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인재전쟁)①고금리 시대 끝나자 'IT·IB 인재' 쟁탈전
조직력 강화 나선 증권사들, 신입 채용과 육성 '승부수'
물밑 인재 영입 전쟁 '한창'…조직문화 개편 선행돼야
공개 2025-10-21 06:00:00
이 기사는 2025년 10월 17일 17:18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증권은 사람 장사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증권업은 개인의 업무 역량이 회사의 성패를 좌우한다. 최근 증권업계에서는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사업 구조 개편과 신시장 발굴 등 업계 전반에서 변화의 흐름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이에 <IB토마토>는 증권업계의 인력 구조 변화와 그 배경을 살펴보고 향후 시장의 방향성을 전망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최윤석 기자] 국내 주요 증권사들의 하반기 인재 모집이 시작됐다. 이번 모집에선 핀테크 업체에 대응키 위한 IT 인재 영입과 주식·채권 발행과 같은 전통 기업금융(IB) 인력 모집 경쟁이 두드러지게 나타고 있다. 고금리 이후 증권사들의 사업 개편이 이유다. 
 
채용시장을 보면 회사가 보인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메리츠증권은 오는 24일까지 대졸 신입사원 공개채용 서류접수를 진행한다. 지원 대상은 4년제 대학 학사 이상 기졸업자 및 2026년 2월 졸업 예정자로 모집 규모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최소 두 자릿수 이상의 채용이 이뤄질 전망이다.
 
(사진=메리츠증권)
 
메리츠증권의 이번 신입 공채가 주목받는 이유는 15년 만에 이뤄진 신입 공채라는 점 때문이다. 그간 메리츠증권은 인사나 회계 같은 지원 인력은 메리츠금융그룹 차원에서 구하고 본사업에 대해서는 투자 프로젝트별 전문가들이 팀을 꾸리는 방식으로 인원을 충원했다.
 
하지만 올해부터 메리츠증권이 전통IB와 브로커리지 같은 조직 협업이 중요한 사업을 중점적으로 키우기 시작하면서 기존 채용 기조는 변화를 맞았다. 메리츠증권은 이번 채용에서 세일즈앤트레이딩(S&T), 리테일·디지털, 리서치. IT. 경영지원·내부통제 부문에서 채용을 진행해 조직력 강화에 힘을 줬다.
 
채용설명회에서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사장이 학생들에게 강연하고 있다.(사진=한국투자증권)
 
실제 주식·채권 발행 같은 전통IB나 브로커리지를 주력으로 삼는 증권사는 외부 영입보다는 육성을 택한다. 끈끈한 조직문화와 강인한 인내심이 사업 운영에 필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한국투자증권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신입 채용 축소 분위기 속에서도 매년 150여 명의 신입사원을 꾸준히 채용해왔다. 대표이사가 각 주요 대학을 찾아 채용설명회를 여는 것은 한국투자증권의 오랜 전통 중 하나다.
 
다만 한국투자증권의 업무강도는 국내 증권사를 통틀어 가장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매년 채용되는 150명의 신입사원 중 상당수가 매년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퇴직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살아남는다면 그것 자체가 ‘한투 출신’이라는 프리미엄으로 남는다. 
 
경력 채용시장에선 IB 영업직군 대신 AI 개발 같은 IT 직종의 몸값이 치솟고 있다. 토스와 같은 핀테크 업체의 도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IB와 같은 B2B 업무에서도 내부통제 시스템 구축 등 IT 인력 수요가 발생한 탓이다.
 
헤드헌팅 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최근 증권사들의 IT 인력 수요가 매우 높아지고 있어 대리급부터 관리 직급까지 다양하게 영입 의사를 밝히고 있다"라며 ”IB인력 같은 영업실무 영역은 IT 인력 같이 수요가 확연히 늘었다고 보이지 않지만 현재와 같은 시장의 호조세가 계속된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금리 이후 사업 개편, 인력 전쟁으로 번져
 
국내 증권사 인력 전쟁은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러시아 우크라나이 전쟁 발발 이후 국제 금융시장은 갑작스러운 고금리를 경험해야 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한국은행은 그해 기준금리를 기존 1.0% 수준에서 3.25%까지 올렸다.
 

한국 기준금리 추이(사진=한국은행)
 
고금리는 부동산 시장을 직격했다. 2020년 코로나 펜데믹 이후 저금리로 풀린 자금은 부동산으로 향했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고금리가 찾아오자 대출금리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부동산 자산이 부실화됐다.
 
사실 저금리 시기 국내 증권사들은 부동산금융을 키워왔다. 특히 중소형사 같은 경우 당시 지방사업장을 중심으로 부동산금융을 키웠다. 대형사와의 경쟁을 피하는 한편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금리 이후 지방 분양시장 침체와 분양 저조로 인한 부실화는 곧 중소형 증권사와 더 나아가서는 증권업 전체로까지 퍼졌다. 이후 금융당국의 부동산금융 규제 강화가 이어졌고 증권사들은 부동산금융 조직을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고금리로 인한 금융위기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시장 판도를 변화시켰다. 고금리로 인해 자금조달 시장 불황이 발생할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기업들의 다양한 자금 조달 시도가 이어지면서 오히려 채권발행과 주식발행 시장이 성장한 것이다.
 
특히 주식발행시장에서 중소형 기업의 기업공개(IPO) 도전이 계속됐다. 대기업들은 대규모 유상증자나 주가수익스와프(PRS)와 같은 그간 시장에서 등장하지 않던 자금조달 기법이 시도되면서 시장이 커졌다. 여기에 더해 2024년부터는 고금리가 끝나기 시작하면서 채권 발행으로 눈을 돌리는 기업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메리츠증권이 전통IB 확대를 선언했을 당시에도 시장에선 그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 그간 부동산금융과 저등급 기업 대출로 사세를 성장해온 메리츠증권이 인내와 시간이 필요한 전통IB 정착을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리츠증권이 전 NH투자증권(005940) 대표를 지낸 정영채 고문 영입을 하면서 본격적인 인력 경쟁의 시작 알렸다.
 
발행어음, VC 등 인력 수요 증가…조직문화 바뀌어야
 
2025년 10월 현재도 증권사들 사이에선 물밑 영입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엔 발행어음 인가를 앞둔 증권사들을 중심으로 발행어음 자금운영이나 프리IPO 투자와 벤처캐피탈(VC) 투자 같은 분야 인력에 대한 수요도 증가해 열기를 더한다.
 
하지만 이 같은 인재 영입이 성공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한 조직문화 개편도 선행되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를 영입했다고 해도 증권사 조직이 해당 업무에 부합하지 않는 문화를 가진다면 인재영입이 무위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현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 한국 지점 대표 (사진=아폴로) 
 
대표적인 예가 삼성증권(016360)이다. 지난 2022년 삼성증권은 골드만삭스 출신 이재현 당시 부사장을 IB1부문 부문장 자리로 영입했다. 그간 삼성 금융계열사 출신을 주요 사업장으로 선임하는 관례를 깨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삼성증권에서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삼성 특유의 조직문화가 원인이 됐다. ‘관리의 삼성’이라 불릴 정도로 빡빡한 내부 규제로 이 부문장은 그가 추진한 IPO 부문을 비롯한 기업금융 확대를 이루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 전 부문장은 2024년 세계 2위 사모펀드(PEF) 운용사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이하 아폴로) 한국지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전 부문장의 능력은 삼성증권보다 상대적으로 업무 자율도가 높은 사모펀드에서 꽃을 피웠다.
 
IB업계에 따르면 아폴로는 올해 1조원을 목표로 펀딩을 진행 중이다. 해당 펀딩은 국내 주요 연금이 출자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실적은 아폴로의 연간 평균 4000억원의 두 배를 상회하는 수치다.
 
IB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최근 사업 구조 개편을 진행 중인 증권사들이 여러 방법을 통해 대리급 이상의 실무진 영입에 나서고 있다"라며  “하지만 영입된 인재를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회사의 조직문화가 뒷바탕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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