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자본 관련 재무 공시 협의체(TNFD)는 2023년 9월 최종 권고안을 발표한 이후 산업별 공시 지침을 확정해 나가고 있다. TNFD는 생물다양성 손실과 생태계 붕괴가 기업의 재무적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국제 협의체다. 아직 법적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올해 전 세계 502개 기업과 금융기관이 TNFD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보고를 시작할 예정이다. 국내에서도 일부 기업들이 TNFD를 적극적으로 이행하거나 부분적으로 참여하며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이에 <IB토마토>는 국내 기업들이 TNFD의 확산에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글로벌 투자 시장에서 생물다양성 등 환경 리스크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적으로 분석했다.(편집자주)
[IB토마토 박예진 기자] 건설·농업·식음료·패션·제약 등 자연 의존도가 높은 산업에 속한 기업들이 투자자들로부터 생물다양성을 보존하는 경영 방식을 요구 받고 있다. 이에 기업들은 생물다양성과 기후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특히 패션산업의 경우 해외 원료자원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아 자연자본 의존도가 높은 산업으로 분류되고 있다. 게다가 전세계 탄소배출량의 8~10%을 차지하며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산업군으로 꼽히고 있다. 이에 자연자본 관련 재무 공시 협의체(TNFD)는 공시지침을 통해 패션산업에 지속가능한 소재 사용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기반 공급망 관리를 강조하고 있다.
(사진=AI일러스트)
경제 생산량 과반 이상이 자연 자본에 의존
20일 PwC삼일회계법인이 2020년 세계경제포럼(WEF)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2023년 재산정한 결과, 경제 생산량의 절반 이상인 약 55%가 자연 자본에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경제적 가치로 환산 시 58조달러에 달하는 규모다.
자연 자본은 생물다양성을 포함해 토양과 공기, 물, 광물 등 자연이 인류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모든 자원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개념으로,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다양한 혜택에 주목해 자연을 '자본'이자 실질적인 자산(Stock)으로 인식해 경제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전 지구가 자연 자본 손실과 생물다양성에 대응하지 못한다면 오는 2030년까지 연간 2조7000억달러의 손실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자연 자본 의존도가 가장 높은 산업은 농업·임업·어업 및 양식업·식음료·담배·건설업 등으로 나타났다. 해당 산업은 운영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가치의 100%가 자연에 의존하며, 이들 산업의 공급망에서도 최소 50%가 자연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어 자동차와 소매 및 소비재·부동산·광업 등 11개 산업이 공급망과 직접 운영에서 창출되는 경제적 가치의 최소 35% 이상이 자연 자본 의존도가 중간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자연 자본 의존도가 높은 산업군에 속한 기업일수록 자연 자본 손실에 의한 재무적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으며, 향후 관련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어 사전에 관리를 필요로 한다.
특히 국내의 경우 재활용 가능한 폐섬유류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2020년 2만7083.2톤(t)이던 재활용 가능자원 분리배출 의류는 2021년 1만5655.6t, 2022년 1만2679.9t으로 줄었다. 다만 2023년에는 1만4343.7t으로 소폭 늘었다. 반면 종량제방식 등으로 혼합배출된 폐섬유류는 30만t 규모를 유지해왔다.
지속가능소재 활용 이어 공급망 관리 '집중'
이 가운데 최근 자연자본 관련 재무 공시 협의체(TNFD)는 지속가능한 소재 사용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기반 공급망 관리 등을 중요한 지침으로 내놓았다.
국내 기업들은 수년 전부터 재생폴리에스터 등을 사용하는 데에 집중해 왔다. 폴리에스터 섬유는 2021년 기준 전 세계 섬유 생산량의 약 54%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리사이클 섬유제품 생산 확대로 재활용 페트(PET) 섬유 생산량은 2016년 약 12.4%에서 2021년 약 14.8%로 증가했다. 재활용 폴리에스터는 주로 PET 플라스틱 병으로 만들어지며 전체 재활용 폴리에스터의 99%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패션기업 중에서는 블랙야크와
F&F(383220),
코오롱인더(120110)스트리FnC,
영원무역(111770) 등은 이미 2020년 들어 재생폴리에스터 섬유를 사용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소재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가 증가하고 브랜드, 투자자, 금융기관의 환경 인식이 높아지면서 다수 브랜드가 2025~2030년까지 자사 제품의 100% 재생폴리에스터 사용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코오롱FnC는 지난 2023년까지 전체 상품의 50%를 친환경 소재와 공법을 활용해 제작하겠다는 친환경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2025년 현재 시점에서도 절반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코오롱스포츠의 친환경 소재와 공법 정책도 유효한 상황이다. 이외에도 지속가능 공급망 관리를 위해 협력사 행동규범을 제정했으며, 향후 협력사를 대상으로 ESG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해 현황 파악과 지원 정책을 만들어갈 예정이다.
F&F도 지난해 11월 공급망 지속가능성 관리 정책을 세우기도 했다. 공급망 전반에서 발생할 수 있는 ESG 리스크를 파악해 이를 예방하고 그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목적으로, 이사회 산하 ESG위원회가 이에 관한 사항을 관리·감독할 예정이다.
특히 지난해 7월25일에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 발효하기도 했다. 향후 6년 내에 산업 부문별 접근방식 도입을 검토키로 하면서 섬유산업의 선제적인 공급망 관리에 대한 법적 규제도 가능해졌다. 공급망 실사 규제를 미준수한 기업에게는 벌금으로 매출액의 최대 5%가 적용될 수도 있다. 다만, 국내 기업의 경우 유럽을 대상으로 한 수출이 많지 않아 관련 규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은 소수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IB토마토>와 통화에서 "유럽과 우리나라의 경우 토지 규모 등의 측면에서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이에 유럽의 경우 ESG 규제를 활발하게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반면 미국은 자국산업의 보호를 위해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하는 등 다른 움직을 보이고 있다. ESG 규제가 지속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지만 경제 상황 등 여러가지 변수를 고려해 균형 잡힌 모델을 구축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박예진 기자 luck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