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인 '서민금융안정기금'이 시한에 쫓기고 있다. 내년 재원을 예산에 반영하려면 9월3일까지 기금운용계획을 세워야 하고, 금융사 출연 의무의 근거는 10월8일 사라진다. 두 문제를 한꺼번에 풀어야 할 서민금융안정기금 법안은 국회 정무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사진=연합)
서민금융은 저신용·저소득층의 마지막 제도권 대출창구다. 이 문이 좁아지면 차주는 대부업으로, 다시 불법사금융으로 밀려날 수 있다. 실제로 금감원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 신고 건수는 2022년 1만350건에서 2025년 1만6988건으로 급증했다.
사실 출연 확대 작업은 끝났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4월 시행령을 고쳐 서민금융진흥원 공통출연요율을 올렸다. 은행권은 0.06%에서 0.1%로, 비은행권은 0.03%에서 0.045%로 높아졌다. 이에 따라 금융회사 출연금은 연간 1973억원 늘어 6321억원 규모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제외한 은행권 순이익 대비 출연금 비중도 0.7%에서 1.6%로 두 배 넘게 오른다. 햇살론 특례보증 금리도 15.9%에서 12.5%로 낮아졌다.
취약차주의 금융비용을 낮추고 제도권 안에 붙잡아두겠다는 방향은 맞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안정기금 법안의 핵심은 기존 보증·자활지원 기능 등을 기금으로 묶고, 필요하면 서민금융안정기금채권을 발행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출연금 위에 채권이라는 부채를 얹는 구조다. 그만큼 손실 책임 대상과 기준, 범위가 관건이다.
하지만 그 부채를 감당해야 할 정책서민금융의 손실 구조는 이미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지난해 ‘햇살론15’의 대위변제율은 26.8%로 출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최저신용자 특례보증은 30%에 육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서민금융진흥원 용역의 중간 결과는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2027년부터 2031년까지 5년간 9조4260억원 출연을 검토하는데, 직전 5년과 비교해 크게 불어난 규모다. 손실은 3조3690억원으로 추산됐고, 비용편익비율은 1.1로 경제성 판정이 턱걸이 수준에 불과하다. 국회가 멈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방향이 틀려서가 아니라 손실과 회수, 상환 책임 설계가 흐릿하기 때문이다.
출연은 공짜가 아니다. 채권도 마찬가지다. 출연금이 비용을 옆으로 흘려보낸다면, 채권은 비용을 앞으로 미룬다. 은행 대출금리에 출연료를 직접 전가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부담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대출심사는 깐깐해지고, 중저신용자 공급은 줄어들 수 있다. 회수율이 낮은 구조에서 비용이 분산된다면 포용금융이 아니라 우회 과세에 가깝다.
사실 서민금융의 성패는 얼마를 풀었느냐가 아니다. 몇 명을 다시 정상 금융으로 돌려보냈느냐다. 선의로 만든 제도가 또 다른 금융소외를 낳는다면 정책 실패다.
지방선거가 끝난 데다 정무위 위원장이 여당 차례라 국회에서 해당 법안 처리가 속도를 낼 가능성이 높다. 국회가 따져야 할 것은 단순히 기금 조성 여부가 아니다. 손실에 대한 책임과 부담을 명확히 하고, 구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시간을 흘려보낼 만큼 여유로운 사안이 아니다. 자칫 서민금융의 공급 기반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서민금융안정기금은 필요하다. 그러나 필요한 제도일수록 차갑게 설계해야 한다. 포용금융은 따뜻한 말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지탱은 숫자와 원칙이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돈이 아니다. 누가 부담하고, 어떻게 회수하며, 어디까지 책임질지를 담은 정직한 설계도다.
유창선 금융투자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