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주요 그룹 총수 간 면담 이후 삼성·SK·현대차·LG 등 대기업들이 연달아 수백조 단위의 투자 계획과 대규모 채용안을 내놓고 있다. 외형 확장과 미래 전략 확보라는 명분이 깔려 있지만, 각 그룹의 실적과 재무여력에 비해 규모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본업의 견조한 현금 창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투자와 채용은 지속될 수 없다. 이에 <IB토마토>는 주요 그룹의 투자 능력과 본업 성과,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재원 마련 역량을 점검하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김규리 기자] LG그룹은 향후 5년간 국내에 100조원을 투자를 통해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점찍은 ABC(인공지능·바이오·클린테크) 사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전략에 공을 들이고 있다. 다만 최근
LG전자(066570),
LG에너지솔루션(373220),
LG화학(051910),
LG디스플레이(034220) 등 주요 계열사 전반에서 수익성 악화가 이어지고 있고 일부 핵심 계열사 실적 둔화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대규모 투자 재원 마련이 가능할지, 실제 집행 단계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LG)
5개년 100조 투자 계획…구광모 회장 "소부장 투자에 집중"
17일 재계에 따르면 LG그룹은 향후 5년간 국내에 100조원을 투자하는 계획 가운데 소재·부품·장비 부문에 60조원을 투입할 방침이다. 기술 고도화와 생산능력 확충에 자금을 집중하고 나머지는 ABC 산업으로 분류한 미래 포트폴리오에 배분할 계획이다. 이는 지난해 발표한 그룹 중장기 투자계획(2024~2028년)에 따라 국내에 102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방침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국내 투자 규모는 같은 기간 글로벌 투자 규모의 약 65%에 해당한다.
이번 투자 규모는 과거와 비교하면 소폭 줄어든 수준이다. LG그룹은 지난 2022년 전략보고회를 통해 2022~2026년 국내에 106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에는 전체 투자액 가운데 약 40%를 미래 성장 분야에 집행하고 48조원을 연구개발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전체 투자액은 106조원에서 102조원으로 줄었지만 소부장 등 제조 라인 중심으로 투자 방향을 재편하며 미래 성과를 보다 구체화하겠다는 점에서 투자 집중도는 오히려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초 LG그룹은 ABC 사업과 배터리, 자동차 부품, 차세대 디스플레이 등 성장 분야에 국내 투자액의 50%를 집행할 예정이었으나, 이번 계획을 통해 소재·부품·장비 투자 비중을 상향 조정했다. 1년 만에 소부장 기술 개발과 확장 등 투자 집행처를 보다 구체적으로 재설정하고 전체 투자 비중도 60%까지 끌어올린 셈이다.
구광모 회장은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이번 투자 계획을 직접 언급하며 “국내 산업 생태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며 “첨단 기술에 필요한 소부장을 국내에서 개발·생산하는 혁신 생태계를 키워가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결국 미국의 자국 중심 정책과 관세 강화, 미중 갈등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 환경이 급변하는 가운데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소부장 중심의 안정적인 제조 공급망을 구축할 필요성을 절감한 것으로 풀이된다.

소부장 투자가 가장 적극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전자 계열사다. LG전자는 미래 사업으로 추진 중인 전장과 스마트팩토리 분야에 상당한 투자가 이어질 전망이다. LG전자의 전장 사업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전기차 파워트레인, 차량용 조명 등 3대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이들 사업을 중심으로 연구개발 투자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관련 업계에서는 LG디스플레이의 차세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LG이노텍의 카메라모듈과 센싱 부품 등 핵심 부품 사업도 60조원 투자 리스트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외에도 LG에너지솔루션의 원통형 배터리 생산라인 확충과 LG화학의 차세대 전지 소재 개발에도 자금이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LG그룹은 “국내를 핵심 소재 연구개발과 스마트팩토리 등 제조 혁신의 중심 기지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광화문빌딩 매각 대금·LG전자 인도 IPO 자금 활용 가능
핵심 계열사들의 실적 둔화에 따른 현금창출력 악화로 재원 마련에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LG(003550)는 최근 서울 중구 광화문빌딩 매각을 통해 확보한 4000억원을 미래 투자 재원으로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LG전자가 최근 인도 IPO를 통해 조달한 약 2조원의 자금도 납부세액을 제외한 금액이 국내로 유입되면서 투자 재원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높다.
LG전자 측은 <IB토마토>에 “인도 IPO 대금은 금융비용이나 차입금 비율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1조8000억원의 현금이 유입돼 재무 건전성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며 “해당 자금은 미래 성장 투자를 중심으로 활용해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제고에 나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ABC 사업을 주도할 LG전자를 비롯해 LG에너지솔루션과 LG화학의 실적 부진이 이어지면서 영업활동을 통해 창출되는 현금만으로 대규모 투자 재원을 모두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LG전자의 기업잉여현금흐름(FCFF)은 2023년 1조1376억원에서 지난해 마이너스(-) 1조1661억원으로 적자 전환했으며 올해 3분기 기준으로도 -2616억원에 머물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생산설비 증설이 집중되면서 2022년 -2조원 수준이던 FCFF는 지난해 -13조4596억원까지 확대됐다. LG화학 역시 대규모 설비투자와 신사업 투자 부담이 이어지며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FCFF는 기업이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에서 설비투자 등을 차감한 값으로, 기업의 투자 집행 이후 현금 흐름 구조를 보여주는 지표다. FCFF가 지속적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할 경우 영업현금흐름만으로 투자 지출을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에 놓였다는 의미로 향후 차입 확대나 자산 매각 등 외부 재원 조달 필요성이 커질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되기도 한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에 “LG그룹이 연평균 20조원 규모의 투자를 지속적으로 집행하려면 계열사 차입 확대나 추가 자산 매각이 불가피할 수 있다”며 “결국 계열사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투자 집행 속도는 조정될 가능성도 열어놔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규리 기자 kk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