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의 경영권을 두고 시작된 MBK파트너스와 최윤범 회장의 힘 겨루기가 장기전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경영권 다툼을 넘어 한국 경제에서 사모펀드의 존재감을 각인시킨 기점이 되었다. 이제 사모펀드는 자본시장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에 <IB토마토>는 국내 주요 사모펀드들의 최근 행보와 경영 전략을 살펴보고 그 미래를 가늠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최윤석 기자] 올해로 사모펀드투자전문회사 제도가 도입된 지 20년이 됐다. 당시 국내 자본시장에서는 기업들의 자금 수요를 해결할 돌파구가 절실했고 사모펀드는 그 해답이 됐다. 이를 통해 사모펀드는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고, 기업의 자금조달과 경영 정상화 등 긍정적인 효과도 낳았다. 그러나 최근 사모펀드는 급성장을 넘어, 이제는 '상생'이라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사모펀드 운영 모범사례 '디엔솔루션즈'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공작기계 기업 디엔솔루션즈의 코스피 상장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디엔솔루션즈는 지난 10월8일 한국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신청서를 접수했다. 현재는 심사 마무리 단계로 빠르면 연내 상장도 가능할 전망이다.
(사진=디엔솔루션즈)
디엔솔루션즈는 국내 시장 점유율 국내 1위, 매출액 기준 글로벌 3위의 공작기계 제조사다. 현재 시장에서는 디엔솔루션즈의 기업가치가 최대 7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디엔솔루션즈는 1976년 대우중공업 공작기계 사업부가 모태다. 대우그룹 해체 이후 2005년 두산그룹에 인수됐고 두산인프라코어로 사명을 바꿨다. 2016년 두산그룹은 자금난에 빠지자 MBK파트너스에 회사를 매각했고 2022년 1월 DN그룹이 MBK파트너스로부터 인수했다.
디엔솔루션즈의 정상화에 이은 기업공개(IPO)는 사모펀드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디엔솔루션즈(당시 두산인프라코어)는 두산그룹이 매각할 당시 ‘고정밀 5축 머시닝센터의 설계 및 제조 기술’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면서 외국계 자본 인수가 무산된 바 있다. 국내에서 마땅한 인수처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MBK파트너스가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MBK파트너스는 1조1300억원에 사업부를 인수한 뒤 북미지역 딜러 교체와 중국시장 개척 등 경영개선에 나섰다. 이와 함께 신제품 개발과 R&D(연구·개발)에 집중해 전기차 모터하우징, 코어부품, 배터리하우징 등 자동차 부품 공작기계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DN그룹 인수에도 사모펀드가 큰 역할을 했다. DN오토모티브는 DN솔루션즈 인수 당시 한국투자증권에 1조원 대출 외에도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PE)와 KB인베스트먼트 등을 대상으로 2200억원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 자금을 마련했다. 이어 상장 이전 프리 IPO에선 산업은행과 스틱인베스트먼트가 공동으로 운용하는 펀드가 활용돼 2500억원의 자금을 융통했다.
존재감 커진 PEF, 시중은행과 어깨 나란히
지난 2004년 간접투자자산운용법 개정으로 국내에도 사모투자전문회사 PEF(Private Equity Fund)가 설립됐다. 이후 사모펀드는 기업 인수합병(M&A)과 구조조정 촉진, 투자수단 다양화를 이끌며 자본시장에서 성장을 거듭했다.
사모펀드 도입은 펀드를 통한 지배구조 개선과 수익의 선순환에 있다. 앞서 국내 자본시장에서는 금융투자 확대로 유통되는 자금의 전문적 운용이 절실했다.
사모펀드 등장은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진 사례다. 국내 사모펀드 시장 규모는 도입 첫해 4000억원에서 2023년 말 기준 136조4000억원으로 커졌다. 사모펀드 수도 1126개로 급증했다. 기존 금융업권에 준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도 나온다.
UAE대통령 간담회 초대된 (사진=WAM)
지난 5월28일 무함마드 빈 자예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의 방한에서 열린 비공개 간담회에선 삼성·SK·현대차·한화 등 주요 그룹 총수 9명뿐만 아니라 한상원 한앤컴퍼니 대표, 채진호 스틱인베스트먼트 대표, 이해준 IMM프라이빗에쿼티 대표 등 주요 사모펀드 대표가 초정 될 정도로 존재감이 커졌다. 일각에서 기업 운영의 노하우가 필요한 UAE 입장에선 금융지주사보다 사모펀드가 더 적합했다는 후문이 나올 정도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에 "UAE와 같은 산유국은 국내 금융권과는 비할 수 없는 막강한 자본력을 가지고 있다"라며 "그렇기에 실제로 자본을 운용하고 산업과 회사를 잇는 사모펀드가 기존 금융권을 대신해 초청받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상생 출발점 '엠앤씨솔루션'
사모펀드는 국내 자본시장 성장과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투자금 회수와 기업의 모범자본 공급자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던 사모펀드는 이제 시장과의 상생이라는 과제도 부여받았다.
올 하반기 마지막 대어인 엠앤씨솔루션으 상생의 시작점이 될 전망이다. 이번 상장은 희망공모가액 산출 과정에서 주당 평가액 대비 할인율을 최대 30.68%로 설정했다. 기업 실제 가치보다 3분의 1가량 낮은 수준에서 공모를 시작하는 것이다.
현재 엠앤씨솔루션는 소시어스프라이빗에쿼티(소시어스PE)와 웰투시인베스트먼트가 보유하고 있다. MNC솔루션 인수 당시 활용한 펀드 만기는 내년까지다. 공모가를 최대한 끌어올려 엑시트하는 방향도 고려됐지만 두 사모펀드는 결국 상생을 선택했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IB토마토>에 "국내 사모펀드는 평균적으로 주식시장 대비 높은 초과수익률을 기록하고 빠른 성장을 이뤄왔다"라며 "하지만 이제 단순한 출자자를 넘어 기업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함께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