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지배구조보고서가 일제히 공개됐다. 경제·사회 전반에서 ESG 경영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시장의 눈높이도 한층 높아지고 있다. 이에 <IB토마토>는 코스피 상장 제약·바이오 기업 가운데 시가총액 상위 3개사의 거버넌스 성적표를 점검하고 각 기업의 지배구조를 집중 분석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권영지 기자]
셀트리온(068270)이 이사회 내 사외이사 비율을 법적 기준 이상으로 늘렸지만, 의장직을 사내이사가 독점해 실질적 독립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창업주인 서정진 회장과 그의 장남인 서진석 대표이사가 이사회 공동의장직을 맡는 '부자(父子) 공동의장' 체제를 유지하면서 이사회 내부 위원회를 통한 견제·균형 장치가 작동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셀트리온)
사외이사 '몸집' 불렸지만…의장은 여전히 오너일가 차지
1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셀트리온의 이사회는 사내이사 4인(서정진, 서진석, 기우성, 김형기)과 사외이사 5인(고영혜, 윤태화, 이중재, 최원경, 최종문) 등 총 9인으로 구성한다. 이사회 총원 중 사외이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55.6%로 상법상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법인의 사외이사 과반수 의무 요건을 겨우 충족한다.
올해 들어 사외이사의 비율을 기존 8인에서 5인으로 줄이며 이사회가 실질적 독립성을 확보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이사회의 소집 권한을 갖고 회의를 주도하는 이사회 의장직을 사내이사이자 오너 일가가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셀트리온 이사회의 공동의장은 창업주인 서정진 회장과 그의 아들이자 대표이사인 서진석 대표가 공동으로 맡고 있다.
시장에서는 경영진을 감시·감독해야 하는 이사회의 수장을 대표이사와 오너가가 겸임하는 구조는 견제 기능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라고 지적한다. 지배구조 전문가들은 의장과 대표이사 겸직이 이사회의 독립적인 의사결정과 경영진에 대한 실효 감독을 저해하는 핵심 요인이라고 꼬집는다.
한국ESG기준원 등에 따르면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는 것이 원칙이다. 분리가 어려울 경우 사외이사회를 대표하는 '선임사외이사(Lead Independent Director)' 제도를 도입할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선임사외이사는 사외이사들만의 회의를 소집하고 주재할 수 있다. 이사회 의장 및 경영진과 사외이사 간의 소통을 조율하는 역할을 담당해 사내이사의 독주를 견제하는 실질적인 보완 장치로 꼽힌다.
셀트리온 이사회는 해당 기준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이사회 의장을 사내이사 2인이 공동으로 독점하고 있는 데다 사외이사들의 의견을 대변하고 실질적인 견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선임사외(독립)이사 제도를 최근 들어 도입했기 때문이다. 선임사외이사 제도가 오너 일가 중심의 의사결정 구도를 깰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이사회 역할 '거수기 전락' 논란
사내이사가 의장직을 독점하는 구조 속에서 이들을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들이 실질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 또한 커졌다. 지난해 결산 사업보고서에 공개된 이사회 활동 내역을 살펴보면 이사회는 총 22회 개최됐다. 이 기간 동안 수십 건의 안건을 의결했다. 이 과정에서 사외이사들의 반대의견이나 기권은 단 한차례도 없었다.
‘자기주식 취득 및 소각', '사업계획 승인', '이사의 겸직 승인', '미국 생산시설 인수 본계약 체결 보고' 등 주요 경영 의사결정 안건들은 예외없이 전원 찬성으로 가결됐다. 사내이사들의 의견이 갈린 안건 역시 사내이사들은 찬성표만 던졌다. 준비금의 자본금 전입(무상증자) 승인 건에 대해 사외이사들은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사내이사 중에서는 서정진 회장만이 찬성, 나머지 서진석 대표, 기우성, 김형기 이사 3인은 기권했다.
이사회 내부에서 경영진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된 위원회 역시 실효성에 물음표가 찍힌다. 셀트리온은 이사회 내 위원회로 감사위원회와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성과보수위원회, ESG위원회 등 4개 위원회를 운영한다. 이들 위원회의 구성을 보면 4명의 사외이사가 4개 위원회 위원장을 나눠 맡고 있다. 감사·성과보수·사외이사후보추천·ESG 위원회 각 5명 위원 모두 동일한 사외이사로 구성됐다.
동일한 인물들이 모든 전문 위원회를 겸임하다 보니 각 위원회의 전문적인 분석과 독립적인 견제가 이뤄지기 힘든 구조다. 실제로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의 경우 지난해 활동 내역이 '해당사항 없음'으로 공시됐다. 사외이사 후보군에 대한 정기적인 검증과 추천 프로세스가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는 이유다.
셀트리온 측은 <IB토마토>에 "이사회 과반수를 독립이사로 구성하고 선임독립(사외)이사 제도를 운영하는 등 이사회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지속해서 강화하고 있다"라며 "이사회는 안건 상전 전 충분한 자료 제공과 의견 수렴 절차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의결 역시 안건에 대한 충분한 검토완 논의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소수주주와의 해묵은 갈등 또한 존재한다. 지난해 11월 소수주주 윤 모 씨 외 1230명은 회사 측에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청구하고 법원에 소집허가 신청을 내는 등 사측과 대립각을 세웠다. 지난 2월 인천지방법원이 소수주주 측의 임시주주총회 소집 허가 신청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리며 사측의 판정승으로 일단락됐지만, 경영진과 주주 간의 갈등의 불씨가 완전히 꺼졌다고 보기엔 이르다.
한편, 긍정적인 변화의 조짐도 존재한다. 셀트리온은 지난 3월 개최된 제35기 정기주주총회에서 기존 정관에 포함돼 있던 '집중투표제 배제' 조문을 삭제하는 정관 변경 안건을 통과시켰다. 소수주주권 보호를 위한 집중투표제가 채택됐으며 오는 9월10일 이후 최초로 소집되는 이사 선임 목적의 주주총회부터 집중투표제가 전면 시행될 예정이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