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공급 과잉과 원가 경쟁 심화…업계 경영난 가중정부의 기활법 기준 완화로 석유화학 산업 재편 '기회'여기에 독과점 규제 완화 필요 목소리도 높아
[IB토마토 권영지 기자]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새로운 구조조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글로벌 공급 과잉과 원가 경쟁 심화 속에서, 경쟁력을 잃은 사업 정리와 재편 절차를 간소화해주는 기업활력법(이하 기활법) 기준이 완화되면서 석유화학 업계의 사업구조 재편 절차가 간소화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다만, 기활법 기준 완화만으로는 구조조정 효과가 부족하다는 지적과 함께 일정 부분 이상 시장 점유율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독과점 규제를 풀어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사진=LG화학)
국내 석유화학사, 3분기 줄줄이 '적자'
국내 석유화학업계가 중국발 공급 과잉과 저가 공세의 직격탄을 맞으며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다. 1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3분기 누적 기준
LG화학(051910)은 석유화학부문에서 37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으며,
한화솔루션(009830)은 케미칼부문에서 673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특히
롯데케미칼(011170)은 전 사업 부문을 합쳐 6600억원의 손실을 냈다. 이는 전년 동기 319억원의 손실을 낸 것과 비교하면 적자 규모가 대폭 늘어난 것이다.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인해 구조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대규모 생산능력(CAPA)을 바탕으로 한 중국의 저가 공세는 국내 기업의 수익성을 크게 악화시켰다. 업계에서는 경쟁력 강화 방안으로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전환과 사업 재편을 추진하고 있지만, 설비 투자와 구조조정에는 막대한 자금과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일정 부분의 재무구조 악화를 감안해야 한다는 리스크가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업계는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활력법 기준 완화를 통한 구조조정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기업활력법이란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의 줄임말로 기업이 구조변경이나 사업혁신활동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자 사업재편 추진 시 이를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특례를 부여하는 제도다.
정부는 석유화학업종에 기활법 기준을 완화 적용해 선제적 사업 재편을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실제 기획재정부는 지난 8월부터 과잉 공급 업종 판단 기준을 변경했다. 기존에는 장기 10년과 단기 3년 실적을 바탕으로 업종 과잉 여부를 판단했지만, 새로운 기준은 과거 20개 분기와 최근 4개 분기를 비교하는 방식을 추가했다.
기준이 완화된 기활법이 적용되면 기업 간 인수·합병(M&A)이나 사업 재편이 용이해진다. 간이 합병과 소규모 합병 시 주주총회 의결 대신 이사회 승인만으로 절차를 마칠 수 있고, 주식 교환 시 양도차익에 대한 소득세와 법인세 납부도 주식 처분 시까지 유예된다. 이는 석유화학산업의 인수·합병 속도를 크게 높일 것으로 보인다.
기활법 완화만으로는 효과 '미미'…독과점 규제 완화 목소리
실제로 LG화학은 최근 전남 여수의 나프타분해시설(NCC)과 폴리올레핀(PO) 생산시설 매각 협상을 진행 중이다. 쿠웨이트 국영석유회사(KPC)의 자회사 PIC와 공동으로 설립할 합작법인에서 LG화학이 지분 51%를 유지하며 경영권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처럼 완화된 기활법은 석유화학업계의 구조조정을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업계는 기업 간 합병과 사업 재편을 통해 생산 효율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기활법 적용만으로 업계 전반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들은 공정거래법 규제 한시적 완화와 과세 감면 등 추가적인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과잉 공급 해소를 위한 기업 간 합병이 독과점 규제에 가로막혀 있어 보다 유연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기활법은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제공하지만, 여전히 공정거래법의 시장 독점 기준이나 점유율 제한 등의 조항은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대형 합병이나 전략적 파트너십이 필요할 경우 여전히 독과점 규제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쉽게 말해 구조조정을 통해 특정 기업의 시장 점유율이 높아질 경우, 여전히 공정위의 제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석유화학업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석유화학업계는 현재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업 간 합병이나 공동 투자와 같은 구조조정이 절실한 상황"이라면서 "과잉 공급 문제를 해결하고 생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특정 기업의 시장 점유율 확대가 불가피한데, 현행 독과점 규제로 인해 구조조정이 지연되는 사례가 많다"고 토로했다. 이어 "규제 완화가 한시적으로라도 적용된다면, 업계가 보다 유연하게 사업재편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기업평가(034950)는 최근 ‘2025년 신용등급 전망’ 세미나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에 따른 경제 정책 변화와 세계 무역 분쟁 심화, 중국의 성장 정체와 공급 과잉 등을 주요 대외 변수로 꼽았다. 한기평은 내년 등급 전망이 부정적인 업종으로 석유화학 외 5개 업종을 선정했다. 이러한 가운데 석유화학은 3년 연속으로 등급 전망이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