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강화된 규제로 은행의 기업금융(IB) 기능이 위축되면서, 그 빈자리를 사모대출이 빠르게 메우고 있다. 고금리 환경과 맞물려 사모대출은 단순한 대체투자 수단을 넘어 하나의 핵심 크레딧 자산군으로 자리 잡았지만, 최근 들어 유동성 미스매치와 환매 제한 등 구조적 리스크도 함께 부각되는 모습이다. 이에 <IB토마토>는 은행 중심에서 사모대출로 이동하고 있는 자금 흐름의 배경을 짚고, 사모대출 시장의 성장과 함께 나타난 부작용과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불거진 환매 중단 사태를 종합적으로 파악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홍준표 기자] 사모대출 시장의 균열이 환매 제한이라는 형태로 현실화되면서, 일각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의 유사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다만 당시와 같은 전면적인 금융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는 일부 사모대출 펀드를 중심으로 환매 요청이 급증하며 지급을 제한하거나 일부만 상환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고금리 장기화로 차입기업 부실이 늘어나고, 펀드 수익률이 흔들리면서 투자자들의 자금 회수 움직임이 본격화된 영향이다.
(사진=구글 생성 이미지)
유동성 불일치 구조…"2008년과 닮은꼴"
블랙록이 26조원 규모인 사모대출 펀드 'HLEND'에서 환매 요청이 급증하자 인출 한도를 적용해 일부만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올해 1분기 환매 요청이 12억달러(약 9.3%)에 달했지만, 펀드 규정상 허용된 5% 한도에 따라 실제 지급은 약 6억달러 수준에 그쳤다. 사실상 절반가량만 환매를 허용한 셈이다.
블랙스톤의 대표 사모대출 펀드인 'BCRED'는 같은 기간 약 37억달러의 환매 요청으로 순유출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기존 5%였던 환매 한도를 7%로 상향 조정하고, 운용사 및 임직원이 약 4억달러를 직접 투입해 유동성 방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주요 운용사들이 환매를 제한하거나 자체 자금을 투입해 대응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사모대출 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사모대출은 장기·비유동성 자산에 투자하면서도 투자자에게 일정 수준의 환매를 허용하는 구조를 갖고 있어, 유동성 압박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구조적 특성이 2008년 금융위기 당시와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당시에도 비유동성 자산을 기반으로 한 금융상품이 환매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급격한 자산 매각으로 이어지며 시장 충격을 증폭시킨 바 있다.
로이드 블랭크페인 전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블룸버그 팟캐스트에서 사모대출 시장에 대해 "지금 상황이 2008년과 비슷한 느낌이 난다"며 유동성 부족과 불투명성을 핵심 리스크로 지목했다. 그는 금융위기 당시 골드만삭스를 이끌었던 CEO로, 2008년 당시 문제가 불거졌던 파생상품처럼 사모대출은 실제 가치나 위험도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시스템 위기 가능성은 제한적"…엇갈리는 평가
다만 현재 상황을 2008년과 동일선상에 놓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가장 큰 차이는 은행 시스템과의 연결성이다.
2008년 당시에는 은행이 구조화 금융상품을 직접 보유하고 있었던 반면, 현재 사모대출은 사모펀드와 연기금, 보험사 등 비은행 투자자 중심으로 분산돼 있다. 이에 따라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즉각 전이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토바이어스 아드리안 IMF 통화자본시장국장은 사모대출 시장의 취약성을 인정하면서도 "은행 시스템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은 현재로서는 크지 않다"고 언급하며 2008년과 같은 전면적 금융위기로의 확산 가능성에는 선을 그었다. 비은행 금융기관(NBFI)의 급성장에도 불구하고, 대형 은행들은 해당 리스크 관리에 나서고 있어 시스템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진단이다.
또 다른 차이는 사모대출 상품 투자자들의 반응이다. 최근 글로벌 사모대출 시장에서는 사모대출 시장 취약성을 노리고 환매가 중단된 펀드 지분을 할인된 가격에 매입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실제 투자자 참여는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헤지펀드 사바 캐피털은 비상장 사업개발회사(BDC)인 '블루아울 캐피털 코퍼레이션 II(OBDC II)' 지분에 대한 공개 매수를 진행했으나, 응찰 물량이 전체 지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바 캐피털은 OBDC II의 지분을 순자산가치(NAV) 대비 약 35% 할인된 주당 3.80달러에 최대 6.9%까지 사들이겠다고 제안했다. 최근 사모대출 시장의 유동성 부족으로 현금화가 어려워진 투자자들의 심리를 공략해 자산을 저가에 확보하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투자자들이 35%의 손실을 확정 짓기보다는 펀드 자산 회복을 기다리는 쪽을 택하며 사바의 판정패로 끝났다. 이는 투자자들이 단기적인 유동성 확보보다 자산 보유를 선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자산을 헐값에 던질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신호로 해석된다.
국내 연구기관도 사모대출 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이 점차 표면화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도, 사모대출 시장의 불안이 금융시스템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아직 제한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KCMI)은 최근 <미국 사모대출 시장의 불안 요인 분석 및 확산 가능성 평가> 보고서에서 "사모대출 시장에 대한 주의 깊은 관찰이 필요하다"면서도 "금융시스템 전반으로의 위험 전이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사모대출 투자기구의 레버리지 수준이 과도하지 않고, 은행권 익스포저 역시 선순위 담보대출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직접적인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다만 향후 경제여건의 변화에 따라 관련 리스크는 확대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갈등이 격화되면서 경제적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는 점,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확대될 경우 고금리 여건이 예상보다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이는 사모대출 차입기업의 이자 부담 증가로 이어져 채무상환 능력을 약화시키고 부실 발생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화영 자본시장연구원 채권연구센터 센터장은 "현재로서는 사모대출 투자기구의 레버리지 수준이 과도하지 않고 은행권 익스포저도 선순위 담보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금융시스템 전반으로의 전이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면서도 "고금리 장기화와 환매 압력 지속, 자금 유입 둔화가 맞물릴 경우 시장 리스크가 확대될 가능성에 대비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홍준표 기자 junpy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