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실트론 인수전, 한앤코 vs 두산 '2파전' 압축
인수에 속도 내는 두산…한앤코 전략 차질
SK, 원매자 늘어 협상 테이블서 유리한 입장
공개 2025-10-29 06:00:00
이 기사는 2025년 10월 27일 06:00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홍준표 기자] SK실트론이 매각 절차에 들어가면서 인수 후보군이 압축되고 있다. 복수의 원매자가 시장에 거론됐지만, 예비입찰 이후 한앤컴퍼니와 두산그룹의 양자 대결 구도로 좁혀지는 양상이다.
 
2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두산(000150)이 SK실트론 인수에 속도를 내면서 한앤코의 인수 전략에도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한앤코는 초창기부터 가장 유력한 인수후보로 꼽혀 왔으며, 예비입찰 단계에서 IMM프라이빗에쿼티·스틱인베스트먼트 등이 이탈한 뒤 단독 협상으로 진전된 상태였다. 다만 한앤코 측과 SK(003600) 간 밸류에이션에 대한 이견과 부채구조를 둘러싼 논의가 길어지면서 협상이 지연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거래 대상은 SK가 보유한 지분 51%와 총수익스와프(TRS)로 묶인 지분 19.6%다. 최태원 SK 회장 몫인 29.4%는 이번 매각 과정에서 제외됐다. 앞서 대법원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재산분할금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는 원심(2심)의 판결을 파기하면서 SK 지분을 매각할 필요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진=SK실트론)
 
SK실트론, 한앤코와 몸값 두고 '이견'…순차입금비율 98% 달해
 
SK측은 SK실트론 전체 기업가치를 5조원으로 책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차입금 규모를 고려하면 몸값은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SK실트론의 올해 상반기 순차입금 규모는 2조2233억원으로, 순차입금비율이 98.37%에 달한다. 자기자본 1원당 부채가 약 0.98원 있다는 의미로, 이는 통상 인수 과정에서 부채 상환 리스크에 따른 할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차입금 규모가 늘어난 것은 구미 신공장에 대한 투자 등으로 부담이 늘었기 때문이다. SK실트론은 2022년부터 2026년까지 구미사업장에 총 2조3000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에 따라 차입금 부담을 늘려왔다. 총차입금은 2022년 1조9483, 2023년 2조3495억원, 2024년 2조7804으로 늘어났고, 이에 따라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대비 총차입금 배수는 2.0(2022년), 3.4(2023년), 4.2(2024년)으로 늘었다.
 
SK실트론 입장에선 차입금 부담이 증가할수록 안정적인 현금창출력을 근거로 몸값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지만, 반도체 업황이 최근 몇 년간 부진하면서 EBITDA 규모도 축소됐다. SK실트론의 최근 3년간 EBITDA는 2022년 9794억원에서 2023년 6875억원, 2024년 6548억원이다. 영업이익률도 같은 기간 24.0%, 13.9%, 14.8%로 떨어졌다.
 
이 외에도 SK실트론은 지난해 장기공급계약으로 받은 선수금 5754억원을 설비 투자에 전액 투입하면서 향후 차입금 부담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일반적으로 반도체 제조사는 웨이퍼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웨이퍼 제조사와 3~5년 간의 장기공급계약을 맺는다. 반도체 제조사가 선수금을 지급하고, 웨이퍼 제조사는 원자재를 구입해 최종 상품을 공급하는 구조다. 그러나 SK실트론은 이를 공장 증설에 사용하면서 향후 원자재 구매에 따른 차입금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SK실트론 입장에선 2026년부터 구미 신공장 투자 부담이 축소되면서 차입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는 점, 구미 신공장서 양산이 개시될 경우 확대된 영업현금창출력에 힘입어 차입부담 경감 속도가 빨라질 전망이라 몸값 지키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특히 SK는 그룹 차원에서 향후 고성장이 예상되는 AI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어 SK실트론에 대한 장기공급계약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두산, 인수에 속도…약 2조원 현금 확보나서
 
두산은 최근 자회사인 두산로보틱스(454910) 지분을 담보로 한 주가수익스와프(PRS)를 통해 약 7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PRS는 기업이 보유한 주식의 가격 변동에 따른 수익과 손실을 금융회사와 교환하는 파생상품이다. 보유 주식의 실질적인 소유권을 이전하지 않고 주가 변동에 따른 차익만을 교환해 현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두산은 올해 상반기 기준 두산로보틱스 지분 약 68%를 보유 중이다. 7000억원 규모가 최근 시가 기준 지분 약 15%에 해당하는 것을 고려하면, 경영권에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자금을 최대로 끌어온 셈이다.
 
두산의 올해 상반기 별도 기준 유동자산 규모는 2조1625억원이며, 현금성자산은 1조2386억원이다. 지난해 말 현금성자산이 1487억원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인수를 위한 실탄은 충분히 장전해 놓은 상황이다. 추진 중인 PRS 발행 규모를 합하면 약 2조원의 인수 자금을 확보할 전망이다.
 
두산은 두산로보틱스와 시너지를 낼 만한 기업을 대상으로 M&A 방향을 설정했다고 알려졌다. 두산은 지난해 사업 구조 재편 과정에서 두산에너빌리티가 보유한 두산밥캣 지분을 두산로보틱스 자회사로 넘기는 분할 합병안을 계획했지만 소액주주 반발로 한 차례 좌절된 바 있다. 당시 두산은 두산로보틱스의 부족한 현금을 두산밥캣의 배당으로 메워 기계·로봇·AI를 아우르는 수직 통합 구조를 확보하겠단 구상이었다.
 
두산은 SK실트론 인수를 통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한 단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제조장치의 웨이퍼는 해마다 대형화·고밀도화되면서 정밀 로봇이 주로 사용되는 추세다. SK실트론의 주력 사업인 웨이퍼 가공·연마(CMP), 세정, 검사 공정 과정에서 외주화를 줄이거나 효율적인 공정 기술 완성 등 두산로보틱스와의 시너지를 노릴 전망이다. 
 
IB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SK그룹 입장에선 복수의 원매자를 두고 최대한 유리한 협상 테이블을 짤 수 있게 됐다”며 “두산은 오랫동안 고민해온 미래 성장동력 발굴에 힘을 쓰고 있어 협상 과정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홍준표 기자 junpy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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