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자본시장은 어두운 전망 속에서도 기업 간의 활발한 거래가 예고되고 있다.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각 기업이 포트폴리오 재편에 나설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이에 시장에선 인수·합병(M&A)이 투자은행(IB) 업계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IB토마토>는 변화하는 경영 환경을 분석하고, 주요 거래 주체들의 전략을 분석해 M&A 시장의 방향성을 가늠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최윤석 기자] 통상 인수합병(M&A) 활황은 호경기에 기업이 사업을 확장하며 이뤄지지만, 올해는 다르다. 불황을 극복하려는 매각자와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매수자 간 거래가 주를 이루며, 매물과 조건을 둘러싼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메리츠화재가 MG손해보험(이하 MG손보) 인수를 전격 철회했다. 지난해 12월 9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 약 3개월 만이다. 메리츠화재는 노조 반발과 협상 난항을 이유로 지난 13일 인수 포기를 선언했다. 이로써 MG손보는 새 주인을 찾기 위해 다시 M&A 시장에 나섰지만, ‘승부사’로 불리던 메리츠화재마저 손을 뗀 상황에서 매수자 모색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롯데카드 역시 매각 과정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MBK파트너스는 지난해 말 스위스계 금융사 UBS를 매각 주관사로 선정하고 매각 절차를 진행 중이다. MBK파트너스는 2019년 롯데카드 지분 79.83%를 한국리테일카드홀딩스를 통해 1조3810억원에 인수했다. 2022년 JP모건을 통해 매각을 첫 시도했으나, 고금리 기조 속 3조원에 달하는 비싼 값에 무산됐다. 현재는 2조원대로 낮췄지만, 낮은 수익성과 786억원 규모 팩토링 대출 부실로 매수 의향자는 여전히 드물다.
금융사 매각이 난항을 겪는 이유는 과거 매수 시점과 현재 금융환경의 괴리에서 비롯된다. MG손보의 대주주 JC파트너스는 2020년 코로나19로 금리가 하락한 시기, 2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지분 95.5%를 인수했다. 새마을금고와 우리은행, 리치앤코 등이 참여했다. 당시 코로나 펜데믹으로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해 자금이 충분했기에 가능했다. JC파트너스는 같은 해 리치앤코를 1850억원에 인수하며 보험 경쟁력을 키웠으나, 2022년부터 이어진 고금리와 보험사 투자 신뢰 하락으로 5차례 매각이 모두 실패했다.
롯데카드도 2023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취급 중단 후 팩토링 대출로 수익원을 전환했지만, 2023년부터 내수 침체로 렌탈업체 연체가 늘었다. 지난해에는 375억원의 대손비용을 추가로 반영했다. 팩토링 대출은 상거래 외상매출채권을 매입해 대금을 지급하는 금융 상품으로, 롯데카드는 이를 통해 PF 공백을 메우려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산업계, 사모펀드 떠난 자리 계열사 M&A로 메워
금융권이 고금리와 신뢰 하락으로 발목 잡혔다면, 산업계는 사모펀드의 이탈로 방향을 틀고 있다. 결국 계열사 M&A가 대안으로 떠오르며 ‘울며 겨자 먹기’식 거래가 늘고 있다. 지난 12일
효성화학(298000)은 자본 전액 잠식 해소를 알리는 특정목적 감사보고서를 한국거래소에 제출했다. 관계사 효성티앤씨가 9200억 원에 특수가스 사업부를 인수한 지 3개월 만이다.
(사진=효성화학)
효성화학은 지난해 채권 상환을 위해 특수가스 사업부 매각을 추진했다. 경영권을 제외한 소수 지분(49%) 매각을 조건으로 내걸었고, 스틱인베스트먼트와 IMM PE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7월 우협 선정 후 협의를 지속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매각이 철회됐다.
이 역시도 매각가가 '걸림돌'이 됐다. 실사 결과, 초기 기업 가치 1조3000억원(100% 지분 기준)이 1조1000억원으로 떨어졌고, 재무적 투자자(FI)는 1조원도 제시하지 않았다.
SK스퀘어(402340)도 이커머스 자회사 11번가의 추가 지분 인수를 검토 중이다. 2018년 SK플래닛은 나일홀딩스 컨소시엄(국민연금·H&Q코리아·MG새마을금고)에 11번가 지분 18.18%를 넘기며 5000억원을 유치했다. 계약에는 2023년 9월30일까지 기업공개(IPO)를 완료하지 못하면 컨소시엄이 SK 지분을 강제 매각(드래그얼롱)할 수 있는 조항과 SK가 지분을 되살 수 있는 콜옵션이 포함됐다. 그러나 이커머스 업황 악화로 기업 가치는 하락했고 IPO는 번번이 무산됐다.
결국 SK스퀘어가 이사회 결의를 통해 콜옵션 포기했지만 나인홀딩스 컨소시엄도 매각에 난항을 겪으면서 SK하이닉스의 실적 개선으로 숨통이 트인 SK스퀘어가 다시 인수를 검토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11번가는 2023년 말 큐텐과 매각 협상을 진행할 당시 1조원에서 5000억원 수준으로 하락한 상태다. 이에 따라 지분 인수는 투자금액보다 현격하게 낮겠지만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인공지능(AI) 반도체 고도화를 비롯해 투자가 산적한 SK스퀘어 입장에선 불필요한 비용이 추가된 셈이다.
투자목적 달라도 기업가치 산정 시 공정성 필요
M&A시장에서 투자자별로 입장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투자목적이 따르기 때문이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M&A의 특징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국내 M&A 시장은 인수자의 성격에 따라 거래 방향이 달라진다”고 밝혔다.
현재 M&A 시장에서 기업 인수자는 크게 전략적 투자자와 재무적 투자자로 나뉜다. 전략적 투자자는 기업 인수를 통해 사업 시너지와 본업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하는 반면, 재무적 투자자는 거래 차익 실현을 주된 목적으로 삼는다.
이로 인해 양측의 M&A 전략과 투자 대상은 차이를 보이며, 기업 가치 평가에서도 서로 다른 접근법이 적용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M&A가 유망 기업에 자금을 공급해 가치를 높이는 본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박 연구위원은 “기업 인수 시 각 주체의 기업 가치 산정에 공정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M&A 시장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 단순한 거래 규모 확대뿐만 아니라 기업 가치 평가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박 연구위원은 “국내 M&A 시장은 꾸준히 성장해왔으나, 유망 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 측면에서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며 “각 인수 주체가 기업 가치를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