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최윤석 기자] 국내 증권사들의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 투자금융(IB) 중 부동산금융을 제외한 나머지 부문에서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의 규제 강화로 부동산금융에서 사실상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자 수익성 회복을 위해 각 증권사들이 전통IB로 눈을 돌린 탓이다. 실제 부채자본시장(DCM)과 주식자본시장(ECM)에 중소형사까지 뛰어들었지만 수익 대부분은 일부 대형사가 가져간 것으로 파악된다.
수익성도 '부익부 빈익빈'
27일 NICE신용평가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증권사의 순이익은 도합 4조원으로 추산된다. 전년 동기 대비 소폭 상승했지만 자기자본 규모 4조원 이상 종합금융투자사업자 대형 증권사 중심일 뿐 중소형 증권사 대부분은 수익성 개선이 요원하다.
실제 NICE신용평가가 추산한 종투사 증권사의 평균 순이익 증가율은 53%인 반면 자산규모 1조원 이상 4조원 미만 대형사의 경우 –30%로 오히려 역성장했다. 자산규모 1조원 이하 중소형사는 4% 성장에 그쳤다.
(사진=NICE신용평가)
이 같은 수익성 양극화는 사업성 회복 결과라는 분석이다. 종투사의 경우 지난 1년간 개인투자자를 중심으로 한 수수료수익을 비롯해 수탁업, IB에서 각각 9.9%, 10.9%, 12.0%씩 수익이 성장한 반면, 대형사의 경우 수탁업에서 1.9%의 소폭 성장했을 뿐 수수료수익과 IB부문에선 각각 -4.0%, -15.3%의 수익이 하락했다. 부동산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중소형사는 IB부문 수익이 -29.2%나 감소했고 수수료수익과 수탁업에서도 각각 9.2%, 2.4% 떨어졌다.
전통IB로 몰리는 중소형 증권사
경기 부진과 금융당국 규제로 인해 DCM과 ECM 등 전통 IB에서는 부동산금융이 주력인 증권사들의 진출이 이어지고 있다.
DCM에선 메리츠증권이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지난 8월 메리츠증권은 DCM 주관실적에서 처음으로 순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2000억원 규모 KDB생명 후순위채 발행 주관을 맡았다. 통상적인 DCM 불황기에 주관에 성공, 단 1건으로 7위에 랭크됐다. 지난 4월부터는 굵직한 금융채 인수에 나서기도 했다.
(사진=메리츠증권)
사실 DCM은 메리츠증권의 참여가 적었다. 수익성에 집중하는 메리츠증권 특성상 0.15%에서 0.4%대인 채권 발행 수수료 수익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규모가 곧 경쟁력인 DCM에서 메리츠증권은 그 존재감을 키우며 금융채를 중심으로 인수와 주관에 나섰다. 메리츠증권은 지난 4월 1000억원대 교보증권 회사채를 시작으로 400억원 규모 KB증권 회사채, 7월 2500억원대 교보증권 후순위사채도 인수했다.
ECM시장에선 중소형사의 인수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아이엠증권(iM증권)은 지난 8월 상장예비심사 청구를 진행한 나우로보틱스의 상장을 주관한다. 아이엠증권이 기업공개(IPO)에 참여하는 것은 2023년 스톰테크 이후 처음이다.
유진투자증권(001200)도 씨메스와 앰틱스바이오의 인수사로 나서고 지난 1월과 2월 오랜만에 IPO 실적으로 중소형 IPO 돌풍을 일으킨
DB금융투자(016610)도 단독 주관한 아스테라시스의 상장예비심사를 진행 중이다.
문제는 경쟁 과열에 따른 수익성 악화다. 업계에선 경쟁이 치열해지는 만큼 증권사 수수료율이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에 “부동산금융이 사실상 막히면서 수익성 회복을 위해 ECM과 DCM 시장에 중소형사들의 참여가 확연하게 늘어났다”라며 “대형사끼리 경쟁에서도 출혈이 발생하는 상황이라 수익성 회복은 2021년 같은 활황이 오지 않는 이상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이 기회"…부동산에 눈 돌리는 증권사
전통 IB 경쟁 심화로 부동산금융에 눈을 돌리는 증권사도 등장했다. 저금리 시절 부동산금융 관련 상대적인 재무적 안정성을 가진 증권사들이다. 상대적으로 주춤해진 시장을 선점해 수익성 다각화를 노리려는 의도다.
키움증권(039490)의 올 상반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부동산 채무보증 규모는 1조6025억원으로 지난해 말 8188억원에 비해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키움증권의 부동산금융 진출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재무 건전성에 있다. 키움증권의 PF 우발부채는 상반기 말 자기자본의 34.6%다. 대출 약정액 기준으로 상반기 말 신용보강 약정액은 1조9367억원으로 자기자본의 41.8% 수준이다.
키움증권은 이를 바탕으로 상대적 안정성이 높은 사업장을 중심으로 자금을 투입했다. 신용등급 A- 이상 시공사가 참여하는 현장을 중심으로 브릿지론을 포함해 안정성이 확보된다면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했다.
송도국제화복합단지 2단계 수익용지 개발사업 조감도 (사진=GS건설)
가장 대표적인 딜은 2024년 들어 진행한 인천 송도국제화복합단지 2단계 수익용지 개발사업 본PF 조달이다. 인천광역시 연수구 송도동 551-1번지 일원 공동주택과 주상복합 건설 사업으로 GS건설이 시공을 맡았다. 키움증권은 총 6000억원 규모 본PF 대출 중 2500억원 규모의 조달을 진행했다.
NH투자증권(005940)은 작년 말 진행된 조직개편에서 인프라투자와 부동산 금융을 담당하는 IB2본부 산하 프로젝트금융본부를 인프라투자본부로 바꾸고 실물자산투자본부 아래 부동산PE(프라이빗에쿼티)부를 신설했다. 2021년 4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PE들도 부동산자산운용업을 할 수 있게 된 점을 노렸다. NH투자증권은기관전용 부동산 사모펀드(PEF)를 통해 현재 시장에 나와있는 저평가 부동산 자산에 대해 투자할 계획이다.
윤재성 NICE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부동산금융 비중이 큰 증권사들이 전통IB로 사업을 전환하면서 경쟁 강도가 심해지고 있다"라며 "현재 시장은 자본력이 있는 기업이 수익을 올리는 상황으로 수익성 양극화는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