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 보상보다 미래 외친 까닭…SK하이닉스 유동성 긴장감
성과급 1700% 상향에도 노조 반발…영업이익 10% 전액 요구
올 상반기 총차입금 21조8410억원 반년 새 단기차입 3조원 증가
글로벌 시장 불확실성 확대에 투자 재원 마련 숙제까지
공개 2025-08-27 06:00:00
이 기사는 2025년 08월 25일 06:00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김규리 기자] SK하이닉스(000660)가 지난해 인공지능(AI)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SK(003600)그룹 전체 실적을 견인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역시 4년 만에 성과급을 수령하며 보수 규모를 크게 늘렸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성과급 배분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최 회장이 직접 “보상보다 미래를 보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갈등에 선을 그은 배경에는 커지는 위기의식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 불확실성 확대와 함께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한 유동성 확보라는 숙제가 겹치며 SK하이닉스의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사진=SK)
 
SK하이닉스, 호실적에도 늘어난 단기차입…재무 압박 심화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가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음에도 단기차입금이 급증하면서 재무 압박이 심화되고 있다. 이 가운데 성과급 지급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재현되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보상에만 집착하면 미래를 제대로 볼 수 없다”고 언급한 배경이 실제로 재무구조 불안과 하반기 글로벌 업황 위기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영업이익 23조46730억원을 기록했다. AI 서버용 D램 수요 급증과 첨단 제품 판매 호조가 수익성을 크게 끌어올렸다. 이에 힘입어 SK하이닉스는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최태원 회장 역시 올 상반기 지주사인 ㈜SK와 SK하이닉스를 통해 보수 총 47억5000만원을 챙겼다. SK로부터 17억5000만원, SK하이닉스로부터 30억원을 수령해 2021년 이후 4년 만에 처음으로 상여금을 수령했다.
 
그러나 역대급 실적으로 인한 성과급 잔치가 오히려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노조는 영업이익의 10%(2조3500억원)를 성과급 재원으로 지급해야 한다며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 반면 회사는 지급 한도를 기존 1000%에서 1700% 이상으로 상향하면서 잔여 재원의 절반 이상을 추가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최 회장은 “성과급 1700%에도 만족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3000%, 5000%까지 늘어나도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며 “보상에만 집착하면 미래를 볼 수 없다”며 깊어지는 노사 갈등과 과도한 성과급 요구에 대응했다.
 
 
최 회장의 발언은 단순히 도덕적인 주문이라기보다 SK하이닉스의 현재 재무 상황과 연결된 위기 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올해 6월 말 연결기준 SK하이닉스의 총차입금은 21조8410억원으로 전년 말 대비 8427억원 줄었지만 단기차입금은 같은 기간 5조2522억원에서 8조5000억원대로 반년 새 3조원 가까이 불어나며 차입 구조가 불안정해졌다.
 
같은 기간 현금및현금성자산 또한 11조2051억원에서 9조원대로 줄었다. 전액 상각후원가로 측정하는 금융자산이 차지했다. 해당 항목은 보통 만기가 짧고 원리금 상환이 확정된 채권성 자산으로 은행 예금, 단기 채권, 만기가 3개월 이내인 금융상품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6개월 새 2조원에 달하는 단기 유동성 자원 일부가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가 안전자산에 묶어두었던 현금을 줄여 유동성 부담이 늘었다는 의미다.
 
문제는 앞으로다. SK하이닉스는 단기 차입이 늘어난 상태에서 대규모 AI 반도체 투자 재원까지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적 호조에도 불구하고 유동성 여력이 빠르게 소진되는 만큼, 최 회장이 “미래를 보라”는 메시지를 낸 배경에는 커지는 재무적 압박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글로벌 시장 환경도 우호적이지 않다. 미국 정부가 인텔 지분 취득 검토에 나서는 등 자국 반도체 기업 지원을 강화하고 있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총차입금 규모가 줄었음에도 단기차입금 비중이 커진 것은 차입 구조가 불안정해졌다는 의미”라며 “향후 금리 변동이나 글로벌 자금시장 경색에 따라 차입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하반기 SK하이닉스의 시장 경쟁력이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광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9월께 HBM 수량과 가격 조건이 구체적으로 윤곽을 드러내면 시장은 리스크보다 성장성에 더 집중하게 될 것”이라면서 “여전히 진행 중인 AI 업사이클에서 충분히 기업 가치가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2021년 성과급 갈등 또다시…보수 반납 카드 재현될까
 
성과급을 둘러싼 노사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0년과 2021년에도 SK하이닉스는 각각 5조원, 12조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거두고도 성과급 산정 체계 때문에 논란에 휘말렸다. 당시 회사는 초과이익금(PS) 산정 기준을 자체 지표인 EVA(경제적 부가가치)로 적용했으나, 임직원들은 영업이익과의 괴리를 지적하며 불만을 제기했다. 여론이 확산되자 회사는 결국 영업이익 연동 방식(10%)으로 전환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4년 전과 비슷하게 성과급을 둘러싼 노사 갈등 상황에서 최 회장이 과거처럼 보수 반납 카드를 꺼낼지 주목하고 있다. 2021년 성과급 논란이 고조되자 당시 최 회장은 “받은 연봉을 전액 반납하겠다”고 선언하며 30억원 가량의 연봉을 모두 돌려준 바 있다. 해당 자금은 임직원 복지와 사기 진작에 사용됐다.
 
재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성과급 불만이 확산되면 최태원 회장이 또다른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이 있다”며 “다만 이번에는 AI 투자 확대와 단기차입 부담이라는 구조적 과제가 동시에 존재해 실현 가능성은 높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 SK그룹 측은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성과급 체계와 관련해 지난 번과 같은 연봉 반납 등 다른 방안은 논의 중이지 않다”고 밝혔다.
 
김규리 기자 kk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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