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하나·신한 발행어음 인가 심사 승인늦어진 심사, 모험자본 투자 선두 메리츠·삼성도 초조투자 생태계 구축 위한 '인내자본' 등 제도적 지원 절실
2025년 증권업계 최대 화두는 금융당국의 신규 발행어음 인가다. 모험자본 공급 활성화를 위한 정책 기조 속에 7년 만에 다시 인가 절차가 추진되고 있어서다. 시장에서는 자금 공급 여력 확대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모험자본 발굴과 부동산 편중 포트폴리오 조정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이에 <IB토마토>는 새해부터 본격화될 발행어음 시장 확대의 의미를 짚어보고, 동반될 리스크와 증권사별 대응 전략을 살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최윤석 기자] 발행어음 신규 인가가 심사 과정에서부터 엇박자를 내고 있다. 금융당국 심사 지연으로 당초 목표로 한 연내 심사가 미뤄진다는 전망이 나온다. 심사가 늦어지면서 금융권의 모험자본 공급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시장에선 모험자본 투자 생태계 구축을 위한 제도적 보완책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연말까지 미뤄진 신한·하나 발행어음 인가
당초 이 둘의 인가는 11월에 마무리 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금융당국 심사가 지연되면서 12월 중순에 이르러서야 심사와 인가가 마무리됐다. 다만 양사는 이번 심사를 통과한 양사는 당국이 요구하는 기준 이상의 기업금융 투자와 모험자본 투자 계획을 밝혔다.
(사진=신한투자증권, 하나증권)
신한투자증권은 "오랜 기간 모험자본 공급에 참여해온 중장기 경쟁력을 한 차원 끌어올리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당장 내년부터 당국이 제시하는 25%보다 높은 발행어음 조달 자금의 35%를 모험자본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나증권은 자산관리(WM) 조직과 협업을 통해 “조달 운용자산의 60% 이상을 인수금융·기업대출·기업금융 등 기업금융에 투입할 것”이라며 25% 이상을 모험자본에 투자와 내년 1월 발행어음 첫 상품 출시를 예고했다.
신한투자증권과 하나증권 모두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다. 이들은 자금 조달 안정성과 발행어음 판매 전략에 대해서는 타 경쟁 증권사보다 월등히 높은 비교우위를 갖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모험자본 투자역량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아직은 구체적인 투자 계획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아 이들의 과제는 투자 역량 증명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신한과 하나 모두 금융지주와 협업으로 발행어음 안정성 확보와 판매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이 없다”라며 “다만 은행에 맞춰진 리스크 관리 체계를 넘어 모험자본을 어떻게 투자할지 고민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과 메리츠 선제적 투자행보에도 심사 지연
경쟁 증권사 인가가 이어지는 가운데 가장 애가 타는 곳은
삼성증권(016360)과 메리츠증권이다. 이들은 지난 11월 금융위원회의 외부평가위원회(이하 외평위) 심사를 마쳤다. 하지만 현장실사는 시작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발행어음 심사와 인가 순서는 △신청서 접수 △외평위 심사 △현장 실사 △증선위 심의 △금융위원회 심의 순이다. 하지만 연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인사가 겹치면서 사실상의 심사 마무리 단계인 현장실사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사진=메리츠증권, 삼성증권)
삼성증권과 메리츠증권은 신규 발행어음 후보 증권사 중 가장 뛰어난 투자역량을 갖춘 곳으로 평가받는다.
삼성증권의 경우 삼성그룹사와 연계된 기업발굴과 프리IPO에서 독보적인 투자 역량을 갖추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리벨리온의 프리IPO 참여다. 해당 지분투자는 기업공개(IPO) 주관으로 이어졌다.
메리츠증권 또한 업계에선 '전문가 집단'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기업금융(IB) 선두주자다. 메리츠증권은 최근 대형 그룹사의 계열사 자금조달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SK(003600)그룹의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사업 자산 유동화을 맡았다.
하지만 이들의 시장의 주목을 받는 투자 행보에도 불구하고 발행어음 인가가 늦어지면서, 모험자본 시장 확대는 요원한 일이 됐다. 당국이 가장 바라는 형태의 시장 자금 공급이 시작부터 어긋나는 셈이다.
‘인내자본’ 필요성 절실…국민성장펀드
발행어음 신규 인가의 정책 성패는 모험자본 발굴과 수익실현이 가능한 투자 생태계 구축이 핵심이다. 하지만 이제 시작 단계인 시장에서는 인가 과정부터 헤매는 모양새다. 심지어 심사도 늦어지고 있어 생태계 구축을 위한 제도적인 지원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사진=연합뉴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인내자본’의 육성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상환전환우선주(RCPS) 중심 투자와 비교적 짧은 만기의 펀드 투자가 중심인 모험자본 투자 회수 경로를 장기 프로젝트성 펀드를 중심으로 전환하고 펀드에 금융사 자금이 투자되도록 하는 것이다.
국민성장펀드가 일부 보완이 된다는 평가도 있다. 정부에 따르면 새해부터 국민성장펀드가 조성, 향후 5년간 150조원이 투입된다. 2026년에만 30조원이 예정돼있다. 이 펀드에선 간접투자 방식으로 금융사의 출자를 통한 지분투자가 가능하다. 실제 하나증권의 경우 모험자본 투자계획에서 국민성장펀드 참여가 언급된 바 있다.
다만 문제는 펀드 출자를 모험자본으로 분류할 수 있느냐다. 아직 금융당국의 발행어음 운용 규칙에서 프로젝트성 펀드 출자를 분류하는 기준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에 시장에선 프로젝트성 펀드 출자에 대한 모험자본 분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김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벤처캐피탈과 같은 모험자본 투자에서 인내자본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라며 "장기 재원으로의 모험자본 공급 기반을 확충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 정비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