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은행권은 어김없이 대규모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막대한 퇴직금과 위로금을 지급하면서도 이미 연례행사처럼 자리 잡은 모습이다. 표면적으로는 비대면 거래 확대, 인사 적체 해소, 인건비 부담 완화를 이유로 내세우지만 정작 실적은 역대급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영업현장에서는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왜 희망퇴직을 반복하느냐는 불만이 쏟아져 나온다. 이에 <IB토마토>는 은행권 희망퇴직의 현황과 경제적 손익, 그리고 노사 간의 입장 차이를 들여다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이성은 기자] 은행권 희망퇴직이 연례행사로 자리잡았다. 비용 절감과 청년 일자리 창출 등이 이유다. 인생 2막 준비를 위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명목이지만, 사실상 인건비 줄이기가 주된 목적이다. 판매관리비용에서 인건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탓이다. 은행권은 신규채용 등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희망퇴직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사진=은행연합회)
올해 하나은행부터 실시…대상 범위 넓어져
올 연말에도 은행권에서는 희망퇴직이 진행되고 있다. 희망퇴직이란 회사가 정년이 남은 근로자에게 자발적인 퇴사를 유도하고, 퇴직금과 위로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은행권은 통상적으로 연말부터 연초에 걸쳐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
하반기 가장 먼저 희망퇴직을 받은 곳은 하나은행이다. 지난 7월 하나은행은 일주일간 하반기 준정년 특별퇴직 신청을 받았다. 15년 이상 근무한 만 40세 이상 일반 직원을 대상이었다. 농협은행도 지난달 만 40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았다. 근속기간 기준은 하나은행 보다 낮췄다. 10년 이상 농협은행에서 근속한 직원이 대상이 됐다.
수협은행도 지난달 17일까지 희망자를 모집했다. 입사 15~18년차가 대상이다. 근속연수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만 56세 정규직 직원은 대상에 포함된다. iM뱅크도 9일까지 신청 받아 희망퇴직을 단행한다.
추가 소식은 없으나, 예전처럼 새해 초까지 희망퇴직 릴레이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권 희망퇴직 신청자의 경우 연령에 따라 18~31개월치 임금을 지급받는다. 은행마다 차이가 있으나, 자녀 교육비와 재취업지원금도 지급하고 있다. 은행이 거액의 특별 퇴직 위로급을 지급하고 별도 비용을 지출하고 있음에도 매년 희망퇴직을 단행하는 이유는 단순히 비용절감에 그치지 않는다.
은행권 희망퇴직의 명목상 이유는 직원 복지에 가깝다. 정년이 가까운 직원들에게 제2의 인생을 준비 기회 제공이 은행 희망퇴직의 가장 큰 목적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역할도 있다. 퇴직 이후 준비를 돕는 한편, 청년 일자리도 창출하기 때문이다. 희망퇴직 이후 빈자리를 청년층 채용으로 채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환경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비대면 거래 확대와 AI 기반 자동화로 빠른 속도로 업무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 은행의 경우 디지털화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17년 이후
카카오뱅크(323410)와 케이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 출범 이후 비대면 거래가 확산하면서 속도를 붙였다.
은행권 관계자는 <IB토마토>에 "디지털 전환 가속 등 환경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라며 "조직 내 인력구조를 건강하게 순환시키고, 청년 일자리 창출 등 새로운 인력 유입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불가피하다지만 사실상 밀려나"
희망퇴직은 은행이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됐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은행 직원 중 50대 이상이 22.7%를 차지한다. 20대는 절반인 11.2%에 불과하다. 청년 일자리 창출과 인력 유입 필요성의 근거다.
금융당국 압박도 가해진다. 지난 2010년대 후반에는 금융당국이 채용 확대를 요구키도 했다. 일자리 창출효과를 측정해 발표하기로 하면서 지난 2018년 채용인원을 대폭 늘린 사례도 있다. 2023년에도 청년층 신규 채용에 인색하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은행권을 필두로 금융권 신규 인력 채용을 확대했다. 2023년 상반기만 해도 전년 동기 대비 48% 증가한 2288명을 뽑았다.
젊은 직원을 채용하기 위해 관리자급 직원을 비롯 40대 초반 직원도 퇴직 대상이 된 셈이다. 농협은행도 마찬가지다. 근속 10년차면 중간 관리자급에 속하며, 40대 중반 직원 이상은 관리자급으로 분류된다.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희망퇴직 대상자는 통상적으로 50대 중후반이 대상이 됐으나, 10년 이상으로 연령을 넓혔다. 특히 만 56세 직원의 경우 대부분 퇴직을 선택한다. 임금 피크제 영향이다.
임금피크제란 일정 연령의 근로자에게 고용 보장을 조건으로 임금이 최고점에 도달한 이후부터 정년까지 단계적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다. 통상적으로 임금피크제 대상자가 희망퇴직을 선택한다. 임금피크제 해당자가 퇴사하지 않는다면 되레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임금피크제 이후 은행에 계속 다니면 희망퇴직금보다 적은 금액을 4~5년에 나눠서 받아야 한다"라면서 "나이는 들고 돈은 못버는 형국이 돼 보통 희망퇴직을 선택한다"라고 말했다.
이성은 기자 lisheng12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