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지역 대학 출자 공공 AC, 창업 생태계 견인청년 유출에 부산 제조업 쇠퇴…스타트업으로 돌파구 모색비수도권 최대 '부산미래펀드' GP…환경 개선 기대
[IB토마토 정준우 기자] 부산을 둘러싼 대표적인 오명 중 하나는 '노인과 바다'다. 지난 10년간 청년 인구가 꾸준히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면서 부산에는 고령층만 남았다는 자조 섞인 표현이다. 그러나 흔한 통념과 달리 최근 부산시는 벤처 투자 확대를 통해 청년 벤처 생태계 조성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비수도권 지역 가운데 최대 규모로 조성된 '부산 미래성장 벤처펀드'는 부산 청년 창업 생태계의 든든한 자양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성공적인 펀딩 다음에는 성공적인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부산 지역 청년 벤처 창업 생태계의 불씨를 키우기 위해 앞장서는 곳이 있다. 바로 부산시와 부산 지역 16개 대학이 함께 설립한 공공 액셀러레이터(AC)인 부산연합기술지주다. 부산연합기술지주는 청년들이 지역에 뿌리내리고 경제에 기여할 수 있도록 벤처 투자와 생태계 조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IB토마토>는 박훈기 부산연합기술지주 대표이사를 만나 부산 벤처 생태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훈기 부산연합기술지주 대표이사(사진=부산연합기술지주)
다음은 박훈기 대표이사와의 일문일답이다.
-대표님과 부산연합기술지주에 대해 소개를 부탁한다.
△IBM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이후 GS홈쇼핑 CIO(최고 정보 책임자)를 거쳐 BNK금융지주 부사장으로 재직하며 그룹 내 CDO(최고 디지털 책임자) 및 CIO를 역임했다. 30년 이상 IT 및 디지털 산업 전방에서 전문경영인으로써 역량을 축적해 왔다. 당시 금융, 유통 및 IT를 아우르는 디지털 혁신 프로젝트 및 전략 수립, 스타트업 육성 경험은 현재 공공 창업 생태계 활성화의 밑거름이 됐다.
부산연합기술지주에 대해 설명하자면, 부산광역시와 부산 지역 16개 대학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연합형 기술지주회사다. 부산연합기술지주는 단순 투자 기관을 넘어 기술의 사업화, 창업 육성, 기업의 성장 지원까지 스타트업의 전 생애주기를 밀착 지원하는 ‘공공 액셀러레이터(AC)’로서 정체성을 확립했다. 부산지역 대학교와 산학 협력을 통해 우수한 기술을 발굴하고, 창업 초기 상태의 기업에 대한 투자부터 상장 지원, IR 역량 강화, 법률·세무 컨설팅 등 성장 인프라도 제공하고 있다.
-창업 투자 업계도 수도권으로 몰리고 있다. 부산에 터를 잡은 이유가 있다면?
△부산은 해양, 물류, 관광 등 분야에서 기반이 잘 닦인 도시다. 이에 특화된 기술 창업이 가능한 매력적인 도시다. 부산 지역 대학과 연구기관이 보유한 우수한 기술 자산은 창업 아이템으로 전환할 수 있고, 지자체와 공공기관의 정책적 지원도 점차 강화되는 추세다.
그러나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자 인프라와 민간 자본 접근성이 부족하고, 고급 인재 유입에도 한계가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부산연합기술지주는 주주 대학 및 지역 대학과의 협업과 펀드 유치, 투자자 네트워크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부산을 살기 좋은 도시,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젊은 인구가 유입되려면 대기업이 오거나 스타트업이 성장해야 한다. 부산연합기술지주는 스타트업 등 벤처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까지 투자 112건을 집행했으며, 투자한 스타트업들의 고용 효과도 111명에서 850명으로 늘었다.
-부산은 청년 인구 유출로 ‘노인과 바다’라는 오명을 듣기도 한다. 청년들이 모이는 벤처 생태계는 척박한 실정인데, 이를 바꾸기 위한 방안이 있다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부산에 ‘지속가능한 성장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청년 초기 창업 이후 후속 투자, 사업화 자원 연계, 인재 확보 등 성장 단계서 겪는 구조적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생태 기반이 절실하다. 이를 마련하기 위해 초기 투자 이후 IR, 기업공개(IPO)준비, 법률·세무 컨설팅, 해외 진출 등을 밀착 지원하며 스타트업의 전주기 성장 파트너로 역할을 늘려나가고 있다. 또한 민간-공공 협력 모델을 통해 투자 리스크를 완화하고 있다.
-최근 부산시의 미래성장벤처펀드의 GP(운용사)로 선정된 바 있다. 미래성장펀드는 비수도권 최대규모로 부산시의 고무적인 성과로 보이는데, 이번 펀드가 부산 지역 벤처 생태계에 던지는 의미는?
△국내 창업 투자 생태계의 70% 이상은 수도권에 몰려 있는 등 집중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부산을 포함한 5대 광역시의 투자금 비중은 10% 미만에 불과하다. 창업투자 생태계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의 격차가 큰 상황이다. 또한 국내 벤처 투자 금액의 80% 이상은 수도권에 집중된 상태로 수도권 편중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부산의 벤처 투자액은 수도권 대비 투자 규모 측면에서 여전히 열악한 것이 현실이다.
다만, 비수도권 최대 규모로 조성된 부산미래성장벤처펀드를 바탕으로 부산의 전략 산업 혁신 클러스터와 연계된 딥테크 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지역 대학 및 공공연구기관과 연계한 기술 기반 창업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부산 지역의 창업 투자 생태계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부산연합기술지주 등 창업 투자자가 적극적으로 스타트업 지원을 통해 전통 제조업과 신산업을 모두 키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주가 중점적으로 육성하고자 하는 산업 영역이 있다면?
△사업을 발굴하기 위해 들여다보는 요소는 창의성, 경쟁력, 시의적절성이다. 창의성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불편했던 것들을 개선하거나, 기존의 아이디어를 차용해 더 나은 것으로 발전시키는 것도 창의성이라 볼 수 있다.
경쟁력은 속도를 의미한다. 남들보다 더 빠르게 차별화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내놓는지가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시의적절성이다. 제 아무리 창의적인 기술이 있어도 시대의 흐름에 부합해야 한다. 지금 메타버스 기술의 원조인 세컨드라이프가 그 예다.
부산은 최근 제조업의 쇠퇴와 청년 인구 유출, 고령화 등으로 지역 경제 전반이 침체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벤처캐피털(VC)이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것은 단순한 신산업 육성을 넘어 기존 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고, 전통 제조업과 신산업이 융합까지 도모할 수 있는, 지역 산업 혁신 수단이 될 수 있다.
부산연합기술지주가 중점적으로 들여다보는 영역은 부산의 뿌리 산업과 청년 창업 사이의 접점 역할을 할 수 있는 기술 영역이다. 전통적인 제조업의 고도화·디지털화에 도움을 주는 ‘스마트 제조·디지털 전환 영역’, 지리적 특성이 반영된 항만 물류 산업을 고도화하는 ‘해양·항만 분야의 디지털화’, 부산시를 디지털 금융 허브 도시로 육성하는 전략과 연계한 ‘디지털 금융·블록체인’ 등에 중점적으로 투자해 육성하고자 한다.
-투자를 결정할 때 창업자의 어떤 면면을 중요하게 보나?
△창업자가 갖춰야 할 것들은 많다. 가령 창업자는 리더십, 명확한 비전, 시장에 대한 통찰력뿐 아니라 실행력, 수용력, 탄력성, 투명성 등 다양한 가치를 갖춰야 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창업자의 역량이라 하면 ‘적극적인 리더십’이다.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에 대해 비전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덧붙이자면 창업자가 적극적이라면 자신의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다. 이는 열정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된다. 아울러 윤리성도 창업자의 역량 중 하나다.
-투자자로서 청년 창업가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스타트업이 실패하는 이유는 서비스나 기술 등 아이템의 기술적 문제 때문이 아니다. 아무도 원치 않는 아이템을 만들거나, 제품이 시장에 적합한지(시장 적합성)를 찾기 전에 지쳐 나 자신과 타협하거나 포기하기 때문이다.
내가 뛰어든 시장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 고객의 니즈, 트렌드, 경쟁을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수많은 문제에 대해 해결 방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처럼 보다 시장에 집중하고, 한 단계 멀리 보고, 신중하게 결정했다면 빠르게 행동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기억에 남는 투자 사례가 있다면?
△한국 리포좀이 기억에 남는다. 비교적 최근인 지난해에 투자한 기업인데, 기업 가치가 2배 이상 올랐다.
이 회사는 부산연합기술지주의 주주 대학인 신라대학교 교원 창업기업으로 리포좀 기술(약물을 체내에 투입 시 체내 흡수율을 높이고, 인체에 미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기술)을 기반으로 알츠하이머 질환 개선을 목표로 하는 진세노사이드 리포좀 약물 전달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약물이 어떤 제형을 가지더라도 동일한 흡수율을 유지할 수 있다는게 리포좀 기술의 강점이다. 리포좀 기술은 해외 의존도가 높은데, 한국 리포좀이 이를 국산화해 의미가 있다. 많은 제약사들이 한국 리포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한국리포좀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운영하는 팁스(TIPS, 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지원) 지원 대상에 선정되며 기술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한국 리포좀은 부산연합기술지주 등 투자자의 자금을 바탕으로 현재 부산 정관에 공장을 확보하는 등 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채비에 나섰다.
-앞으로 부산연합기술지주와 부산 지역 벤처 생태계의 방향성은?
△부산이 5년 내 기술 중심의 글로벌 창업 도시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지금 부산시 정책과 지원 내용, 유관기관의 지원사업, 그리고 RISE(지역 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 등을 종합해 보면 부산은 글로벌 창업 지원을 기반으로 아시아 대표 스타트업 허브 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부산연합기술지주는 부산형 RISE 사업을 추진하며 지역 창업 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해 지역 대학-산업-투자기관 사이의 유기적인 연계를 주선하며, 창업 기업을 육성하고 투자 지원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전문 기관으로 역할을 할 것이다.
최종 목표는 많은 청년들이 부산에서 창업하고, 커리어를 설계할 수 있도록 부산에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부산연합기술지주는 부산 창업 생태계의 중심축으로서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정준우 기자 jw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