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변세영 기자]
남양유업(003920)과 한앤컴퍼니가 '선결조건' 합의 여부에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파국으로 치달았다. 남양유업은 주식매매계약(SPA) 해지를 통보하면서 한앤컴퍼니와 법정 다툼은 물론 사태 장기화가 불가피해졌다. 특히 소송 결과를 차치하더라도, 경영권 논란과 신뢰도 하락 등으로 여론이 돌아서면서 남양유업이 재기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업계 시각이다.
2일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남양유업은 ‘투자판단관련주요경영사항’ 공시를 통해 주식매매계약 해제를 알렸다.
지난 5월 국내 사모펀드(PEF) 한앤컴퍼니(한앤코)는 남양유업 오너가(家) 지분 약 52%를 3100억원에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승인을 거쳐 거래종결일은 지난 7월30일로 여정이 마무리되는 듯 보였다. 그런데 남양이 거래종결을 위해서 준비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하면서 남양유업 주주총회일정을 돌연 6주 뒤인 9월14일로 연기했고, 계약이 삐거덕대기 시작했다.
남양이 거래종결일을 미룬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나온 양측 입장문 및 업계 의견을 종합해보면 남양은 한앤코에 계약서엔 없는 가격 재협상 및 개인적인 요구 항목을 추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비밀유지에 따라 정확하게 공개되지 않았지만, 업계는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 측이 한앤코에 자녀 승계유지 등의 조건을 내걸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사항은 계약서에는 명시되지 않고 구두로만 오갔다. 남양은 해당 조건에 대해 “합의가 끝난 이슈”라고 주장하는 반면, 한앤코는 “계약에 없던 일방적 주장”이라고 맞서고 있다.
불가리스. 출처/남양유업
남양유업 vs 한앤컴퍼니…법조계 의견은
법정 소송 핵심 쟁점은 크게 2가지로 추려볼 수 있다. 우선 선결조건이 일방적 주장이냐, 쌍방에서 합의가 됐느냐다.
한앤코에 따르면 본 계약 발표 후 홍 회장 측에서 가격 재협상 등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앤코 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8월 중순 이후부터 부탁성 요구 항목을 거래종결의 ‘선결조건’이라며 태도를 바꿨다고 한다.
한앤코 측은 법원에서 계약서 내용을 토대로 진위가 확인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다만 남양유업 주장처럼 구두로라도 한앤코 측이 요구사항을 받아들였다가 철회한 게 맞는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계약서와 같은 서면 외에도 구두 합의 역시 유효성이 인정되고, 법적 효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요구사항이 등장한 시기도 중요하다. 남양의 요구사항이 주식 매매계약 이후 거론된 것인지, 아니면 계약 이전부터 오고 갔던 내용인지 여부다. 애초에 매매계약 체결 이후 나온 요구사항이라면 남양 측이 마음이 변해 계약서에 없는 추가조건을 요구해 무리한 주장을 내세웠다는 점이 힘을 얻는다.
두 번째 쟁점은 ‘불평등’ 여부다. 민법 104조에 따르면 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으로 인하여 현저하게 공정을 잃은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는 조항이 있다. 남양은 매각 가격 등이 불공정한 계약이었다고 주장하는 상태다.
매매 대상인 남양유업 오너가 지분 52%(3100억원)는 주식 매매계약을 체결한 지난달 27일 남양유업 종가(43만9000원) 기준 약 1.8배수, 5년 평균 상각전영업이익(EBITDA. 에비타) 대비 12배 수준에 해당했다. 식음료 업계에서는 2018년 웅진이 에비타 대비 12배, 공차는 13배 가격으로 인수된 바 있다. 그런데 남양유업의 재무상태가 때아닌 변수로 떠올랐다. 지난해 말 기준 남양유업은 이익잉여금만 8685억원, 1년 이내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자산은 5078억원이다. 이에 더해 무형자산을 제외한 유형자산 순장부가액만 3700억원에 달한다는 점에서 ‘헐값거래’가 아니냐는 논란이 오고 갔다. 홍 회장 측도 이를 고려해 매매 대금을 인상해달라는 등의 요청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불평등 논란에 한앤코는 단호한 입장이다. 남양유업의 6분기 영업손실 규모 약 1000억원 및 브랜드가치 회복에 필요한 투자 소요를 고려했다며 불평등한 계약이 아니라고 일축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기업 인수·합병(M&A) 변호사는 <IB토마토>에 “계약 무효는 불법성이 강한 게 아니라면 인정받기 어려운 게 보통이다”라면서 “홍 회장이 주식매매계약 이전 로펌 및 M&A 전문가들의 엄청난 자문을 거쳤을 텐데 불평등한 조건이라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남양유업 본사. 출처/뉴시스
피 터지는 공방전…“남양, 재매각 어려울 것”
이번 M&A 거래 무효 소송으로 한앤코와 남양 모두 골치 아픈 문제를 겪게 됐다. 다만 결국 득보다 ‘실’이 더 많은 입장은 남양이라는 시각이 주를 이룬다.
남양이 떠안은 첫 번째 실은 원매자 등장 여부다. 법원은 남양유업 홍 회장과 부인 이운경 고문이 보유한 남양유업 주식 처분을 금지하는 가처분 결정을 내린 상태다. 지난달 23일 한앤코 측이 일방적 계약 파기에 대비하기 위해 주식매매금지 소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홍 회장 측은 주식 매매거래가 불가능해졌고, 사실상 한앤코가 아닌 다른 매수자를 찾기 힘들어졌다는 분석이다.
남양은 계약상 지난달 31일까지 협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데도, 계약 도중 한앤코 측이 주식처분 금지 소송을 제기한 것에 유감을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기간 연장에는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시’라는 전제조건이 있었다. 이미 임원선임 및 증권계좌 확인 등 매각이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남양 측이 돌발적으로 연기했기 때문에 주식 거래 금지 소송에 문제가 없다는 게 한앤코 측 설명이다.
두 번째 악재는 기업브랜드 가치 하락이다. 남양은 지금까지 대리점 물량 밀어내기, 영업사원 폭언, 코로나19 불가리스 사태 등을 거치면서 불매운동까지 일어날 만큼 기업가치가 바닥에 떨어졌다. 아울러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 등으로 오너 일가에 대한 이미지도 좋지 않은 상황 속, 홍 회장 오너가의 말 바꾸기 논란까지 가세했다. 홍 회장은 불가리스 사태 당시 회장직을 사퇴하고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아직 대표이사에서 내려오지 않았고 올해 상반기 9억원에 달하는 보수를 받았다.
설상가상 한앤코와 매각계약 하루 전날 회삿돈 부당 사용 의혹을 받고 보직 해임된 장남 홍진석 상무가 복직하고, 동시에 차남 홍범석 본부장도 상무로 승진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여론이 완전히 돌아섰다. 이는 남양이 한앤코에 요청한 개인적인 조건이 두 아들에 대한 경영권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뒷받침한다.
한편, 홍 회장이 남양유업 지분 매각을 밝힌 뒤 남양유업 주가는 경영정상화를 기대하는 움직임 속 주당 30만원대에서 70만원대까지 치솟았다. 이후 계약해지 소식이 나오자 2일 종가기준 주가는 50만4000원까지 떨어지는 등 공시 이후 10% 큰 폭으로 하락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M&A 역사에 남을 만한 사건”이라면서 “소송에서 시시비비가 가려지겠지만, 남양에게 아킬레스건이 하나 늘었다는 점에서 향후 재매각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변세영 기자 seyo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