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노태영 기자] "앞으로 DB를 어떤 환경 변화도 헤쳐나갈 수 있는 지속 성장하는 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7월2일 취임사>
DB그룹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창업주 김준기 전 회장의 시대가 저물고 아들인 김남호(45) 회장 체제로 탈바꿈했다. 일각에선 40대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그룹 수장에 오른 만큼 경영 성과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그럼에도 본업인 금융업 외에 제조업 등 사업 다각화로 그룹을 일으켜 세울 것으로 기대하는 재계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 첫 단추는 'DB하이텍'이다.
27일 재계 관계자는 "어찌 됐건 아버지의 불미스러운 일로 경영권 승계 시점이 빨라진 건 분명하다"라며 "나이보다 중요한 건 위기 돌파 능력인데 김남호 회장의 경우 외국계 경영 컨설팅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만큼 누구보다 전략적인 그룹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김 회장은 그동안 조금씩 그룹의 지배력을 높여왔다. 올해 1분기 기준 실질적 지주회사인 DB Inc.(16.83%)와 DB손해보험(8.30%)의 최대주주다. 아버지 김 전 회장이 각각 11.20%, 6.65%를 보유하고 있다. 승계 시점이 문제였을 뿐 사실상 그룹을 지배해온 셈이다.
김 회장은 이달 초 그룹 총수에 오르자마자 인사발표로 경영의 틀을 잡아갔다. 지난 13일 DB그룹은 구교형 DB그룹 경영기획본부장, 이성택 DB금융연구소 사장, 김정남
DB손해보험(005830) 대표이사, 최창식
DB하이텍(000990) 대표이사 등 4명을 각각 부회장으로 승진 발령했다.
여기서 주목할 인사는 DB하이텍 출신인 구교형, 최창식 부회장이다. DB하이텍에 힘을 실어주는 이번 인사는 금융 외 제조업에서도 미래 먹거리를 찾는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DB그룹은 금융과 제조 두 부문이 핵심으로 나눠져 있다. 금융부문에서는 DB손해보험을 중심으로 DB생명보험, DB금융투자, DB자산운용, DB저축은행, DB캐피탈 등이 있다. 제조부문은 DB Inc를 중심으로 DB하이텍, DB메탈 등으로 구성돼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연결기준 DB손해보험과 DB inc의 매출액이 18조6761억원, 2385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그룹 내에서 금융업의 비중은 전체 매출의 90%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는 현재 코로나19와 같은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위험 분산 측면에서도 사업 다각화가 절실하다는 얘기다.
따라서 DB하이텍의 성장 여부는 앞으로 DB그룹의 향방을 좌우할 중요한 경영성과로 평가받을 수 있다. 김 회장은 취임사에서 "그룹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업적을 계승하고 새로운 DB 시대를 만들어나갈 것"이라며 "기존 사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미래를 위한 성장 발판을 하나씩 만들겠다"라고 밝혔다. 여기서 미래를 위한 성장 발판은 제조업을 가리킨다.
DB하이텍 실적은 2014년에 흑자 전환했다. 연결 기준 매출 5677억원, 영업이익 456억원을 기록했다. 꾸준히 성장해 지난해 매출 8074억원, 영업이익 1813억원으로 영업이익률 22.5%를 달성했다.
김경민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8인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으로 100K 이상의 안정적 생산능력을 확보했으며 무역분쟁에서 이슈가 되는 중국이나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 생산라인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장점이다"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DB하이텍 앞에 놓인 시장 상황은 녹록지 않다. 8인치 웨이퍼 기반의 아날로그 반도체에 편중된 사업영역으로 사업기반이 협소하다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나온다. 8인치 웨이퍼는 반도체 주력 분야가 아니기에 시장을 주도하기 힘들고 파운드리와 설계 모두를 하는 기업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 또 전체 파운드리 시장 내에서 글로벌 시장점유율 2% 아래인 것은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의미다.
그룹의 최종 의사결정권자로서 김 회장의 투자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동안 동부전자로부터 승계한 관련 대출로 2014년까지 과중한 재무부담이 이어져왔다. 부채와 차입금 감축이 우선순위였기 때문이다.
DB하이텍 재무안정성 지표. 출처/한국신용평가
그 노력으로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부채비율 67.5%, 차입금의존도 21.9%, 순차입금/EBITDA 0.5배 등 재무안정성 지표가 나아졌다. 2014년 6598억원까지 올랐던 총차입금은 올해 1분기 기준 2509억원까지 내려갔다.
하지만 현실과 달리 보수적인 투자 기조가 이어질 것이란 의견도 있다. 강교진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재무정책에 따라 대규모 증설 등 CAPEX 부담 증가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된다"라며 "잉여현금 창출을 통한 재무부담 관리가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노태영 기자 now@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