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가치가 커져도 이를 거느린 지배회사의 주가는 낮은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반주주에게는 저평가 해소가 과제지만 지배주주에게는 낮은 주가가 상속·증여 비용을 줄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엇갈린다. 당정이 추진하는 주가누르기 방지법은 이 같은 간극을 좁히려는 시도다. 주식 평가방식을 바꾸는 세제 개편과 저평가 기업의 가치 제고 노력을 유도하는 입법이 함께 추진되고 있다. 이에 <IB토마토>는 제도 변화가 주요 그룹의 승계와 사업 재편, 자금 조달에 미칠 영향을 다각도로 짚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김규리 기자] 재계가 낮은 주가와 기업가치의 간극을 해소해야 한다는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당정이 상속·증여 과정에서 저평가된 주식을 다시 평가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동시에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기업에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를 의무화하는 법안도 추진하면서다. 자회사와 손자회사 지분을 통해 그룹을 지배하는 구조에서는 주식 평가방식에 따라 오너 일가가 마련해야 할 승계 재원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상법 개정에 이어 저평가된 지배회사의 가치 평가방식이 재계의 핵심 논의 사항으로 떠오르고 있다.
제439회 국회(정기회) 개회(출처=뉴시스)
상법 개정 다음은 저평가 해소…정부·의원안 계산법 달라
15일 재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당정은 주가누르기 방지를 위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편과 관련해 정부안과 의원안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추가 논의를 이달 안으로 이어갈 예정이다. 11월 중 처리 방향을 구체화하고 올해 정기국회에서 입법을 마무리하는 데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최대주주의 상속·증여 주식 평가방식 개선과 함께 저평가 기업의 가치 제고 계획 공시 의무화도 함께 논의된다.
올해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와 자기주식 의무소각 등을 담은 상법 개정으로 주주 보호 장치를 강화한 데 이어 낮은 주가를 방치하거나 활용할 유인까지 줄이겠다는 취지다. 다만, 상속·증여 주식 평가방식을 놓고 정부안과 여당 의원안이 차이를 보이는 만큼 이를 조정하는 방안이 남은 기간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당초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5월 발의했던 원안은 회사가 가진 자산과 수익을 평가에 반영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상장주식 시가가 세법상 순자산가치의 80%에 못 미치면 비상장주식 평가방식을 적용하고 평가액도 순자산가치의 80%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도록 했다. 낮은 주가와 별개로 과세에 반영할 최소 가치를 정해 대주주가 주가를 낮게 유지할 유인을 줄이겠다는 의도다.
지난 8월 재정경제부가 발표한 '2026 세제개편안' 중 주가누르기 평가방법 내용 중 일부 (그래픽=AI 제작·IB토마토)
그러나 재정경제부가 지난 8월 발표한 세제개편안은 주가누르기가 의심되는 기업을 선별해 과거 주가로 다시 평가하는 방식을 내놓으면서 국회안과 사뭇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저PBR 추정 요건은 최근 13개 반기 중 누적 12개 반기(6년 6개월 중 6년) 동안 PBR이 업종별 하위권에 해당하는 경우다. 코스피는 하위 25%, 코스닥은 하위 10%를 기준으로 제시했다. 최근 1년간 중복상장이나 교환사채(EB) 발행 등 기업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가 있었고 현행 평가액이 과거 평균주가보다 30% 이상 낮은 경우도 포함했다.
추정 요건에 해당하면 국세청 평가심의위원회에서 주가누르기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장기 저평가 요건에 따른 주가누르기로 확정되면 최대 6년 6개월까지 기간별 평균주가 중 최고액과 현행 평가액의 1.3배 가운데 큰 금액을 적용한다. 다른 추정 요건에서는 최근 6개월·1년·2년·3년 평균주가 중 최고액을 적용한다. 납세자가 주가누르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하면 기존 평가방법을 유지하는 구조다.
그러나 여당 내에서는 과거 주가를 활용하는 정부안만으로 장기간 이어진 저평가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가가 오랫동안 낮았던 회사는 평가기간을 늘려도 보유 자산가치와의 격차가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기형 민주당 K-자본시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지난달 "세법에 대해서는 정부안과 의원안이 있고, 그 속에서 함께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으나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같은 특위 소속 이훈기 민주당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재정경제부의 주가 누르기 방지법으로는 기업의 고의적인 주가 누르기를 막을 수 없다"면서 "지난 8월 재경부가 세제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주가 누르기 방지법 방안을 담았으나, 그 방법은 절대 주가 누르기를 막을 수 없는 내용"이라고 비판하는 등 정부안의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류제현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현재 정부원안대로 국회로 넘어갔으나 납세자연대는 PBR 0.8배 미만 절대적 기준과 순자산가치 80% 하한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들어가는 등 시장의 최대이슈로 떠오른 상황"이라며 "대상 기준이 어떻게 확정되는지가 저PBR 지주회사의 지배구조 유인에 직접 작용하므로 국회 조세소위 논의를 계속 확인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국회와 시장의 지적이 이어지자 정부는 상장주식 평가방법 개선에 대해 당정 논의와 의견 수렴을 거쳐 정기국회 심사 과정에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와 시장의 지적이 이어지자 정부는 당정 논의와 의견 수렴을 거쳐 정기국회 심사 과정에서 상장주식 평가방법의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최종안에 따라 주요 그룹이 마련해야 할 승계재원과 지분 이전 계획도 달라질 전망이다.
승계 앞둔 그룹부터 지배회사까지…자금 활용 설명 부담 커져
세제 개편과 함께 기업가치 제고계획 공시 의무화도 추진되면서 기업이 준비해야 할 과제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은 PBR이 2개 사업연도 이상 연속으로 1배 미만인 상장사에 배당가능이익 처분과 자기주식 취득·소각, 사업구조 개선 등을 담은 계획서를 작성·공시하도록 했다.
상속·증여세법 개편과 공시 의무화가 입법으로 이어지면 재계는 향후 승계비용과 기업의 자금 배분을 함께 검토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세제 개편은 최대주주가 이전할 지분의 평가액을 바꾸고 공시 의무화는 회사가 쌓아둔 자산과 이익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설명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저평가 해소가 주주환원뿐 아니라 투자 효율성과 사업구조의 문제로 확대되는 셈이다.
계열사 지분을 다수 보유한 지배회사에서는 평가 기준에 따라 영향이 달라질 수 있다. 사업회사 지분의 장부가액과 세법상 평가액 사이에 차이가 크면 현재 주가를 기준으로 예상한 승계재원보다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가 보유한 현금과 자산을 투자와 주주환원에 어떻게 배분할지에 대한 설명 부담도 커질 수 있다.
당정이 추가 논의를 예고한 만큼 향후 보완 과정에서 실질 자산가치를 얼마나 반영할지도 주목된다. 실제 이훈기 의원은 상장주식 시가가 세법상 순자산가치의 80%에 못 미치면 비상장주식 평가방식을 적용하고, 순자산가치의 80%를 평가 하한으로 두는 법안의 핵심을 재차 강조했다. 평가 기준을 회계상 장부가치가 아닌 세법상 순자산가치로 명확히 해야 한다는 얘기다.
기업지배구조(거버넌스) 전문가로 알려진 심혜섭 변호사는 <IB토마토>에 "정부가 추진하는 세제 개편안이 오히려 자본시장 왜곡과 주가 누르기를 유도할 수 있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장부상 PBR에 의존하는 평가 방식에서 벗어나 기업이 보유한 자산의 실질 가치를 기준으로 평가 체계를 보완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김규리 기자 kk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