무너지기 마련이다. 제도권 편입을 서두르기보다 안정성과 활용성의 균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시장성과 리스크를 냉정하게 분석하지 않으면 '신사업 기대감'이 '손실'로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유창선 금융시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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