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 역풍)①관세 리스크에 세금 부담까지…기업 재무 전략 '비상'
지난해 법인세 수입 17.9조원 감소…세수 절벽 위기
세율 인상에 이연법인세 활용 주목
OECD 24.2% vs 한국 27.5%…정부 "역행 아냐" 재계 "경쟁력 약화"
공개 2025-09-05 06:00:00
이 기사는 2025년 09월 03일 16:45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정부와 여당이 법인세율을 모든 구간에서 1%포인트씩 인상하기로 했다. 지난 2년간 이어진 세수 결손이 배경이지만 재계에서는 이미 한계에 달한 비용 부담에 법인세 인상까지 겹치면 기업 활동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미국발 고율 관세에 더해 국내 법인세율까지 오르면서 기업들이 이중 부담을 떠안게 된 것이다. 이번 세제 개편은 주요 그룹사들의 재무 전략과 투자 계획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에 <IB토마토>는 세제 개편의 배경과 더불어, 주요 기업들이 어떤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있는지 짚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김규리 기자] 정부가 세수절벽을 이유로 법인세 인상 카드를 꺼내들면서 재계에 비상이 걸렸다. 법인세는 기업의 순이익에 직접 반영되는 만큼 세율 변화는 이익잉여금과 배당뿐 아니라 나아가 투자 여력에 직결된다.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이미 미국 발 고율 관세라는 외부 악재에 직면한 상황에서 국내 세금 부담까지 겹치게 되자 주요 그룹사들은 재무 전략을 전면 재검토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시장에서는 법인세 인상이 단순한 세율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미래 투자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변수라고 지적하고 있다.
 

(1일 국회에서 열린 제429회 국회 정기회 개회식. 출처=연합뉴스)
 
세수 절벽이 가장 큰 원인…법인세 인상 효과는 2027년부터
 
3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법인세 전 구간 세율을 1%포인트씩 인상하는 내용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추진하면서 기업과 정치권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는 국세기본법과 국세징수법 조세특례제한법 법인세법 등 4개 개정안을 마련해 최근 열린 정기국회에서 본격 심사를 받을 예정이다.
 
정부가 8년 만에 법인세 인상 카드를 꺼내든 직접적 배경은 세수 절벽이다. 2022년 100조원을 웃돌던 법인세 수입은 2년 연속 급감해 정부 재정 운용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국세 수입은 336조5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7조5000억원 줄었다. 이 중 법인세 감소분이 17조9000억원에 달했다. 정치권 내부에서는 국가 신용도 훼손을 막기 위해 세율 환원이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셈이다.
 
기업 실적 악화가 법인세 감소로 이어졌다. 상장사 영업이익(개별기준)은 2022년 84조원에서 2023년 46조9000억원으로 44.16%나 줄었다. 이에 따라 기업 이익 둔화와 맞물린 국세 수입 감소가 정부가 증세 카드를 꺼내들게 만든 핵심 요인이다.
 
올해 정부는 기업 실적 회복세를 반영해 법인세 수입을 당초 예산보다 3조원 많은 83조5000억원으로 잡았다. 그러나 내년 세제개편안에 따른 세수 증가는 약 2000억원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법인세는 전년도 실적을 기준으로 과세하기 때문에 2025년에는 올 상반기 실적에 대한 중간예납분만 인상 효과가 일부 반영된다. 인상된 세율은 2026년 실적부터 적용돼 2027년 납부로 이어져야 비로소 본격적인 세수 확대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문제는 시기다. 글로벌 법인세율은 하향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OECD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평균 32%에 달하던 회원국 법인세율은 지난해 기준 23%까지 내려갔다. 미국은 연방 법인세 21%에 주별로 0~12% 사이로 차등 적용하고 있다. 일본(23.20%)을 비롯한 베트남, 태국 등도 낮은 세율로 기업 투자를 유인하는 중이다. 경기 둔화 국면에서 일괄적인 세율 인상을 단행하는 국가는 사실상 드물다는 얘기다. 이번 법인세 인상으로 우리나라의 법인세 법정 최고세율은 27.5%로 상승해 OECD 회원국의 평균 수준(24.2%)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오종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법인세율 인상은 기업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성격이 강하다”면서 “조세는 경제주체의 행태를 왜곡해 효율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경제성장이 중요하다면 오히려 세 부담을 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글로벌 국가와 세율 격차가 확대될 경우 국내 기업 경쟁력이 약화되고 자본이 세 부담이 낮은 해외로 이전할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연법인세 계정에 따라 기업들의 재무 전략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날 전망이다. 이연법인세는 회계 기준과 세법 기준 간의 시차에서 발생하는 항목으로, 향후 납부할 세금(부채)이나 공제 가능한 금액(자산)을 세율에 맞춰 장부에 기록하는 방식이다. 세율이 높아지면 기존에 쌓여 있는 이연법인세부채의 평가액이 커져 부채가 늘어나고, 반대로 과거 영업손실이나 세액공제 이월분을 보유한 기업은 이연법인세자산 가치가 상승해 절세 여력이 확대된다. 이는 당장의 현금흐름과 직접 연결되지는 않지만 재무제표상 세후이익 전망과 향후 자본구조에 영향을 미쳐 시장에서는 투자 여력 감소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국내법인 소속 한 회계사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기업들이 세율 변화에 가장 민감한 이유는 단순히 납부세액이 늘어나기 때문이 아니다”라며 “세율 인상은 이연법인세를 통해 미래 투자 계획과 현금흐름 전망에 영향을 미쳐 자본시장에서 기업가치 평가의 주요 변수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정부 “국제적 역행 아니다” VS 재계 “글로벌 경쟁력 약화 우려”
 
다만 정부는 이번 증세가 국제적 추세에 역행한다는 비판에 선을 그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세계 주요국은 경제와 재정여건에 따라 조세정책을 다르게 운용하고 있다”며 “영국과 프랑스도 법인세율을 인상하는 등 감세 일변도의 글로벌 트렌드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기획재정부 자료에 따르면 영국은 2023년 법인세율을 19%에서 25%로 인상했으며 프랑스도 올해부터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시적 인상을 시행하기로 했다. 또 OECD가 집계한 G20 국가의 법인세율은 평균 23.4%(지방세 포함 27.4%)이고 1인당 국내총생산이 3만달러 이상이며 인구가 5000만명 수준인 국가들의 평균은 22.5%(지방세 포함 27.2%)로 한국과 큰 차이가 없다는 설명이다.
 
반면 재계는 이번 조치가 기업의 부담을 키워 성장 잠재력 약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정부의 성장 중심 경제정책 의지에도 불구하고 금번 세제개편안에 법인세율 인상 등 기업의 부담을 늘리는 방안이 포함된 것은 아쉽다”며 “성장잠재력 둔화, 통상 환경 악화, 내수 침체 장기화 등 복합 위기 속에서 법인세율 인상은 위기 극복 주체인 기업의 경영 부담을 키워 글로벌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임시투자세액공제 일몰은 기업들의 투자 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주요 그룹에서는 실제로 대규모 투자 계획을 연기하거나 순차입 관리에 속도를 내는 등 방어적 재무 전략을 고민하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재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법인세 인상은 곧바로 세수 확대 효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투자·배당·현금흐름 의사결정에는 선제적으로 반영된다”며 “기업들은 이미 현금 비축과 투자 우선순위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규리 기자 kk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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