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권영지 기자]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다시금 성장궤도에 진입하고 있지만, 한국 배터리 산업만은 거꾸로 가는 모습이다. 전기차 확산이라는 세계적 흐름 속에서도 유독 한국이 산업 전반의 수익성 저하, 기술경쟁력 약화라는 ‘이중고’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 전환에 속도를 내는 주요국과 달리 한국은 2년 연속 전기차 판매 역성장을 기록하고 있고, 국내 배터리 기업들 또한 과도한 설비투자와 글로벌 경쟁력 약화로 인해 실적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시장 침체 영향보다는 한국 전기차 산업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는 지적과 이를 해결하기도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어 업계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배터리 업계, 1분기 이익폭 축소 or 적자전환
27일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다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경기 둔화와 전기차 보조금 축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28.8% 증가했다. 일부 국가는 이미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을 넘어서며 본격적인 확산 단계로 접어들었다. 특히 전기차 전환을 주도하고 있는 노르웨이의 경우 지난해 전체 신차 중 전기차 비중이 무려 88.9%에 달했다.
반면 한국은 주요국 중 유일하게 2년 연속 전기차 판매량이 역성장을 기록했다. 지난해 국내 전기차 신차 등록 대수는 약 12만2775대로, 전체 승용차 시장의 8.5% 수준이다. 전년 대비 7.3% 줄어든 수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승용 전기차 판매는 소폭 증가했지만 화물 전기차 판매가 급감하며 전체 성장을 발목 잡았다. 전기화물차 수요 위축은 충전 인프라 부족과 충전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린다는 문제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문학훈 오산대 미래전기차과 교수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충전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게 전기화물차 판매량이 감소한 가장 큰 원인”이라면서 “충전소 역시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다 적재적소에 설치돼 있지 않아 전기화물차 운전자들이 실제 차량을 이용하는데 각종 불편이 따른다”고 꼬집었다.
전기차 판매 부진은 국내 배터리사 수익성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줬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은 올해 1분기 영업손실 830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316억원)보다 두 배 이상 적자 폭이 커졌다.
삼성SDI(006400)는 -4341억원으로 전년 동기 2207억원 흑자에서 적자 전환했다. SK온은 –1633억원으로 전년 동기(-3315억원) 대비 적자 폭은 줄었지만 여전히 손실 규모가 큰 상태다.
왜 한국만 ‘캐즘’ 넘지 못했나
한국만 전기차 시장과 관련 산업이 침체의 늪에 빠진 데에는 여러 구조적 원인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배터리 전문연구원은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중국산 배터리가 유럽 완성차에 대거 채택되면서 한국산 배터리의 글로벌 경쟁력이 크게 흔들렸다”고 진단했다. 저가와 고성능을 무기로 한 중국산 배터리가 가성비로 글로벌 완성차 업계까지 공급계약을 선점하기 시작하며 한국 배터리가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원은 이어 “중국산 배터리는 한국산 대비 가격이 절반 가까이 저렴해 가격 경쟁력을 따라 잡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문학훈 교수도 “최근 중국이 원재료가 매우 저렴한 나트륨이온 배터리를 만들었다”면서 “중국은 원재료를 직접 조달할 수 있는데다 더 저가의 고성능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 연구개발(R&D)에 열중하고 있어 우리나라도 이러한 노력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프리미엄 전략’이 한국 배터리사의 주된 경쟁력이었지만, 이 전략도 효과가 점차 줄어드는 추세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 연구원은 “프리미엄 전략은 이제 크게 의미가 없다고 본다”라며 “이미 기술력 측면에서도 중국이 한국을 넘어섰다는 의견이 지배적인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려면 프리미엄과 더불어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학훈 교수도 “중국산 배터리의 품질이 예전보다 훨씬 올라왔기 때문에 고객사들도 굳이 더 비싼 한국산을 선택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한편, 업계 안팎에서는 국내 배터리사들이 수익성이 낮아진 상황에서도 생산능력(CAPA) 확대를 위한 대규모 투자를 이어온 점이 재무부담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투입된 막대한 투자금 회수 시점을 장담할 수 없는 데다 수익도 나지 않고 재무구조도 악화된 상태가 지속될 경우 기업이 투자금 회수 시점까지 버티지 못하고 정말 망할 수도 있다는 우려다.
이에 대해 이 연구원은 “국내 배터리 3사의 합산 출하량은 늘었지만, 공장 가동률이 2023년까지만 하더라도 60~70%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40%까지 떨어졌다. 이는 CAPA가 수요에 비해 지나치게 늘었다는 것을 뜻한다”면서 “기술력이나 가격적인 측면도 중국에 밀리는 상황 속에서 CAPA만 늘어난만큼 재무적인 측면에서도, 향후 수익성에 대한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전망이 나올 요소가 많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