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권영지 기자]
녹십자(006280)가 미국 관계사 큐레보 지분 매각으로 올해 3분기 2000억원대 순이익을 거뒀지만, 주주환원 정책 확대에는 물음표가 찍힌다. 일회성 이익을 ‘별도 고려’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회사는 매각대금을 차입금 상환과 미국 사업 등에 우선 투입할 예정이다.
큐레보 매각에 순이익 14배…대금은 '빚 갚기'부터
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녹십자의 올해 3분기 연결 기준 분기 법인세비용차감전순이익은 2743억원으로 전년 동기(249억원)의 11배에 달했다. 지배주주 순이익도 2222억원으로 전년 동기(159억원) 대비 14배가량 늘었다. 3분기 누적 지배주주 순이익은 2446억원으로 전년 동기(836억원) 대비 192.6%(1610억원) 증가했다.
본업 또한 나쁘지 않았다. 3분기 영업이익은 492억원으로 전년 동기(292억원) 대비 68.5%(200억원) 늘었다. 녹십자웰빙이 연결 대상에서 빠지면서 매출은 5221억원으로 14.3% 줄었지만 수익성은 개선됐다.
3분기 호실적은 큐레보 지분 매각 효과가 크다. 녹십자는 큐레보 주식 2107만 5336주 전량을 일라이릴리에 넘기기로 하고 지난 7월 선급금 중 2868억원을 받았다. 개발 제품이 매출 목표를 달성하면 최대 1533억원 마일스톤 역시 추가로 받는다.
지난해 말 큐레보 전환우선주와 보통주 장부금액이 486억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대규모 차익을 거뒀다. 해당 매각으로 임상 3상 비용 부담, 개발 실패 위험 역시 덜어냈다는 평가다.
회사는 매각대금을 △재무구조 개선 △미국 사업 가속화 △연구개발 파이프라인 강화에 쓴다. 녹십자의 올해 상반기 총차입금은 8323억원으로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유동성 차입금이 62.7%(5218억원)에 달한다. 회사는 지난 3월 1560억원 규모의 무보증 회사채를 발행하며 채무상환에 나서고 있다. 대금이 빚 상환에 먼저 쓰일 가능성이 큰 만큼 주주환원은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
정책 문구 역시 걸림돌이다. 녹십자가 지난해 1월 발표한 2025~2027년 주주환원 정책은 ‘별도 기준 당기순이익 20% 이상 환원’이 골자지만, 일회성 손익은 ‘별도 고려’한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제약업종 특성상 잦은 일회성 거래로 인한 이익 변동을 배당에 반영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2000억원이 넘는 큐레보 지분 매각 이익이 발생했음에도 배당 재원에서 통째로 빠질 수 있는 근거다.

배당 3년째 1500원…자사주는 '처분' 선택
재무구조 개선을 우선하는 기조로 녹십자의 배당 규모는 수년째 제자리다. 회사는 2023~지난해 주당 1500원, 총 171억원의 현금배당을 유지했다. 2005년부터 21회 연속 결산배당을 이어왔지만 배당금 규모는 늘지 않았다. 지난해 현금배당수익률은 0.9%에 그쳤다. 3년 연속 지배주주 순손실을 내는 상황에서도 배당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지만 주주가치 제고 측면에서는 아쉽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행 정책 기준만으로는 배당 확대 명분이 약하다. 지난해 별도 기준 순이익은 485억원으로 정책상 환원 하한선은 97억원이다. 실제 배당금(171억원)은 이미 별도 순이익의 35.3% 수준이어서 정책 하한을 웃돈다. 큐레보 차익을 빼고 계산하면 올해 배당이 지난해 수준에서 묶일 수 있는 이유다. 올해 3분기까지 지배주주 순이익(2446억원)과 비교하면 지난해 수준 배당 시 환원 비율은 7%에 불과하다.
자기주식 활용 방식도 시장 기대와는 거리가 있다. 녹십자는 지난 3월6일 이사회에서 자기주식 보유·처분 계획을 승인했고 같은 달 26일 정기주주총회를 거쳐 자기주식 27만 3411주(장부가 357억원) 전량을 처분하기로 했다.
같은 날 시행된 개정 상법은 자기주식 소각을 원칙으로 하되 임직원 보상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주주총회 승인을 받아 보유·처분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 상법 시행 전부터 보유한 자기주식도 내년 9월까지는 소각하도록 했지만, 녹십자는 주주총회 승인이라는 예외 경로를 택한 것이다.
유한양행(000100)과
한미약품(128940) 등 제약사들이 잇따라 자사주 소각에 나선 것과 대비되는 행보다.
이에 <IB토마토>는 남은 자사주 처리 방식과 이번 큐레보 매각 차익을 결산 배당 재원에 포함시킬 것인지 여부에 대해 질의했으나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