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최윤석 기자]
고려아연(010130) 공모채 최근 신용등급 하락 조정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성공했다. 이는 고려아연 현 경영진에 대한 시장의 신뢰도가 증명된 것이란 평가다. 이번 발행에선 고려아연의 우군 증권사들이 대거 참여한 한편 파트너십을 노린 신규 증권사들도 참여했다. 이에 따라 향후 경영권 방어 과정에서 고려아연 측에 설 증권사들의 존재감이 커질 전망이다.
신용등급 강등에도 시장 신뢰 확인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3500억원 규모 무기명식 이권부 무보증사채 수요예측에서 총 2조5500억원 규모 주문을 받는 데 성공했다. 회차별로는 3년물 1500억원 모집에 1조5950억원의 주문이 들어왔고, 5년물 2000억원 모집에 9550억원의 주문이 들어왔다.
앞서 고려아연은 신용등급이 AA+/부정적에서 AA/안정적으로 하향 조정됐다. 한국신용평가는 고려아연의 차입규모가 과거 대비 크게 증가했고 MBK파트너스와의 경영권 분쟁과 그로인한 재무적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을 들어 하향 조정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고려아연에 대한 시장 신뢰는 이번 회사채 발행에서 증명되는 분위기다. 고려아연은 민간채권 평가회사 평균금리 기준 ±30bp(1bp=0.01%포인트)의 금리를 제시했고 3년물은 -30bp, 5년물은 –24bp에서 물량을 채웠다. 증액도 이뤄져 3년물과 5년물 모두 3500억원으로 발행 규모가 결정됐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가운데) (사진=고려아연)
고려아연은 지난 8월 세계 최대 방산 기업인 미국 록히드마틴과 ‘게르마늄 공급·구매 및 핵심 광물 공급망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교환하면서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트럼프 2기 정부의 관세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재편에 대한 선제 조치로 시장에선 고려아연의 희소금속 사업 확대를 높이 평가했다.
이태환
대신증권(003540) 연구원은 “고려아연의 희소금속 중심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경쟁력 우위로 이어지고 있다”라며 “최근 경영권 분쟁 등 사업 외 이슈가 있었지만 사업 자체의 구조적 우수한 점이 주목된다”라고 말했다.
팔 걷어 붙힌 고려아연 우군 증권사
이번 고려아연 회사채 발행에서도 고려아연의 우군 증권사들이 발행 주관사로 이름을 올렸다. 대표적인 우군인
미래에셋증권(037620)과 KB증권은 3년물 회사채 발행에서 공동 대표 주관사를 맡아 각각 1800억원, 1700억원씩 채권을 인수했다.
이어 하나증권은 5년물 대표 주관사로 이름을 올렸다. 하나증권은 이번 고려아연 회사채 발행으로만 3500억원의 주관실적을 기록할 전망이다. 이어 작년 고려아연의 1조원대 사모패 주관을 메리츠증권이 인수사로 나섰고, 이번 발행에선
키움증권(039490)과 신한투자증권도 인수단에 합류했다.
MBK파트너스와의 경영권 분쟁 이전까지 고려아연은 무차입 경영을 고수해왔다. 아연을 비롯한 비철금속 제련 분야에서 확고한 시장 지배력 바탕으로 현금 창출 능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상반기에도 매출은 사상 최고치인 7조6582억원, 5300억원으로 102분기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
고려아연은 자금 조달 시장의 빅 이슈어로 떠올랐다. 상반기 기준 현금성 자산은 7390억원으로 감소한 한편, 순차입금은 3조3000억원으로 늘어 재무구조 악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4월 7000억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했고 이번 회사채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도 차입금 상환에 사용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고려아연의 공모채 시장을 비롯한 자금 조달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경영권 분쟁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회사의 신사업은 희소금속 포트폴리오 강화를 위한 투자도 멈출 수 때문이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시장의 빅이슈어의 등장은 놓칠 수 없는 호재다. 신한투자증권의 경우 SK그룹과 LG그룹의 계열사의 회사채 주관으로 채권자본시장(DCM)에서 존재감을 확대했다.
키움증권(039490)도
한진(002320)그룹과의 파트너십을 구축해 DCM 주관시장 안착에 성공했다.
이 둘 모두 이번 회사채 발행에서 인수사로 참여해 고려아연 딜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고려아연과의 파트너십 강화를 노린 행보로 향후 고려아연발 딜 주관 참여에 도전할 것을 전망된다.
패색 짙어진 MBK파트너스
자본 조달시장에서 고려아연의 등장은 MBK파트너스라는 변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향후 딜의 방향성도 MBK파트너스에 달렸다. MBK파트너스는 2025년 국정감사에서 집중 질타를 받았다.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사진=연합뉴스)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MBK파트너스 관련 질의에 “홈플러스와 관련한 투자 결정으로 이런 결과가 난 데 대해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라며 “운용사 선정 단계부터 운용에 이르기까지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라고 사과했다.
국민연금은 MBK파트너스의 주요 LP 투자자 중 하나였다. 하지만 홈플러스 사태 이후 국민연금의 MBK파트너스에 대한 시선은 회의적으로 바뀌고 있다. 이에 따라 당장 내년 고려아연 주주총회에선 MBK파트너스의 패색이 짙어지고 있다.
올해 3월 고려아연 주주총회에서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 성공은 국민연금의 중립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했다. 당시 지분 4.51%를 보유한 국민연금은 이사 선임에서 영풍·MBK 측 5인, 고려아연 측 3인 선임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에 따라 고려아연은 이사 15명 중 11명의 자리를 확보하며 경영권 방어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한편 지난 1일 국민연금은 고려아연 지분을 5.00%로 늘렸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도 기존 18.46%에서 19.11%로 늘렸다. 국민연금의 MBK파트너스에 대한 신뢰도가 회복되기 힘든 상황에서 올해에 이어 내년 주주총회도 사실상 MBK파트너스의 패배가 예견되는 부문이다.
하지만 아직 고려아연의 우호 지분은 높게 잡아도 30% 후반이다. 영풍·MBK이 확보한 40.9%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작년 금융당국의 제재에 좌절된 유상증자를 비롯해 다양한 경영 방어 시도를 위한 딜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작년 유상증자 딜 같은 경우 너무 급하게 대규모로 추진돼 좌절됐다고 봐야 한다”라며 “하지만 최근 신규 사업을 추진 중인 상황에서 사업 확대를 위한 자금원 확보를 주장한다면 시장과 당국에 대한 설득도 가능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그렇게 된다면 그간 고려아연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해온 금융사의 딜 수임이 자연스레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