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송혜림 기자] 올해 하반기 들어 유상증자를 추진하는 기업들의 자금 조달 계획에 잇따라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정정신고서 제출 요구에 응하지 못한 기업이 늘어난 데다, 증시 변동성에 따른 주가 급락까지 겹쳤다. 여기에 금융당국이 일반주주 보호를 위해 증자 심사를 강화하면서 상장사들은 증자 규모를 축소해서라도 문턱을 넘으려 안간힘을 쓰는 상황이다.
(사진=한화솔루션)
정정요구에 차일피일 밀리는 '유상증자' 일정
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오는 7월 마지막 주부터 8월 첫째 주까지 청약이 예고된 기업들 중 아직 유상증자 발행조건을 확정하지 않은 기업은 12곳 중 7곳이다. 보통 증권신고서 제출부터 발행가액 확정 공시까지 대략 2~3주 정도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청약일이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신약 개발 플랫폼을 운영하는 에이전트AI는 지난 6월8일까지 세 차례 정정신고서 제출 요구를 받은 후 현재까지 정정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경남제약(053950)도 같은 날 정정신고서 제출 요구를 받았으나 한 달이 넘어가는 현 시점에서도 정정신고서를 공시하지 않고 있다. 발행조건 미확정 기업 7곳 중 3곳은 바이오 기업이었으며 그 외는 패션, 엔터테인먼트, 컴퓨터PC 등의 분야로 나뉘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유상증자 지연 사유에 대해 <IB토마토>에 "금융감독원 정정요구 등 심사 절차에 따라 일정이 변동될 수 있는 사안이다. 그 진행이나 사유에 대한 판단·결정은 발행회사 몫"이라면서 "주관사인 당사가 특정 사유를 먼저 언급하기는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보통 기업들이 유상증자를 발표하면 주가는 떨어진다. 유상증자가 주가에 단기 악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유상증자로 주식 총수가 늘어나면 기존 주주의 지분 가치는 희석된다. 신사업이 아닌 채무 상환이나 운영 자금 용도일 때는 주가 하락 폭이 더 크다.
유상증자 발행가액은 규정상 산정 기준일 주가를 반영해 결정되므로 주가가 하락할 경우 발행가액도 낮아지기 때문에 이를 새로 반영한 정정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다만 올 상반기 들어 반도체 대형주 쏠림에 따른 국내 증시 변동성 확대 여파로 기업들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예년보다 기업들의 자금 조달 계획이 줄줄이 밀리는 상황이 빚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판타지오(032800) 주가는 지난 6일 보통주 1000만주를 새로 발행하는 유상증자를 결정한 이후 7일 전일 대비 18.8% 급락했고, 다음 거래일에도 추가 하락하며 상승분 상당 부분을 반납했다. 판타지오의 유상증자 모집가액은 1693원으로 현 주가 1521원 대비 높다.
하이퍼코퍼레이션(065650)도 지난 5월 유상증자 계획 발표 후 주가가 하락하며 모집가액 2655원이 현 주가(2015원)을 웃도는 실정이다.
금융당국 현미경 규제에 축소 발행 줄지어
정정신고서 일정이 순연되는 배경에는 주가 하락만 있는 게 아니다. 최근 금융당국이 유상증자를 결정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심사를 한층 깐깐하게 들여다보면서 증자의 문턱 자체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상장사들의 관리종목 및 상장폐지 기준이 상향 조정되면서 재무 개선을 위한 자금 조달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다만 금융감독원이 일반주주 이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유상증자에 대해 적극적으로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권 행사에 나서면서 조달길이 험난해졌다. 기업들은 증권 보고서 내용을 보충하는 걸 넘어 유상증자 발행 규모도 잇따라 축소하면서 현미경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물론 금감원이 유상증자를 직접 승인하거나 허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정요구가 내려지면 기존 증권신고서의 효력이 정지되는 만큼 발행회사가 보완된 신고서를 제출해 효력이 발생하기 전까지 청약 절차를 진행할 수 없다. 반복되는 정정요구가 사실상 자금 조달 일정의 장기화로 이어지는 이유다.
축소 폭이 가장 큰 기업은
한화솔루션(009830)이다. 기존에 목표로 삼은 2조3976억원에서 최종 규모는 절반 수준인 1조1713억원까지 떨어졌다. 주당 발행 가격은 2만2100원으로 지난달 제시한 1차 발행가액(2만7900원)보다 20.8% 낮다. 최근 주가 하락 영향에 더불어 금감원의 정정 요구와 소액 주주 반대가 맞물린 결과다.
문제는 유상증자 목적이 채무 상환이었다면 기업들은 또다시 유상증자나 전환사채(CB) 등 또다시 외부 자금 조달에 나서야 하는 악순환이 빚어진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자비용이나 잠재적인 주식 전환 물량이 늘어나면 재무 부담과 기존 주주의 희석 우려가 되풀이될 수 있다.
한화솔루션은 유상증자 규모 축소로 부족해진 재원은 미국 현지 유동성 확보와 투자자산 매각 등 자체 자금 조달을 통해 충당하겠다는 방침이다.
일각에선 금융당국의 주주 보호를 위한 심사 강화의 취지는 이해하면서도 상장사들의 자금 조달 부담은 나날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주주들을 보호하기 위해 유상증자 심사를 강화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다만 상장사들이 유상증자나 CB 등을 통한 자금 조달길이 점점 막히면서 하반기엔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기업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송혜림 기자 divi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