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최윤석 기자] 미국 대선 결과 등 대내외 불확실성 증가로 채권자본시장(DCM) 전망이 어둡다. 이달 들어 일반 회사채 발행까지 줄어들자 공모채 시장에 모처럼 얼굴을 내미는 기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존 회사채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던 기업들이 관망하는 가운데 시장의 반응을 살피기 위한 전략이다. 오랜만에 공모채 시장에 복귀하는 이들 기업의 도전이 시장에서 어떠한 반응을 이끌어낼지 주목된다.
11월 채권시장 '일단 멈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15일 기준 기준 일반 회사채 발행을 위한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기업은 한 건도 없었다. 통상적으로 채권시장은 11월부터 12월 결산법인의 자금조달 계획이 마무리에 접어들어 발행이 저조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보름 동안 전무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불확실성 확대로 인한 위험 회피 심리 강화와 발행 금리 인상이 원인으로 풀이된다.
서울 여의도증권가 (사진=IB토마토)
금융투자협회가 발표한 '10월 장외 채권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 10월 국고채 3년물 금리는 2.936%로 전월 말보다 0.111%p 상승했다. 같은 기간 5년물은 2.998%, 10년물은 3.100%로 각 0.111%p, 0.108%p 올랐다.
금투협 관계자는 "지난 미국 대선에 나선 두 후보의 재정 확대 정책 강조로 미 국채 발행 확대가 예상된다"라며 "미 국채금리가 상승한 가운데 지난달 우리나라 국채금리 역시 전 구간에서 전월 대비 상승 마감했다"고 말했다.
실제 시장에선 미국발 불확실성 확대가 국내 채권 시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섞인 분석도 나온다. 시장의 예상보다 채권시장에서 형성되는 금리가 높아지고 고금리의 장기화로 채권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이 난항을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허정인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한미 간 경제 펀더멘털 차이에 따른 원달러 환율의 급격한 상승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를 제한할 수 있다"라며 "여기에 더해 한국을 둘러싼 경제적 변수가 채권 발행과 투자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외국인 채권 매수 잇달아…내년 전망은?
주식시장과 달리 외국인들은 채권 순매수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0월 외국인은 국채 5조원, 통안채 3조6000억원 등 총 13조6000억원을 순매수했다. 국내 채권 보유 잔고는 전월 말보다 5조5000억원 늘어난 268조9000억원에 달했다.
(사진=금융투자협회)
외국인의 국내 채권 시장 매수는 한국의 세계국채지수(WGBI)에 편입 확정이란 호재와 더불어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 세계 주요 26개국 국채가 편입된 WGBI는 추종자금 규모 2조5000억달러로 우리나라 국채는 내년 11월부터 편입된다.
결국 시장의 관심은 오는 28일 예정되어 있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 모아진다. 기준금리는 동결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기자간담회를 통해 향후 금리 인하 계획을 내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행은 침체되어 있는 국내 경기와 환율 변동폭에서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올 3분기 국내총생산 GDP는 이전 한국은행의 전망치인 0.5%를 크게 하회하는 0.1%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최근 원달러 환율은 트럼프 당선 이후 1400원을 넘나들고 있다.
이에 대내외 변수가 어느 정도 안정화되기까지 기다려보자는 심리가 강해져 올해 채권 발행시장은 평소보다 조금 이르게 발행 일정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많은 기업들이 채권발행 일정을 조기에 종료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라며 “연말 만기가 도래하는 기업을 제외하고는 시장 상황이 안정화되기 지켜보자는 심리가 강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채권 발행 줄자 도전장 내미는 기업들
불확실성 확대로 채권 발행이 잦아들었지만 공모채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기업들이 등장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화오션(042660)은 19일 500억원어치 회사채 조달을 위한 수요예측을 진행한다. 1년6개월물 200억원, 2년물 300억원 모집은 수요예측 결과에 따라 최대 1000억원까지 증액 가능하다.
앞서 한화오션은 지난 2015년 이후 공모채 시장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2010년대 중반 발생한 조선업 불황 여파로 대우조선해양시절 신용등급이 ‘CCC’급까지 추락한 바 있다.
하지만 2020년부터 조선 업황 회복과
한화(000880)그룹 인수로 지난해 말 나이스신용평가 기준 BBB-에서 두 단계 상승한 BBB+등급으로 끌어올리면서 회사채 발행을 할 수 있는 최소 등급을 확보했다. 채권 발생 시점을 11월로 잡은 이유는 내년에 앞서 시장 반응을 살펴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발행액수도 500억원 수준으로 낮췄다. 지난해까지 조단위 자금을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해온 것에 비해 액수가 적다. 이번 채권 발행이 실제 필요자금 조달 목적이라기 보다 일종의 ‘몸풀기’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HS
효성첨단소재(298050)도 3년여 만에 공모채 시장에 복귀한다. 19일 600억원 규모의 공모채를 발행하기 위한 수요예측을 진행하며 수요예측 결과에 따라 최대 1200억원까지 증액까지 고려하고 있다.
이전 HS효성첨단소재는 주로 기업어음(CP)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왔다. 하지만 단기채 발행보다는 회사채 발행이 비교적 유리하다는 판단에 이같이 결정했다. 발행을 11월로 잡은 것도 비교적 수요가 분산되지 않는 비수기로 노려 시장의 호응을 살핀다는 전략이다.
불안정한 시장에서 한화오션과 HS효성첨단소재과 같은 시도는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별 전망이 엇갈리는 가운데 기업마다 자금조달 전략을 마련 중이기 때문이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내년 상반기까지 대내외 변수에 따른 채권 수급 부담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하반기 WGBI 편입과 점진적인 금리 인하 등 시장의 기본적인 호재가 내년 채권시장에도 반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