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홍준표 기자] 올해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산업 구조를 재편하거나 체질을 바꾸는 거래가 중심이 됐다.
삼성전자(005930)의 플랙트그룹 인수를 필두로
SK(003600)의 리밸런싱이 이어지며 주요 계열사 매각이 이뤄졌고,
LG디스플레이(034220)는 광저우 LCD 공장을 매각하며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중심으로 체질 전환에 나섰다.
NAVER(035420)는 두나무 인수를 결정하며 초대형 금융플랫폼 탄생을 알렸다.
국내 사모펀드(PEF)들은 조 단위 빅딜 참여가 예년 같지 않은 가운데 한앤컴퍼니가 SK스페셜티를 인수하며 대기업 카브아웃 파트너로의 지위를 굳건히 했으며, 에어리퀴드는 올해 주요 빅딜로 꼽혔던 DIG에어가스 인수를 이끌며 외국계 전략적투자자(SI)의 크로스보더 딜도 주목을 받았다.
삼성전자 DVM 라인업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플랙트그룹…하만 이후 8년 만의 조 단위 인수
올해 국내 대기업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은 M&A는 단연 삼성전자의 독일 공조업체 플랙트그룹 인수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플랙트그룹의 지분 100%를 15억유로(약 2조40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 11월 절차를 모두 완료했다.
삼성전자가 조 단위 거래로 글로벌 M&A 시장에 복귀한 것은 하만 인수 이후 약 8년 만이다. 플랙트그룹은 유럽 최대 공조기기 업체로, 삼성전자는 AI 인프라 수요 급증으로 성장하고 있는 데이터센터 냉난방공조(HVAC) 시장을 겨냥했다.
HVAC 시장은 2024년 610억달러에서 2030년 990억달러로 연평균 8% 성장이 예상된다. 특히 데이터센터 부문은 2030년까지 441억달러 규모로 연평균 18%의 높은 성장률로 공조 시장을 이끌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HVAC 시장 공략에 공을 들여왔다. 지난해 상반기 미국 존슨콘트롤즈 HVAC 사업부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가 67억달러(약 9조5000억원)를 써낸 보쉬에 밀리며 한 차례 고배를 마신 바 있다. 이번 플랙트그룹 인수를 통해 삼성전자는 플랙트의 기술력과 삼성전자의 AI 플랫폼을 결합, 글로벌 공조 시장에서 업계를 선도하겠다는 사업 방향 설정이 명확해졌다.
OLED 웨이브 루프 (사진=LG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광저우 공장 매각…LCD 시대 '마침표'
LG디스플레이의 광저우 LCD 공장 매각도 올해 M&A를 통한 굵직한 사업 재편의 일환으로 꼽힌다. 중국 디스플레이·전자제품 제조업체 TCL 자회사 CSOT는 지난 10월 LG디스플레이의 중국 유한회사 2곳 지분 전량을 인수하는 계약을 마무리했다. 중국 광저우 8.5세대 LCD 패널 공장 LGD CA 법인과 모듈 공장인 LGD GZ 법인이다.
최종 확정된 거래의 인수 금액은 110억8800만위안(약 2조2300억원)이다. LG디스플레이가 LCD 패널 공장을 매각한 이유는 OLED 중심의 사업구조 개편에 있다. 미래 먹거리 사업 중 하나인 OLED에 집중하기 위해 확보한 자금을 시설투자, 연구개발, 운영비 등에 활용할 예정이다.
올해 LG디스플레이의 광저우 공장 매각은 한국 대형 LCD시대의 공식적인 마침표라는 평가가 짙다. 앞서 삼성디스플레이가 2021년 쑤저우 LCD 공장을 CSOT에 매각한 상황서 LG디스플레이도 2022년 말 국내에서 LCD 패널 생산을 중단한 데 이어 마지막 대형 LCD 생산기지마저 처분한 것이다. 관련 업계선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이 LCD 시대를 정리하고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갔다는 상징적인 딜로 평가한다.
(사진=SK스페셜티)
한앤컴퍼니–SK스페셜티…올해 PEF 최대 '바이아웃'
올해 국내 사모펀드 시장에서 가장 굵직한 거래는 올해 3월 완료된 한앤컴퍼니의 SK스페셜티 인수다. 거래 규모는 약 2조6000억원으로, 올해 성사된 PEF 바이아웃 가운데 최대 규모다. 대기업 비핵심 자산을 분리해 매각하는 카브아웃 거래가 늘어난 시장 흐름을 상징하는 사례이자, 대형 딜이 드문 환경 속에서도 경쟁력 있는 자산에는 자금이 몰린다는 점을 보여줬다.
한앤컴퍼니는 그동안 M&A 매물로 나온 SK 계열사를 사실상 싹쓸이했다. 앞서 한앤컴퍼니는 2018년 SK그룹으로부터 SK해운(1조5000억원),
케이카(381970)(2200억원),
SK디앤디(210980)(1954억원) 등을 인수했고, 2020년엔 SK에코프라임(4000억원), 지난해는 SK엔펄스의 파인세라믹스 사업부인 솔믹스(3303억원)와 SK엔펄스 CMP패드 사업부(3346억원), SK플라즈마 지분 27%(1500억원) 등을 인수한 바 있다.
한앤컴퍼니는 SK실트론 인수를 통해 기존 인수 기업들과의 시너지를 확대하고 있다. SK스페셜티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패널 제조에 쓰이는 특수가스 생산 분야의 선도 업체로, 삼불화질소(NF3)와 육불화텅스텐(WF6)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반도체 계열사의 유기적인 밸류체인 구축을 통해 단순 카브아웃을 넘어 시너지 창출을 통해 인수 기업들의 밸류를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네이버 본사 전경 (사진=네이버)
네이버–두나무…초대형 금융플랫폼 탄생
네이버의 두나무 인수 결정은 올해 M&A 시장에서 가장 큰 화제 중 하나였다. 시장에서는 기업가치 5조원에 달하는 네이버파이낸셜과 15조원 규모의 두나무가 결합하면서 20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금융플랫폼의 탄생을 알렸기 때문이다.
인수 방식은 네이버파이낸셜이 두나무를 100% 자회사로 편입하는 포괄적 주식교환이며, 교환 비율은 두나무 1주당 네이버파이낸셜 2.54주다. 인수 방식에 따른 지분율만 놓고 보면 합병 후 네이버는 2대 주주로 내려가지만, 두나무 경영진으로부터 네이버파이낸셜 주식의 의결권 상당 부분을 위임받아 네이버는 실질적인 경영 통제권을 갖게 된다.
네이버는 네이버파이낸셜에 대한 지분 17%를 유지한 가운데, 두나무의 송치형 회장이 보유한 지분(19.5%), 김형년 부회장의 보유 지분(10.0%)을 위임받는 형식이다. 네이버는 이를 통해 총 46.5%의 의결권을 확보하게 된다.
해당 딜은 빅테크와 가상자산 산업의 결합이라는 파급력 때문에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네이버파이낸셜은 간편결제 서비스인 네이버페이를 중심으로 생활 밀착형 금융 기능을 제공해온 국내 대표 핀테크 기업이며, 두나무는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고 있다.
향후 절차는 금융위원회의 금융업 인허가 문제와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 결합 승인 여부가 남아있다. 올해 성사가 완료된다면 단숨에 2025년 최대 규모의 M&A로 기록되겠지만, 완료 예정 시점은 주주총회가 열리는 새해 6월로 예정되어 있다.
DIG에어가스 공장 전경 (사진=DIG에어가스)
에어리퀴드–DIG에어가스…외국계 SI의 최대 크로스보더 딜
올해 성사된 프랑스 산업가스 기업 에어리퀴드의 DIG에어가스 인수는 약 4조8500억원 규모로 평가되는 초대형 크로스보더 거래다. 최종 클로징은 2026년으로 예정돼 있지만, 국내 자산을 대상으로 한 외국계 전략적 투자자의 인수 중 최대급이라는 점에서 올해 M&A 시장을 대표하는 딜로 꼽힌다.
DIG에어가스는 국내 3위의 산업용 가스 기업으로, 올해 M&A 시장서 가장 주목받은 대어 중 하나로 꼽혀왔다. 맥쿼리운용은 2020년 국내 최대의 사모펀드 운용사인 MBK파트너스에서 당시 대성산업가스였던 이 회사의 지분 100%를 약 2조8000억원에 사들인 이후 인수 5년 만인 올해 초부터 매각을 추진했다.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멀티플은 시장의 예상을 다소 웃도는 20배가 책정됐다. 브룩필드, 스톤피드 등 글로벌 사모펀드들이 참전한 가운데 에어리퀴드가 강력한 인수 의지를 나타내며 최고가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에어리퀴드는 DIG에어가스의 옛 주인이자 글로벌 2위 산업용 가스 기업으로, 관련 업계 순위 2, 3위 간의 결합이다.
종합하면 올해 국내 M&A 시장은 외형 확장보다 산업 재편과 선택과 집중이 두드러진 한 해로 평가된다. 대기업들은 비핵심 자산을 정리하며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했고, 사모펀드와 글로벌 전략적 투자자들은 경쟁력 있는 자산에 선별적으로 베팅한 것이 주목을 받았다.
홍준표 기자 junpy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