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요 그룹사에서 여성 오너 후계자의 경영 참여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과거에는 단순한 ‘지분 보유자’에 머물렀던 여성 후계자들이 이제는 실질적 경영 역할을 맡으며 조직의 핵심 전략을 이끌고 있다. 이들은 각자 그룹 내 주요 사업을 전담하며 남성 오너와는 분업의 형태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남녀 역할 구분이 아닌 실적 기반의 경영 승계가 새로운 형태로 자리 잡는 과정이기도 하다. <IB토마토>는 여성 후계자들의 등장이 기업 경영에 미치는 변화와 함께 남매경영의 협력과 갈등 요인, 그리고 미래 경영 모델로의 전환 가능성을 짚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김규리 기자] 최근 주요 그룹사에서 여성 오너 후계자의 경영 참여가 늘면서 남매 경영이 하나의 승계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단순 지분 보유에서 벗어나 사업 부문을 나눠 맡으며 협력하는 사례도 늘고 있지만, 동시에 지분 불균형과 적자 계열사 배분 문제로 갈등이 전면화되는 양상도 나타난다. 콜마홀딩스와 한미약품의 사례처럼 협력보다는 충돌이 부각되는 장면이 잦아지면서 남매 경영은 새로운 시너지 모델이자 동시에 분쟁의 불씨라는 양면성을 드러내고 있다.
(사진=콜마비앤에이치, 한미약품)
한국콜마그룹, 콜마비앤에이치 경영 개입을 둔 남매 분쟁
앞서 대전지방법원은 콜마홀딩스가 제기한 임시주총 소집허가 소송을 인용해 콜마비앤에이치가 오는 9월26일까지 윤상현 부회장과 이승화 전 CJ제일제당 부사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을 주총에 상정하도록 결정했다. 윤상현 부회장은 동생 윤여원 사장의 경영 행보에 제동을 걸며 직접 경영 참여를 요구하고 있어 남매 간 힘겨루기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러나 콜마비앤에이치가 당초 14일로 예정했던 주주명부 폐쇄기준일을 28일로 늦추자, 콜마홀딩스는 이를 임시주총 지연 시도로 간주하고 법적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콜마홀딩스 측은 주주명부 열람이 선행되지 않으면 주총 개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위반일수당 1억원을 배상할 것을 요구했다.
콜마비앤에이치 측은 “법적 절차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콜마그룹의 남매 갈등의 배경에는 지분 구조 차이가 있다. 윤동한 회장은 지난 2019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며 윤상현 부회장에게 콜마홀딩스 지분 14%를, 이듬해 윤여원 사장 부부에게 약 10%를 증여했다. 현재 윤상현 부회장은 콜마홀딩스 지분 31.75%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며, 윤여원 사장 측은 10.62%(남편 이현수씨 3.02% 포함)에 불과하다. 콜마홀딩스는 콜마비앤에이치 지분 44.63%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윤동한 회장은 “화장품·제약 부문은 윤상현 부회장이, 건강기능식품 부문은 윤여원 대표가 맡기로 한 것은 충분한 합의의 결과”라고 재차 중재에 나섰으나 소송전으로 치달은 남매 분쟁은 쉽사리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윤여원 사장이 맡은 콜마비앤에이치의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성과 차이가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경영 주도권 갈등으로 비화했다. 여기에 행동주의 펀드가 콜마홀딩스 이사회에 개입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지분은 장남에게, 적자 계열사는 장녀에게 쏠리는 불균형 구조가 형성되면서 경영권을 둘러싼 신경전이 나타난 것”며 “지분과 성과가 엇갈린 구조가 장기화되면 결국 주주들에게 피해가 되는 상황으로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미약품, 5년 간 이어진 분쟁…무너지는 신약 명가 신화
한미약품(128940)그룹 또한 남매 간 경영권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난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2020년 창업주인 임성기 회장의 별세 이후 본격적인 오너일가 분쟁이 발생했다. 540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가 분쟁의 도화선이었지만, 본질은 모녀와 형제 간 경영권 쟁탈이었다. 송영숙 그룹 회장과 임주현
한미사이언스(008930) 부회장(한미약품 사장)은 상속세 납부 등을 위해 한미사이언스와 OCI그룹 합병을 추진했다.
하지만 장남 임종윤 전 한미사이언스 사장·차남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사장(당시 한미약품 사장) 형제가 반대하며 갈등이 표면화됐다. 특히 임종윤 사장이 지주사 격인 한미사이언스 대표로서 통합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됐다는 점도 갈등을 키웠다.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모녀 측은 한때 경영권을 상실했지만 주가 하락과 외부 투자자 결합으로 판세가 뒤집혀 올 2월 이사회에서 송영숙 회장이 다시 대표이사에 복귀했다.
그러나 고(故) 임성기 회장의 뚝심 경영으로 ‘국내 신약 명가’로 불렸던 한미약품은 현재까지 경영권 분쟁으로 흔들리면서 시장의 불안감을 한몸에 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통합 논란으로 주가가 일시적으로 흔들리며 투자자 신뢰에도 타격이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유경 신영증권 제약바이오 연구원은 “(한미그룹 측은) 경영권 분쟁 영향이 없다고 피력하고 있으나 조직 안정화 등 경영권 분쟁 내홍으로부터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미 임상에 진입한 파이프라인 진행 상황보다는 자회사를 포함한 조직 전반에 영향이 더 컸을 것으로 예상돼 기존의 성장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영업환경과 인적자원의 안정화가 필수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성과 기반 승계 중요 평가
남매 경영은 각자의 전문성을 살려 분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리더십 리스크를 완화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지분율과 실적이 괴리를 보이면 협력보다는 갈등의 불씨가 강하게 작동한다. 적자 계열사 배분이나 통합 전략 차이는 단순한 가족 문제가 아니라 투자자 신뢰와 기업가치에 직결된다.
LG(003550)그룹의 경우 구광모 회장이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경영권을 확보했지만 고(故) 구본무 회장의 배우자 김영식 여사와 구연경·구연수 자매 등 오너 여성일가는 소외되며 법적 분쟁을 벌이는 등 내부 긴장 요인이 됐다. 남매 경영이 보편화되는 시대에 장자승계만 고집하는 방식이 갈등으로 이어진 셈이다.
이유정 법무법인 원 변호사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호주제가 폐지된 지 20년이 지나면서 여성 오너들의 경영 참여가 늘었다”며 “앞으로 여성 오너의 경영 참여는 보편화될 것이지만 시장과 이해관계자에게 성과와 리더십을 입증해야 하는 성과 기반 승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규리 기자 kk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