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도 한투·미래 이어 모험자본 계획 발표하며 IMA 인가 '박차'제한적인 투자처, 하이일드 규모 작고 프리IPO 수익성 '부담'콘텐츠 펀드, 모험자본 투자처 주목…수익 다각화 모델 '기대'
[IB토마토 최윤석 기자] 모험자본 발굴이 금융투자업계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발행어음 사업을 영위하거나 준비 중인 대형 증권사들이 당국의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자금 투입 계획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돈을 받아줄 시장은 턱없이 좁다는 지적이다. 이에 전통적인 기업 금융을 넘어 문화 콘텐츠 등 새로운 영역이 모험자본의 대안 투자처로 급부상하고 있다.
"초대형IB 요건 맞춰라"…발등에 불 떨어진 증권사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NH투자증권은 연내 생산적 금융 활성화를 위해 총 3150억원 규모의 자금 투입 계획을 밝혔다. 해당 계획은 중소·중견기업에 2150억원을 공급하고, 나머지 1000억원을 인공지능(AI) 등 혁신 산업에 투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사진=NH투자증권)
이번 NH투자증권의 투자 계획 발표는 종합금융투자계좌(IMA) 인가를 앞둔 포석으로 풀이된다. 앞서 NH투자증권은
미래에셋증권(037620)과 한국투자증권에 이어 IMA 인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후발주자인 만큼 당국의 인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선제적인 모험자본 투자 의지를 피력해 당국 설득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이 제시하는 발행어음 인가 증권사의 모험자본 투자 기준에 따르면, IMA 사업자는 인가 직후인 2026년부터 발행어음 조달액의 25%를 모험자본에 투입해야 한다. 초대형 IB 역시 오는 2028년까지 발행어음 조달 금액의 25%를 모험자본으로 채워야 한다.
이에 따라 발행어음 증권사들은 저마다 모험자본 투자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A등급 이하 채권, 강소기업, 벤처캐피탈(VC) 조합 등에 대한 출자 비중을 늘려 총 6조원의 모험자본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한국투자증권 또한 모험자본 투자를 위한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 조직을 신설하고 유망 기업 발굴에 착수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모험자본 공급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큰 걸림돌은 투자처의 절대적인 규모 부족이다. 자금을 투입할 곳은 한정적인데 시장의 성장 속도는 더디기 때문이다. 증권사 내부 역량 확보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인력 확충부터 내부적인 리스크 평가 기준 정립까지 제반 시스템을 처음부터 다져야 하는 상황이다.
말라버린 '하이일드'…리스크 커진 '프리IPO'
현재 모험자본으로 분류되는 투자처는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자금공급과 주식투자 △A등급 이하 채무증권 △P-CBO(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 △상생결제 및 벤처캐피탈·신기술사업금융사·하이일드펀드 등이다.
발행어음 신규 인가 이후 가장 주목받은 곳은 저등급 채권 시장인 하이일드 채권 시장이었다. 증권사 입장에서 접근이 용이하고, 채권 특성상 다른 모험자본 자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서울 여의도 증권가 (사진=IB토마토)
그러나 국내 A등급 이하 하이일드 채권 시장은 그 규모가 매우 협소하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체 회사채 시장에서 BBB+ 이하 저등급 채권의 비중은 3.3%에 불과했다. 그나마 A등급대(A+∼A-)가 19.1%를 차지한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AA등급 이상 우량 채권이 점유하고 있어 모험자본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다.
프리IPO 역시 증권사들이 공격적으로 뛰어들기엔 부담스러운 영역이다. 기업 발굴부터 지분 투자, 투자회수(엑시트)까지 수년이 소요되는 데다 수익성마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당국이 가장 장려하는 형태지만, 수익성과 건전성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증권사 입장에서는 버겁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투자증권의
디앤디파마텍(347850) 투자다. 한국투자증권이 디앤디파마텍 프리IPO에 참여한 시점은 지난 2021년 3월이었으나, 실제 상장은 3년이 지난 2024년에야 이뤄졌다. 상장 당시 공모가가 프리IPO 투자 단가보다 낮아 ‘적자 주관’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한국투자증권이 해당 투자를 통해 실질적인 수익 실현에 성공한 것은 주요 파이프라인 임상이 성과를 낸 2025년에 들어서였다.
'기생충' 대박 학습효과…'문화산업전문회사' 대안 부상
투자처 기근에 시달리는 증권사들이 눈을 돌린 곳은 '문화산업전문회사(문전사)'다. 영화, 드라마 등 특정 콘텐츠 제작을 위해 설립되는 특수목적회사(SPC)로, 여기에 투자한 자금은 모험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과거 은행권 영역이던 콘텐츠 투자가 최근 증권사의 수익 다각화 수단으로 주목받는 모양새다. IBK기업은행이 자회사 IBK캐피탈을 통해 영화 '기생충'에 100억원을 투자해 70%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한 사례는 업계 '성공 방정식'으로 통한다.
영화 기생충 중 한 장면 (사진=한국문화원)
최근에는 대작뿐만 아니라 저예산 독립영화로도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독립영화 ‘세계의 주인’은 최근 손익분기점(BEP)을 넘었다. 관객들의 입소문이 뒤늦게 탄 결과다. 11월14일 해당 영화는 손익분기점인 8만명을 넘어 10만명의 관객수를 기록했다. 영화제작에는 ▲SB파트너스 ▲쏠레어파트너스 ▲유니온투자파트너스 ▲솔트룩스벤처스 등 4곳이 투자자로 참여했다. 투자사들은 각각 1억원 내외의 자금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콘텐츠 제작 투자의 경우 그 위험도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매년 수십여 작품 중에서 수익을 달성하는 작품은 손에 꼽힌다. 하지만 단 하나의 작품만 성공해도 이전 투자 실패를 만회할 수 있어 콘텐츠 전문 투자 펀드 조성도 유력하게 거론되는 모험자본 투자 방식이다.
게다가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6000억원 규모 K-콘텐츠 펀드 조성에 나섰다. 정부 자금이 3500억원 규모이지만, 벤처캐피탈(VC)의 출자 자금 또한 700억원 규모다.
증권업계에선 트렉 레코드가 미미한 점과 인력 부족이 풀어야 할 과제라는 평가를 내놨다. 기존 2차 또는 3차 산업 영역 투자의 경우 투자 이력이 있고 이에 대응하는 충분한 인력이 있는 반면, 영화나 드라마 같은 콘텐츠 투자에 대해서는 준비가 미진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IBK기업은행에서 이와 비슷한 투자가 이뤄지고 성과를 냈지만 아직은 금융업권에서 콘텐츠 투자에 대응할 능력이나 이력이 없는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시장에서 긍정적으로 여길 모범 사례가 나온다면 충분히 출자가 이뤄질 수도 있다"라고 평가했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