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 수익성을 유지하면서 '이익잉여금'을 쌓은 기업들은 배당을 통한 주주 친화 정책을 펼친다.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수단이다. 현재 상장 기업들의 배당은 선택이 아닌 의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넉넉한 배당 곳간에도 수년간 무배당 기조를 이어온 제약사들이 존재한다. <IB토마토>는 무배당 제약사들의 배당 재원과 향후 주주환원 계획 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김혜선 기자]
팜젠사이언스(004720)(전 우리들제약)가 풍부한 배당 곳간을 보유했지만, 80%에 육박하는 소액주주를 위한 주주환원 정책을 상장 이후 단 한번도 실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극적인 주주환원 행보를 이어온 대신 한의상 회장 등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은 지속적으로 보수를 확대해온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팜젠사이언스 홈페이지)
천억원대 이익잉여금·높은 소액주주 비율에도 '무배당'
24일 업계에 따르면 팜젠사이언스가 지난 1990년 상장 이후 단 한 번도 배당을 실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 2020년 최대주주가 변경된 이후로는 1000억원대 이익잉여금을 쌓았음에도 여전히 배당을 실행하지 않고 있다.
팜젠사이언스는 의약품 제조 기업으로, 지난 1966년 설립된 수도약품공업주식회사가 시초다. 이후 1990년 상장했으며, 2009년 우리들제약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어 지난 2020년 6월에는 최대주주가 에이치디투자조합으로 바뀌었고, 다음해 사명을 팜젠사이언스로 변경했다.
팜젠사이언스는 안정적인 실적으로 이익잉여금을 쌓아왔다. 팜젠사이언스의 올해 상반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57억원으로 직전연도 동기(44억원)보다 개선됐다. 최대주주가 변경된 바로 다음해인 2021년 5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2022년(75억원)과 지난해(91억원)에는 흑자를 냈다.
영업이익에 힘입어 영업외손익을 반영한 당기순이익도 호실적을 이루면서 이익잉여금을 축적해 왔다. 가장 마지막으로 영업손실이 발생한 지난 2021년에도 당기순이익은 324억원을 기록했다. 이후 2022년 701억원으로 늘었고, 지난해(57억원)에도 순이익을 유지했다.
문제는 당기순이익을 내면서 1000억원대 이익잉여금을 쌓았음에도 상장 이래 단 한 번도 배당을 실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익잉여금이란 기업이 경영을 하면서 발생한 순이익을 임직원 상여나 배당 등으로 처리하지 않고 누적한 이익금이다. 상법상 기업이 현금배당을 실행할 경우 현금배당액의 10%를 자본금의 2분의 1까지 적립해야 하는 법정적립금을 제외한 미처분이익잉여금 등은 배당에 사용할 수 있다.
올해 상반기말 연결기준 팜젠사이언스의 누적 총 이익잉여금은 1331억원이다. 팜젠사이언스는 배당을 실행한 적이 없기 때문에 법정적립금으로 설정된 금액은 없다. 임의적립금도 별도로 보유하지 않아 모든 이익잉여금 금액이 미처분이익잉여금에 반영돼 있다.
업계에서 팜젠사이언스의 배당에 대한 지적이 나오는 이유는 소액주주 비율이 높음에도 주주환원 정책을 펼치지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올해 상반기말 기준 팜젠사이언스의 총발행주식수(1813만6615주) 중 소액주주의 소유주식 비율은 79.82%(1447만7485주)다. 최대주주인 에이치디투자조합과 특수관계인의 지분은 12.68%뿐이다.
팜젠사이언스 관계자는 배당을 실행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IB토마토>의 질문에 "신약개발의 파이프라인 연구개발비를 투입하기 위한 이유가 크다"라며 "향후 글로벌 소화기 신약 전문기업으로 도약하고자 적극적인 연구개발 투자를 하고 있으며, 과거 5개년 기준으로 꾸준히 연구개발비가 증가했다"라고 설명했다.
주주환원은 없어도 임직원은 보수 '두둑'
배당이 전무한 가운데, 에이치디투자조합 측으로 구성된 임원들의 보수는 꾸준히 늘었다. 그럼에도 자사주 소각 등을 통한 주가 부양은 시도하지 않고 있어 업계에서 소홀한 주주환원 정책에 대한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에이치디투자조합은 팜젠사이언스의 임직원들이 2019년 결성한 펀드다. 최대주주로는 한의상 팜젠사이언스 회장(지분율 23.33%)이 있으며, 박희덕 팜젠사이언스 대표이사가 6.6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팜젠사이언스의 현재 임원 구성을 보면 대부분 에이치디투자조합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올해 상반기말 기준 팜젠사이언스의 임원은 총 9명이다. 이 가운데 최대주주와 관계가 있는 임원은 △한의상 회장 △류남현 부회장 △이근형 부회장 △박희덕 대표이사 △김혜연 대표이사 등 5명이다.
한 회장은 팜젠사이언스의 최대주주가 에이치디투자조합으로 변경된 이후 보수총액을 꾸준히 늘려왔다. 최대주주에 에이치디투자조합이 오른 이후 한 회장의 보수는 지난 2022년 5억9800만원을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보수를 6억250만원까지 늘렸다.
임원 전체적으로도 보수는 늘었다. 지난 2021년 총 8명으로 구성된 팜젠사이언스 임원의 1인당 평균 보수액은 1억9105만원이다. 이후 임원이 9명으로 늘어난 지난 2022년 1인당 평균 보수액은 2억5571만원으로 크게 늘었고, 지난해(2억5361만원)에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특히 올해 상반기 1인당 평균 보수액은 1억2978만원으로, 직전연도 동기(1억2433만원)보다 4.38% 확대됐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주주 가치 제고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임에도 임원 급여를 늘리는 등의 편법으로 주가 부양을 지속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것은 제약·바이오 업계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라며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 등의 주주환원 정책이 꼭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팜젠사이언스는 자사주 소각도 실행하지 않았다. 자사주 소각은 기업의 발행주식수를 줄여 주당 가치를 높이는 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이다. 통상 기업들은 자사주 취득에서 소각까지 과정을 통해 주가 부양 의지를 보이지만, 팜젠사이언스는 전무하다. 특히 전체 발행주식 1817만8525주 중 자사주 규모도 4만1910주(0.23%)에 불과한 상태다.
팜젠사이언스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말 기준 소액주주지분율은 78%"라며 "안정적인 자본건전성을 바탕으로 실천 가능한 다양한 주주친화정책을 검토 중에 있으며, 향후 결정이 되면 공식 채널을 통해 시장과 소통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김혜선 기자 hsun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