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최윤석 기자] 도날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24년 미국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국내 자본시장이 더 깊은 안갯속으로 빠져드는 분위기다. 실제로 당선 직후 내뱉은 한 마디가 주식시장을 출렁이게 할 정도였다. 트럼프 당선인의 경제정책 기조가 과거와 유사하게 감세와 규제 완화, 보호무역주의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되면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의 금리하락 기조와 충돌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 따른 불확실성 확대로 주식과 채권 등 기업자금 조달에도 비상이 걸렸다.
주식시장 변동성 커져…산업별 차이 심해질 것
기업공개(IPO)를 비롯한 주식자본시장(ECM)은 한 마디로 '시계 제로'다. 트럼프 후보 당선 이후 불확실성으로 인해 증시 변동성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 트럼프 당선인의 행보는 즉각적으로 국내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당선 직후인 7일 하락세로 장을 시작했던 코스피 지수는 등락을 거듭하다 전날 대비 0.04% 오른 2564.63에 장을 마감했다. 증시 하락이 예상됐지만 트럼프 당선인의 한국 조선업 협력 발언 한 마디가 시장을 흔들어놓았다.
실제로 김태효 대통령실 안보제1차장은 트럼프 당선인이 윤석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미국 조선업이 한국 도움과 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사진=연합뉴스)
이에 따라 증권업계에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에 따라 산업별로 유·불리가 심해질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박석중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트럼프의 당선과 더불어 공화당의 의석 과반 확보로 경기 활황과 주식시장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강해졌다”라며 “다만 행정부 출범 전까지 불확실성 회피 성향이 강해지고 있는 만큼 실제적인 정책 흐름 이후 산업별 유·불리에 따른 차별화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트럼프 행정부의 구체적인 정책이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대통령실과의 통화 한마디에 한 산업분야 주가가 출렁일 만큼 영향이 크다는 것은 분명하다”라며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2차전지와 관련 기업의 IPO를 비롯한 자금조달로 이어졌듯이 향후 시장의 방향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방향 잃은 채권 시장, 금리는 '안갯속'
채권자본시장(DCM)은 다소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트럼프의 재정 정책은 대규모 감세와 인프라 투자로 귀결된다. 이는 미국 정부의 재정 적자를 유발, 미국 국채 발행 확대와 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고금리 시대 막을 내린 연준의 금리 인하 기조와 분명 차이가 있다. 미국 금리가 오를 경우 한국 채권금리에도 압력을 가해 국내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켈리 JP모건 수석 애널리스트는 "연준이 독립적으로 운영되지만 경제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알려줄 수 있기 때문에 여전히 정치에 영향을 받는다"라며 “트럼프의 대선 승리는 이전보다 훨씬 더 확장적인 재정 정책과 무역 전쟁심화로 높은 금리 환경에 노출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60%의 고율 관세를 포함해 보편적 관세 적용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는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을 이끌고 금리 인하에 제동을 걸 수 있다.
실제 채권시장에선 트럼프의 당선 이후 급격한 금리 인상이 이어졌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현지시간으로 6일 뉴욕 채권 시장 오후 거래에서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전일 대비 18bp 급등한 4.479%로 마감했다. 4개월 만에 최고치 수준으로 2년물 금리 역시 7월말 이후 가장 높은 4.312%를 기록했다.
이에 국내 채권 국고 2년물 금리는 전거래일 대비 4.1bp 상승한 2.980%, 3년물 금리는 4.2bp 오른 2.960%를 기록했다. 5년물은 5.2bp 오른 3.023%, 10년물은 6.1bp 오른 3.134%로 마감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사진=연합뉴스)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의 불협화음도 불확실성을 키운다. 미국 연준은 현지시간 7일 연준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마무리하면서 기준금리를 기존 4.75∼5.0%에서 4.50∼4.75%로 0.25%포인트 낮추기로 결정했다.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채권시장은 이달 중순 이후 개점 휴업 상태에 돌입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11월 회사채 발행을 위한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기업은 한 곳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롯데지주의 기업어음증권(일반CP)건으로 일반 회사채 발행을 위한 증권신고서 제출은 한 건도 없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선 불확실성 회피 심리로 자금조달을 미루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왔다. 통상적으로 11월은 연말 결산을 앞두고 막바지 자금 조달이 이뤄진다. 하지만 국내외 변수로 인해 시중 발행 금리는 오히려 높아졌다.
채권업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에 "한미 금융당국이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했지만 시중 금리는 불확실성 증가로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라며 "이에 따라 채권 발행을 최대한 미루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불확실성의 시대, 자금 조달 '난항'
ECM과 DCM의 희비가 엇갈리는 가운데 기업에서는 자금 조달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통상적으로 IPO와 유상증자의 경우 증시 활황이 조달 여건 개선에 필수적이지만 불확실성이 커진 지금으로서는 시장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한편 채권 시장도 미국과 한국의 금융당국의 정책 변화에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대선 이후 트럼프의 자국우선주의에 따라 특정 업종에 쏠림 현상이 있었다"라며 "이에 따라 한국증시는 당분간 각국의 경제 흐름에 따라 등락이 반복되는 상황에 직면했다"라고 말했다.
실제 국내 증시는 불확실성 회피 심리로 외국인들의 순매도가 이어졌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4년 10월 외국인 증권투자 동향’에 따르면, 외국인들은 지난달 중 상장주식을 4조3880억원 순매도했다.
코스피 시장에서 4조2160억원, 코스닥에서는 172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이는 지난 8월 이후 3개월 연속 순매도다. 이에 따라 외국인의 국내주식 보유금액은 지난달 말 현재 상장주식 728조 9000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18조 1000억원 줄었다. 시가총액의 27.7% 규모다.
반면 채권의 경우 3개월 연속 순투자를 이어갔다. 지난달 중 외국인은 상장채권 8조 9990억원을 순매수하고 3조4720억원을 만기상환 받아 총 5조 5270억원을 순투자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시중 발행 금리 인상이 이어지면서 채권 발행이 한시적으로 중단된 상황이다. 시장에선 한미 경제 상황별 정책 변화가 가장 큰 변수라는 분석을 내놨다.
우혜영 LS증권 연구원은 ”일부 연준위원이 기준금리 인하 속도에 제동을 걸고 있는 반면 국내 경제 내수 회복 속도가 더딘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하 압박이 커졌다“라며 ”기본적인 금리 인하 기조는 공유하지만 양국의 물가상황과 경제성장률에 따른 정책 변화에 따라 시장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