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퇴직연금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여전히 은행의 퇴직연금 적립액이 가장 크지만, 타 금융권의 공격적인 영업에 긴장감이 고조된 상황이다. 특히 지난해 10월부터 퇴직연금의 '실물 이전'이 가능해지면서 증권사나 보험사로의 자금 이동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IB토마토>는 퇴직연금 시장의 판도 변화와 은행권의 경쟁력을 심층적으로 분석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이성은 기자] 은행업권이 퇴직연금 지키기에 한창이다. 특히 은행업권의 퇴직연금은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에 몰려있는 상황이다. 머니무브를 막기 위해 영업점부터 본점에 이르기까지 전사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분위기다.
4대 시중은행(사진=각 사)
4대 시중은행, 퇴직연금 잔액 유지에 '사활'
9일 금융업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국내 시중은행의 퇴직연금 잔액은 146조8320억원이다. 이중 4대 시중은행의 잔액은 144조2451억원으로, 확정급여형퇴직연금(DB)이 비중이 가장 컸다. 같은 기간 은행업권 전체 퇴직연금 운용 잔액이 210조2800억원으로, 시중은행 비중은 70%에 달한다.
지난해 10월 현물이전 제도가 도입되면서 퇴직연금이 증권이나 보험으로 이동하는 이른 바 '머니무브' 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4대 시중은행이 선제 대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제도 시행 이전부터 손을 쓰는 분위기가 올해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영업 1선인 영업전의 행원부터 본점까지 일원화된 전략으로 움직인다.
영업점 내의 분위기 변화도 눈에 띈다. 개인퇴직연금 시장의 중요도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은행 영업점에서 대면 업무를 진행할 경우 고객에 상품 가입을 추천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다만 상품의 종류는 달라지는 추세다. 수년간 카드 발행, 예금 예치 등을 권했던 것과는 달리 요즘은 개인형퇴직연금(IRP)이 주요 추천상품이다. IRP가 없다면 신규 가입을, 있으면 이전을 권한다. 영업점 내부에 진열된 사은품도 대부분이 IRP에 몰려있다.
영업점뿐만 아니라 본점 차원에서 진행하는 이벤트도 지난해 하반기 본격화됐다. 특히 9월을 시작으로 4대 시중은행의 현물이전을 독려하는 이벤트가 시행됐다.
은행업권에서 퇴직연금 잔액이 가장 많은 신한은행은 'IRP 신한은행으로 갈아타기 이벤트'를 진행하는 한편 토스와 연계 이벤트도 실시했다. 신한은행에 IRP계좌가 없는 고객이 토스 모바일 앱 계좌 개설 페이지를 통해 신규 가입하는 경우 선착순 5000명에 1만원을 제공했다.
사실 신한은행 잔액이 가장 많은 데는 이처럼 발빠른 대응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2022년에는 은행업권 최초로 퇴직연금 전용 상담 센터인 퇴직연금고객관리센터를 선보이고, 대면 창구를 마련했다.
장기고객 확보에 '사활'
지난해 10월 현물이전 제도가 시행된 만큼 연말 잔액이 성과를 가를 전망이다. 특히 은행의 경우 장기고객 확보가 중요해 사활을 거는 분위기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4대 시중은행의 퇴직연금 잔액은 144조2451억원이다.
신한은행이 42조70110억원으로 가장 규모가 컸으며, 국민은행이 39조5015억원, 하나은행이 37조78억원, 우리은행이 25조7010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지난해 시중은행으로 거듭난 아이엠뱅크의 경우 2조5869억원에 불과해 4대 시중은행과 어깨를 견주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신한은행의 경우 확정급여형(DB) 비중이 가장 컸고 확정기여형(DC)과 IRP의 경우 국민은행이 선두다.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민은행의 DC잔액은 13조4131억원, IRP잔액은 14조7881억원이다.
잔액 규모가 다른 만큼 총비용률도 제각각이다. 총비용률이란 퇴직연금 적립금 대비 가입자가 연간 부담한 총 비용 비율이다. 비용에는 운용관리 수수료와 자산관리 수수료, 펀드비용(운용보수 , 판매보수)이 포함된다. 퇴직연금사업자별 가입자의 비용부담 수준을 비교할 수 있는 지표다.
지난 2023년 말 기준 4대 시중은행 중 비용부담률이 가장 낮은 곳은 하나은행이다. 하나은행의 DB, DC 총비용률은 각각 0.35%, 0.47%다. 가장 비용부담률이 높은 국민은행과 각각 0.07%p, 0.1%p 차이다. 다만 IRP의 경우 우리은행이 0.3%로 가장 낮은 수준의 비용부담율을 보였다.
하나은행의 경우 비용부담률이 낮을 뿐 아니라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DC 운용수익률도 가장 높다. 6분기 연속 시중은행 중 1위를 달성했다. 금융감독원 연금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하나은행 DC운용 수익률은 원리금비보장상품 14.14%, 원리금보장상품 3.69%다.
다만 통상적으로 은행업권의 운용수익률은 증권업 대비 낮다. 하나은행 계열사인 하나증권의 경우 지난해 3분기 DC 운용수익률은 원리금 보장 4.26%, 원리금비보장 14.42%를 기록했다. 특히 상품군에 따른 구분도 명확하다. 은행업권의 경우 유형에 관계없이 원리금 보장 상품 규모가 월등히 큰 반면, 증권사는 원리금 보장과 비보장 적립액 규모가 비슷했다. 미래에셋증권은 DC와 IRP 적립금 중 원리금 보장보다 원리금 비보장 규모가 더 컸다. 상장지수펀드(ETF) 등 수익성을 좇는 고객의 경우 증권사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연금상품과 맞춤서비스를 제공해 안정적 자산 성장과 관리를 지속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은 기자 lisheng12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