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대전)①시장 격변…'전통강자' 은행 위상 시험대에
퇴직연금 적립액 절반 넘어도 머니무브 가능성
금융투자업권 비중 커지면서 조직 신설 등 힘 실어
공개 2025-01-10 06:00:00
이 기사는 2025년 01월 08일 16:56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은행권이 퇴직연금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여전히 은행의 퇴직연금 적립액이 가장 크지만, 타 금융권의 공격적인 영업에 긴장감이 고조된 상황이다. 특히 지난해 10월부터 퇴직연금의 '실물 이전'이 가능해지면서 증권사나 보험사로의 자금 이동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IB토마토>는 퇴직연금 시장의 판도 변화와 은행권의 경쟁력을 심층적으로 분석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이성은 기자] 퇴직연금 전통 강자인 은행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잔액기준으로 절반이 넘게 몰려 있어 여전히 입지가 탄탄하지만, 증권과 보험업권의 공세에 대응하는 모습이다. 
 
4대 시중은행(사진=각 사)
 
'실물 이전' 시행에 머니무브 가능성
 
8일 금융업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은행업권의 퇴직연금 운용잔액은 210조2800억원이다. 은행과 증권, 보험사가 퇴직연금을 운용하고 있는데, 규모가 가장 크다. 같은 기간 금융투자업권의 퇴직연금 잔액은 96조5300억원, 보험업권 잔액은 93조2600억원이다. 금융업권의 퇴직연금 적립액 400조1000억원 중 절반 이상이 은행업권에 쏠려있다.
 
퇴직연금제도는 기업이 근로자의 퇴직금 지급을 위한 재원을 은행 등 퇴직연금 사업자에 적립해 안정적인 노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장치다. 퇴직금과는 차이가 있다. 기존 퇴직금제도는 퇴직금을 사내에 별도로 적립했다면, 퇴직연금제도는 퇴직금을 외부에 쌓아두기에 수급권이 보장됐다. 
 
퇴직연금 종류는 확정급여형(DB)과 확정기여형(DC), 개인형(IRP)으로 나뉜다. 확정급여형과 확정기여형은 모두 기업의 부담금이 존재한다. 확정급여형의 경우 운용 실적에 따라 부담금이 변동하는 한편, 확정기여형은 기업 부담금은 정해져있는 상태에서 운용 실적에 따라 고객이 받을 수 있는 퇴직금 규모가 결정된다.
 
IRP의 경우 개인 불입금 등을 적립하고 운용하기 위한 개인 퇴직연금으로, 기업부담금은 없다. 특히 IRP는 해지 때까지 소득세 납부가 이연돼 세제 혜택을 위해 가입하는 고객도 다수다.
 
퇴직연금을 운용하고 있는 퇴직연금 사업자는 은행  13개사와 증권 15개사, 생명보험 11개사, 손해보험 6개사, 근로복지공단이다. 회사 수로 따지면 증권사가 가장 많다. 
 
은행업권이 잔액기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긴장감을 느끼는 것은 새로 도입된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금융감독원은 퇴직연금 가입자의 선택권을 확대하고 사업자 간 경쟁 확대를 위해 도입했다. 퇴직연금 가입자가 운용상품을 해지하지 않고 퇴직연금 사업자만 바꿔 이전할 수 있도록 했다. 퇴직연금 잔액 이동의 판이 깔린 셈이다. 
 
제도 시행 전에는 퇴직연금 계좌를 타 사업자로 이전하려면 기존 상품을 해지해 현금화한 후 가능했다. 금융당국은 상품 해지 등의 과정에서 금융소비자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수익률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했다. 특히 신탁계약 형태의 원리금 보장상품과 공모펀드, 상장지수펀드(ETF) 등은 대부분 실물 이전을 할 수 있다. 현재는 같은 유형 내에서만 이전하도록 제한했는데, 금융감독원과 고용노동부 등은 다른 유형 간 이전도 가능하도록 검토할 예정이다. 
 
뒤쫓는 증권·보험, 선제 대응하는 은행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 경제활동 기간은 그대로인데 평균연령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데다 국민연금마저 고갈될 것이란 우려가 겹쳤다.
 
연간 기준으로 봐도 증가세가 확연하다. 지난 2023년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은 382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1년 전 335조9000억원 대비 46조5000억원이 불었다.
 
퇴직연금 적립금은 지난 5년간 2배 규모로 성장했다. 특히 2023년에는 IRP가 크게 증가했는데, 전년 말 대비 31.2% 늘어나 같은 기간 DB 6.7%, DC 18.1%에 비해 특히 큰 폭의 성장률을 보였다.
 
 
실물 이전이 가능해지고 시장 전망도 밝아 금융업권 내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금융투자업권의 점유율이 꾸준히 증가세다. 금융투자업계 비중은 2021년 21.3%에서 2023년 22.7%로 상승했다. 은행업권도 같은 기간 증가했는데, 손해보험사와 생명보험사 비중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증가율 측면에서는 이미 금융투자업권이 은행업권을 앞질렀다. 지난 2023년 기준 금융투자업권의 적립금 증가율은 17.5%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은행업권의 증가율은 15.3%다.
 
금융투자업계 동향도 심상치 않다. 대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퇴직연금 부서를 신설하는 등 본격적인 영업에 나섰기 때문이다. 특히 증권사의 경우 ETF를 중심으로 퇴직연금을 운용하고 있어 수익률이 비교적 높다. 타 업권 대비 성장률이 높은 이유다. 
 
은행업권은 선제적 대응을 위해 영업점부터 본점까지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은품 지급 이벤트를 시행하는 한편 본점 차원에서 수수료 인하 등 전략도 구상했다.
 
은행업권이 퇴직연금 유지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장기고객 유치와 경영지표 때문이다. 장기 고객을 보유할 경우 예금부터 자산관리까지 비교적 품을 덜 들여 기타 상품 가입자를 모을 수 있다. 또 외형 성장과 수익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은행의 경우 예금 등 원리금 보장 상품이 대부분의 상품 구성을 차지하는데, 만약 증권사 등 타업권으로 이동할 경우 저원가성 예금이 빠져나가게 된다. 

은행업권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에 "퇴직연금 특성상 30년 이상 장기 불입과 운용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는 장기간 주거래 고객 확보에 용이하다"라면서 "다만 은행의 경우 원리금 보장 상품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증권사는 ETF를 중심으로 비교적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어 이동을 고민하는 고객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은 기자 lisheng124@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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