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홍준표 기자] 국내 인공지능(AI) 반도체 팹리스 선두주자 퓨리오사AI가 기업공개(IPO)를 당분간 연기하고 투자 유치에 집중한다. 메타의 1조원대 인수 제안을 거절하며 글로벌 기술력을 입증한 퓨리오사AI는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 등극을 앞두고 기업 가치를 극대화할 계획이다.
1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퓨리오사AI는 기업공개(IPO) 이후 불거질 수 있는 유동성 문제를 최소화하려고 올 하반기 추가 투자 유치를 추진 중이다. 우선 연구개발(R&D)과 생산 확대에 자금을 집중 투입하며, 유니콘 등극 이후 상장을 추진해 안정적인 시장 진입을 노린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퓨리오사AI의 2세대 칩 '레니게이드' (사진=퓨리오사AI)
유니콘 등극 임박…기업가치 1조원 돌파 '초읽기'
퓨리오사AI는 2022년 약 3억원의 매출을 시작으로 이듬해 36억원으로 늘었지만, 아직까지 본격적인 양산에 따른 매출은 미미한 상황이다. 영업손실 규모도 같은 기간 501억원에서 600억원으로 늘어나는 등 현재까진 연구개발(R&D)에 집중하는 단계다.
기업가치는 기술력을 인정받은 덕분에 빠르게 상승 중이다. 시드 투자 단계에서 약 40억원 수준이던 기업가치는 지난해 시리즈C 단계에서 6800억원으로 급등, 연내 유니콘 기업에 등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시리즈C 브릿지 라운드에선 당초 목표치를 웃도는 자금이 몰려 올해 초 700억원이 목표였던 투자 유치 규모를 900억원으로 상향하는 등 순항 중이다. 초기 투자자인 산업은행이 300억원 규모의 투자금을 추가 납입하기로 했으며, 한국투자파트너스와 DSC인베스트먼트, IMM인베스트먼트 등 기존 투자자들도 후속 투자를 단행하기로 했다.
이번 투자를 마무리하면 기업가치는 지난해 대비 약 30% 오른 9200억원 수준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이는 AI 반도체 리스 스타트업 가운데 가장 높은 기업가치를 기록했던 리벨리온의 8800억원(시리즈B 단계) 보다 높다.
초기 단계에 투자한 재무적 투자자(FI)들도 퓨리오사AI의 기술력을 믿고 있어 당장 투자회수(엑시트)를 욕심 내기보단 기업가치를 최대한 키운 뒤 상장하기를 바라는 것으로 전해졌다.
퓨리오사AI FI 관계자는 "기술력을 인정받은 상황에서 급하게 IPO에 나서기보단 추가 투자 유치를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고 본격적인 레게이드 양산 체제에 돌입하기 위한 준비 단계에 집중하는 것이 퓨리오사AI의 성장을 방해하지 않는 길"이라고 말했다.
국내 AI 투자 확대 필요…글로벌 경쟁력 강화 과제
일각에서는 퓨리오사AI의 기술력과 반도체 팹리스 시장 규모를 고려하면 투자 규모가 아쉽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밴처캐피탈(VC) 업계 한 관계자는 "퓨리오사AI 기술력과 미래 가치를 고려하면 유니콘 등극은 시간 문제"라면서도 "중국 AI 반도체 개발 업체가 조 단위 투자를 받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국내는 투자금이 지나치게 적은 것이 현실이다. 해외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투자금이 많다고 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앞서 정영범 퓨리오사AI 상무도 지난 2월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국내에선 원하는 규모만큼 투자 유치가 되지 않아 안타깝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 중국 AI 반도체 개발 업체는 조 단위 투자를 받는 데 반해 퓨리오사AI의 경우 2000억원도 안 되는 투자금으로 경쟁하는 실정"이라며 "정부가 AI 반도체에 조 단위 투자를 한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정부 과제를 통해 지원받는 금액은 수십억원 수준에 그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동안 VC업계에선 이와 관련된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온 바 있다. 역대 한국벤처캐피탈협회장들이 그동안 한 목소리로 330조원 규모의 퇴직연금 벤처펀드 출자 허용을 요구해온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글로벌 경쟁이라는 차원에서 AI 등 신사업 분야에 대한 출자 규모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학균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은 <IB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혁신기업이 성장해야 국가 경제가 발전한다"라며 "단순 엑시트 목적이 아닌 펀더멘털을 보고 뛰어드는 기관투자자들의 유동성 공급을 위해 30조원 규모의 코스닥 벤처펀드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안했다.
홍준표 기자 junpy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