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김규리 기자] 미중 패권 경쟁 불똥이 한국 조선업계로 번지면서
한화(000880)그룹이 때아닌 외교 리스크의 한복판에 섰다. 중국 상무부가
한화오션(042660)과
한화시스템(272210)의 미국 현지 법인 5곳을 제재 명단에 올렸기 때문이다. 한화로선 글로벌 조선·방산 확장을 본격화하던 시점에 외교적 제동이 걸리며 난감한 처지다. 시장에서는 직접적인 사업 차질은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미중 갈등이 한국 조선산업 전반의 공급망 리스크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사진=한화오션)
한화오션·한화시스템 자회사 필리조선소 등 포함…한화, 리스크 관리 집중
20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상무부의 한화오션과 한화시스템의 미국 자회사 5곳에 대한 전면 거래금지 조치로 연간 850억원 규모의 피해가 예상되는 가운데 한화오션은 최근 국제법무 전문 인력 충원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룹은 내부적으로 글로벌 리스크 관리 체계 강화를 서두르고 있다. 한화오션은 최근 국제계약·소송·분쟁 경험을 갖춘 법무인력 충원에 나섰다. 향후 국제 계약 체결 시 법적 리스크와 협상 전략 등을 수립하고 국내 소송 및 분쟁사건 대응은 물론 계약 관련 분쟁과 국제 소송·중재 지원 업무 등을 전담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동관 부회장이 직접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를 챙기고 그룹 차원에서도 대규모 사업인 만큼, 글로벌 시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외교·법률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특히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최근 창립기념사에서 “글로벌 선두로 도약해야 한다”고 강조한 직후 제재 이슈가 불거지면서 추후 글로벌 시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가피한 변수에 대비한 선제적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에 "한화가 국익 산업으로서 미국과의 협력에 적극 나서온 만큼 이번 제재는 오히려 그 과정에서 발생한 외교 리스크의 현실 사례"라며 "정부 차원의 외교적 지원과 함께 기업 내부에서도 국제 분쟁 대응 역량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직접 타격은 제한적”…그러나 불확실성은 확대
앞서 지난 14일 중국 상무부는 ‘반외국제재법’에 근거해 한화오션과 한화시스템의 미국 자회사인 △ 한화쉬핑 △ 한화필리조선소 △ 한화오션USA인터내셔널 △ 한화쉬핑홀딩스 △ HS USA홀딩스 등 5곳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시장에서는 이번 조치가 상징적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중국산 후판이나 부품을 사용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실질적 피해는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조선업이 미중 양국 모두에서 안보 산업으로 분류되는 만큼 향후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질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김용민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이번 제재는 현재의 조선해운 시장에 어떠한 영향도 줄 수 없다"며 "HS는 에너지 해운에 초점을 맞춘 회사로 에너지 수출입 관계와 최근 트렌드 등을 감안해도 제재 영향이 매우 제한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재혁 LS증권 연구원 역시 “이번 조치는 미 무역대표부의 제재에 대응한 보복 성격으로, 마스가 프로젝트 등 진행 중 사업에는 실질적 영향이 크지 않다”며 “다만 향후 미 해군과 협력 중인 국내·일본 조선소로까지 중국의 추가 제재가 확대될 경우 글로벌 선주사들의 한국산 선박 발주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상선 수주 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도 <IB토마토>에 “한화가 중국 내 블록 공장을 일부 운영하긴 하지만 중국에서 생산한 블록을 미국에 수출하는 구조는 아니다”며 “단기적으로 사업 차질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최대 6000만달러(약 850억원) 규모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향후 1~2년 내 실질적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석종건 방위사업청장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국 마스가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고 답하기도 했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조선업은 양국 모두 안보와 직결된 산업으로, 갈등이 심화될 경우 단순 제재를 넘어 수출입 규제 등으로 확대될 수 있다”며 “한국 조선산업은 중국과 경쟁이자 협력 관계에 있기 때문에 갈등이 장기화되면 협력 여건이 좁아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규리 기자 kk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