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윤상록 기자] 삼성SDI가 1999년 사명 변경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하며 전기차 배터리 시장 패권 경쟁에 본격 뛰어들었다. 유증 규모는 총 1조6549억원으로 미국·유럽 생산 거점 확대와 차세대 배터리 기술 개발에 쓰일 예정이다. 최대주주인 삼성전자는 기존 지분율 보다 적게 참여하며 지분 희석을 막는 동시에 재정 부담을 최소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삼성SDI)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SDI는 주주 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1조6549억원을 조달한다. 발행가액은 주당 14만원으로, 시가 대비 약 15% 할인율을 적용했다. 삼성SDI는 당초 주당 16만9200원에 신주를 발행해 2조원을 조달하려고 했으나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과 유증 계획 발표 등 여파로 주가가 하락해 조달규모를 조정했다. 청약 방식은 기존 주주에 100% 비례배정하고, 실권주에 대해서는 일반공모를 진행한다.
삼성SDI는 조달 자금을 미국 GM·스텔란티스 합작 공장, 헝가리 공장 확장, 전고체 배터리 개발 등에 투입할 계획이다.
회사 측은 “이번 유증은 글로벌 배터리 수요에 대응하고, 미국·유럽 등 해외 생산거점을 중심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하기 위한 재원 마련”이라며 “재무건전성을 유지하면서 성장 투자 여력을 확보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번 유증에서 최대주주인 삼성전자는 배정 지분의 120%에 해당하는 228만4590주를 청약하며, 약 3198억원을 납입할 계획이다. 이는 지배력을 유지하되, 불필요한 자금 투입은 최소화하겠다는 기조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청약 이후 삼성전자의 SDI 지분율은 19.5% 수준으로 유지되거나 소폭 증가할 가능성이 크며, 실권주가 적을 경우 우호지분 증가 효과도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최대주주임에도 2조원 중 약 16%만 부담한 것이 소극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재무적 유연성과 그룹 전체 투자 여력 배분을 감안한 조율이라고 볼 수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반도체 부문에서 약 60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시설투자와 연구개발비를 집행 중이며, 인공지능(AI) 반도체, 파운드리,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막대한 자금 소요가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SDI에 추가 자금을 투입할 경우, 그룹 전체 자금운용 전략과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유증을 통해 삼성SDI가 ‘보수적 재무 운용’에서 ‘공격적 투자 모드’로 전환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삼성SDI는 1999년 사명 변경 이후 한 차례 유상증자 없이 현금흐름만으로 성장해온 보수 경영 기업 중 하나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유증에 따라 주가 하락이 예상된다. 시가 대비 15% 할인된 가격으로 1182만 주의 신주가 발행되면, 발행주식 대비 약 5.3%의 지분 희석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시 이후 삼성SDI 주가는 유증가액 수준으로 조정되며 단기 하락세를 보이기도 했다.
윤상록 기자 ys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