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지각변동)①이격거리 규제 폭탄…사업 포기 속출
지자체별 '최대 1000m'까지…에너지 전환 걸림돌 평가
해외는 규제 없거나 15m 이내로 국내와 대조
전문가들 "과도한 규제는 조정할 필요 있어"
공개 2025-07-18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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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친환경·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이 본격화되고 있다. 미국의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를 벤치마킹한 'K-IRA' 입법 추진을 비롯해 전력망 확충, 이격거리 규제 완화 등 인프라 개선 방안이 구체화되면서 한동안 정체됐던 국내 태양광 산업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에 <IB토마토>는 2030년까지 태양광 에너지 수요가 본격적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국내 태양광 산업 생태계가 어떻게 재편될지, 그리고 태양광 사업을 영위하는 주요 기업들의 수익성과 재무구조는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지를 짚어본다.(편집자 주)
 
[IB토마토 권영지 기자] 국내 태양광 산업은 지자체별 과도한 이격거리 규제로 인해 심각한 성장 제약에 직면하고 있다. 기초 지자체들이 태양광 발전소 설치 시 주거지·도로 등으로부터 수백 미터 이상 떨어져야 한다는 조례를 잇달아 도입하면서, 인허가 승인율이 급감하고 업 포기 사례도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해외 주요국과 비교해도 현저히 엄격한 수준의 규제가 국내 재생에너지 확대를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비영리법인 기후솔루션이 태양광 이격거리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과도한 이격거리 규제…사업 인허가율 떨어져
 
현재 한국의 태양광 설비 이격거리는 중앙 정부의 일률적 기준이 아닌, 전국 220여개 기초 지자체 조례에 따라 각기 다르게 설정돼 있다. 이 때문에 태양광 설비 이격거리의 지역별 편차가 매우 큰데 전국 평균은 170~320m 수준이지만, 전남·전북·충남 등의 지역에서는 최소 500m 이상의 이격거리를 요구하는 곳이 적지 않다. 일부 군 단위 지자체에서는 최대 1000m까지 확대하는 사례도 있다. 이는 산업통상자원부가 권고하는 주거지 기준 최대 100m, 도로·하천 등에는 이격거리 규제를 두지 말라는 가이드라인과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정부 가이드라인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데다 지역 주민의 민원과 경관 문제 등을 이유로 대부분의 지자체가 태양광 설비와 관련해 훨씬 더 강화된 기준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과도한 규제로 인해 태양광 기업들은 사업 인허가를 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 전북 지역 한 지자체에서는 500m 이상 이격거리 규정 도입 이후 태양광 사업 인허가 승인율이 두 자릿수에서 한 자릿수로 급감했다. 발전사업자가 입지 후보지를 찾아도 지자체 조례에 막혀 사업을 포기하거나, 아예 계획을 접는 사례가 늘고 있다.
 
게다가 규제를 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민 민원이 줄어들기보다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히고 있다. 이격거리가 과도하게 넓어지면 태양광 설치 가능 지역이 크게 줄어 결국 설비가 특정 지역에 몰리면서 해당 지역 주민 반발이 더욱 거세지는 것이다. 주민들이 태양광 설비 설치를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인 경관 훼손, 토지 가치 하락, 인허가 과정의 불투명성 등은 단순한 거리 확대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다. 여기에 지자체별로 규제가 다르고 수시로 변경되면서 주민들 입장에서는 언제, 어디에 태양광 발전소가 들어올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불안감이 커져 결과적으로 민원이 줄어들기보다 오히려 늘어나는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분석이다.
 
해외 주요국과 비교하면 국내 규제의 과도함은 더욱 도드라진다. 미국은 연방 차원의 일률적 기준이 없고, 일부 주에서만 태양광 발전소 이격거리를 설정하고 있다. 예컨대 캘리포니아·미네소타 등에서는 태양광 설비를 경계로부터 불과 1~3m 정도만 이격하도록 규제한다. 캐나다도 일부 지역에서만 15m 이내의 제한을 두고 있다. 영국과 독일은 아예 태양광 설비에 대한 이격거리 규정 자체가 없다. 독일의 경우 풍력 발전에는 이격거리 규정이 적용되지만, 태양광에는 주민 민원 등 개별 사례에 따라 제한될 뿐이다. 해외 대부분 국가는 태양광 설비의 토지 효율적 이용과 재생에너지 확대에 초점을 맞춰 규제를 유연화하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국가 에너지 전환 목표…"규제 바꾸지 않으면 달성 힘들어"
 
이 같은 국내외 격차는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과도 충돌한다.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1.6%까지 높이겠다고 공언했지만, 지금처럼 기초 지자체별 이격거리 규제가 유지된다면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지자체 규제로 인해 발전 가능 면적이 매우 좁은데다 불확실성이 커져 투자도 위축되고 있다”며 “국가적 에너지 전환 목표와 현장의 과도한 규제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관계부처 간 이견도 문제를 키우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국토의 효율적 이용과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이격거리 규제 완화와 전국 단일 기준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사업 환경 개선과 인허가 간소화 필요성을 강조하는 쪽이다. 반면 환경부는 환경 영향과 주민 수용성 확보 차원에서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관련 논의가 진행 중이다. 현재 기초 지자체별 편차가 큰 이격거리 규제를 표준화하고, 최대 100m 이하로 완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이 발의돼 있다. 하지만 입법 논의는 쉽지 않다. 주민 반발과 정치적 부담, 그리고 지역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표준화된 규제 체계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태양광 발전은 고압 송전선이나 풍력 발전처럼 소음·진동 우려가 큰 시설과 달리, 비교적 환경 영향이 적어 이격거리 규제를 지나치게 넓힐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너지공단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국제적 기준과 현장 데이터를 바탕으로 주민 안전과 경관 보호를 동시에 고려한 표준 이격거리를 정할 필요가 있다”며 “지자체 재량을 존중하되 과도한 규제는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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