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연속 법인세 납부액 최저…이연법인세자산 14.3조흑자 전환·세율 인상 맞물리면 재무전략 재편 가능성 커단기 소득 창출로 연구개발 세액공제 자산 활용까지 필요
정부와 여당이 법인세율을 모든 구간에서 1%포인트씩 인상하기로 했다. 지난 2년간 이어진 세수 결손이 배경이지만 재계에서는 이미 한계에 달한 비용 부담에 법인세 인상까지 겹치면 기업 활동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미국발 고율 관세에 더해 국내 법인세율까지 오르면서 기업들이 이중 부담을 떠안게 된 것이다. 이번 세제 개편은 주요 그룹사들의 재무 전략과 투자 계획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에 <IB토마토>는 세제 개편의 배경과 더불어, 주요 기업들이 어떤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있는지 짚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김규리 기자] 정부와 여당이 법인세율을 전 구간에서 1%포인트씩 올리기로 하면서 기업들의 세부담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지난 2년간 반도체 불황에 따른 대규모 적자로 법인세 실납부액이 사실상 미미했던
삼성전자(005930)는 그동안 쌓아둔 이월결손금과 이연법인세자산 덕에 단기적 완충 효과를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반도체 업황이 회복돼 이익이 정상화되는 시점에는 인상된 세율과 맞물리며 세부담이 급격히 확대될 수 있어 관련한 재무 전략을 다시 점검할 수도 있다는 시장의 의견도 나온다.
(사진=삼성전자)
반도체 불황에 2년 연속 법인세 납부 하락세…삼성전자 단기 완충효과 누려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23년 영업 손실 충격 이후 2년 연속 법인세 납부액이 최저 수준에 머무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3월(법인세 납부 기준) 2조6648억원의 법인세가 부과됐지만, 실제 납부액은 전무하다. 법인세 산정 사업연도인 2023년 반도체 불황으로 11조5263억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국내 조세법상 영업이익을 내지 못하면 법인세를 납부하지 않는다. 삼성전자가 창립 이후 법인세를 내지 않은 것은 1972년 창립 이후 52년 만에 처음이었다.
올해도 지난해 사업실적에 따라 1조원이 넘는 법인세가 산정됐으나, 적자를 본 기업이 흑자로 전환하더라도 기존 손실분에 해당하는 만큼 법인세를 감면받을 수 있는 데다 과거 발생한 이월결손금 공제에 따라 올해 납부액 역시 국내 영업이익에 최저한세인 17% 수준에서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법인세 비용은 회계상 개념으로 세액공제 등의 요인을 반영하면 실제 납부액과는 차이가 있다.
삼성전자의 법인세 전략에는 이연법인세 계정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올 상반기 별도 기준 삼성전자의 이연법인세자산은 14조3334억원에 달했다. 2023년 9조9313억원에서 44.32% 늘었다. 과거 대규모 투자에 따른 세액공제와 최근 영업손실이 맞물리며 자산 규모가 불어난 결과다. 이연법인세란 회계 기준과 세법 기준 간 시차에서 발생하는 항목으로 향후 납부할 세금(부채)이나 공제 가능한 금액(자산)을 세율에 맞춰 장부에 기록한다. 삼성전자처럼 과거 영업손실이나 세액공제 이월분을 보유한 기업은 이연법인세자산 가치가 상승해 향후 법인세 전략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내년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삼성전자는 MLCC(적층세라믹콘덴서)와 FC-BGA(플립칩 볼그리드어레이) 등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 확대와 제품 믹스 개선으로 실적 반등이 기대되지만, 이미 축적된 이연법인세자산 덕분에 실질 납부액은 1조원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보유한 대규모 이월결손금이 세부담을 상쇄하기 때문이다. 세법상 이월결손금은 10년간 이익에서 공제할 수 있어 단기간 흑자 전환이 이루어져도 당장의 납세액은 낮게 유지된다.
다만, 대규모 이연법인세는 단기적으로 세부담을 줄이는 효과가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시장이 바라보는 기업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기업가치는 미래 현금흐름에 할인율을 적용해 산정하는 이른바 현금흐름할인법(DCF)이 많이 활용되는데, 이때 대규모 이연법인세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결국 그동안 과세소득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영준 법무법인 율촌 조세그룹 대표 변호사는 <IB토마토>에 “법인세 비용은 실제 기업의 현금지출을 발생시키는데, 이연법인세자산은 이를 줄여 현금흐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도 “삼성전자의 경우 대규모 적자의 결과로 지금과 같은 이연법인세자산이 쌓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연법인세자산 증가는 기업가치에 긍정적일 수 있지만 동시에 시장에는 부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법무법인 변호사도 <IB토마토>에 “법인세 비용은 실제 현금 유출을 동반하기 때문에 이연법인세자산을 통해 세부담을 줄일 수 있다면 단기적으로는 순이익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며 “다만 이연법인세자산은 과거 적자와 세액공제의 누적분이라는 점에서 기업의 기초체력이 약화돼 있음을 방증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 측은 <IB토마토>에 “2023년 영업손실로 인해 이연법인제자산 등 이월결손금이 쌓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인세율 인상·흑자 기조와 맞물리면…"재무 전략 조정 불가피"
여기에 향후 반도체 업황 회복이 본격화되는 등 수익성 개선이 이뤄질 경우 이연법인세자산 소진이 빨라질 수 있고, 여기에 법인세 인상까지 맞물리면 세부담에 대해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 역시 반도체 반등 국면에서 예상보다 높은 세부담이 발생할 수 있어 투자 집행 계획 등을 포함한 재무 전략을 재조정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쌓아둔 이연법인세자산이 단기적으로는 완충 효과를 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세부담 확대가 실적과 현금흐름에 압박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반도체 불황이 이어졌던 2022년에도 28조1238억원, 2023년에는 47조5715억원, 지난해에는 50조3776억원을 투자하며 대규모 투자 기조를 유지했다. 올 상반기에도 영업활동현금흐름은 31조4726억원에 달했지만 투자활동 지출은 14조원을 넘었다. 절반 이상을 설비투자와 연구개발(R&D) 등에 투입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투자를 통해 향후 활용 가능한 공제 자산을 쌓아 세부담을 줄이려는 전략적 행보인 셈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삼성전자는 그동안 쌓아온 이월결손금으로 단기 세부담을 상쇄할 수 있으나 반도체 업황이 정상화되면 이연법인세부채 증가로 인해 오히려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며 “법인세율 인상과 맞물려 현금흐름에 부담이 생길 수 있는 만큼 향후 투자 집행 전략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삼성전자가 보유한 이연법인세자산은 대부분 세액공제액의 이월공제나 미사용한 이월결손금으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국내 종속기업, 관계기업 및 공동기업 투자 등으로 세액 공제 혜택을 받아왔다. 다만, 연구개발비 세액공제는 발생 후 10년, 2021년 이후 발생한 이월결손금은 15년 내에 소진해야 한다. 따라서 삼성전자는 단기간 내 충분한 과세소득을 창출해 누적 자산을 활용해야 하는 압박도 안고 있다. 흑자 전환이 늦어지면 이월분을 모두 쓰지 못해 자산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
전 변호사는 이 같은 상황과 관련해 “대규모 이연법인세자산을 보유한 기업은 공제기간 내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단기 수익성 프로젝트나 연구개발 투자 확대에 주력할 수 있다”며 “반대로 이연법인세부채가 많은 기업은 세율 인상에 따라 장부상 세금 부담이 커질 수 있어 보수적인 재무전략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규리 기자 kk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