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중국 배터리 사용 본격화…K배터리, 안방서 밀려나나
국내 배터리 업계 영향 불가피
프리미엄 전략 집중하는 K배터리
경쟁력 확보가 관건 평가
공개 2025-06-18 06:00:00
이 기사는 2025년 06월 13일 18:04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권영지 기자] 현대차(005380)그룹이 중국 배터리업체들과의 협력을 확대하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에 경고등이 켜졌다. 그동안 국내 전기차에 일부 보조적 수준으로 쓰이던 중국산 배터리가 점차 핵심 모델에도 탑재되면서, K배터리의 안방시장까지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아 PV5. (사진=기아)
 
한국 진출 본격화하는 CALT·BYD
 
13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최근 중국 3위 배터리 제조사 중창신항(CALB)과 30기가와트시(GWh)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전기차 아이오닉5를 약 3만8000대 생산할 수 있는 물량이다. 현대차그룹은 그간 중국 CATL과 BYD의 배터리를 일부 모델에 제한적으로 적용해 왔지만, 이번 계약으로 중국 주요 배터리 3사와 모두 협력하게 된 셈이다.
 
기아(000270)도 최근 출시한 전기목적기반차량(PBV) PV5에 CATL이 생산한 각형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를 탑재했다. 애초에는 국내 삼성SDI 배터리 탑재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지만, 결국 가격경쟁력에서 밀리며 중국산이 선택된 것이다. NCM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높아 국내 배터리 3사가 강점을 가진 분야로 꼽혀왔지만, 이제 그 시장마저 중국 업체들이 파고들고 있다.
 
그동안 현대차는 코나 일렉트릭 2세대에만 CATL 배터리를 적용했고, 기아도 니로 EV나 레이 EV 일부 모델에 CATL 또는 BYD 배터리를 제한적으로 장착했다. 그러나 최근 중국 내 생산 모델을 중심으로 중국산 배터리 탑재가 확대되고 있다. 기아는 중국에서 생산 중인 EV5에 BYD의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탑재했으며, 베이징현대는 BYD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 일렉시오를 출시했다.
 
현대차그룹이 중국 배터리 업체들과 협력 폭을 넓히는 데는 ‘가격’이라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가격 인하 경쟁이 치열한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고가의 국산 배터리를 고집하기에는 부담이 크다는 분석이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배터리 단가 차이가 클 경우 차량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이는 곧 판매량 감소 문제로 직결된다”고 설명했다.
 
 
 
국산 배터리 글로벌 점유율 ‘감소세’
 
문제는 국내 배터리업계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주도권을 점점 잃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전기차 판매는 2022년 15만8000대에서 지난해 14만대로 감소했다. 전기차 수요 둔화는 배터리 업계의 실적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373220)삼성SDI(006400)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24% 감소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K배터리의 위상은 흔들리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4월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이 26.8% 늘었지만, K배터리 3사의 점유율은 39.0%로 전년 동기 대비 5.1%포인트 감소했다. 특히 삼성SDI는 점유율이 11.1%에서 7.8%로 급락했다. 반면 CATL은 사용량이 36%나 성장해 29.6%의 점유율로 1위를 유지했고, BYD는 사용량이 127.5% 성장해 6위에 올랐다.
 
국내 시장 경쟁도 만만치 않다. BYD는 올해 준중형 SUV 모델 ‘아토3’를 3260만원에 출시하며, 국산 전기차 대비 월등한 가격 경쟁력을 내세웠다. 이미 지난 4월부터 국내 출고가 시작됐으며 누적 출고 대수도 1000대를 넘어섰다. 단순히 배터리 공급자가 아닌 완성차 제조사로서의 존재감까지 확대되는 모습이다.
 
프리미엄 전략 유효할까…전문가들 “글쎄”
 
업계에서는 이런 변화가 국내 배터리 산업의 구조적 전환을 압박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가격 경쟁력에서는 중국 업체를 따라잡기 어렵기 때문에, K배터리는 프리미엄 시장을 겨냥한 고부가가치 전략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중국 배터리 업체는 국가 지원과 거대한 내수 시장 덕분에 원가 경쟁력이 막강하다”며 “국내 업체는 고성능·고신뢰 배터리 등 품질 차별화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위기 속에서도 새로운 기회도 떠오르고 있다. 전기차 시장이 다소 주춤하고 있지만, 충전 인프라 시장은 빠르게 성장 중이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전기차 충전 사업자 매출은 2023년 94%, 2024년에는 71% 증가했다. 충전기 제조에서 운영·관리(CPO)로 사업을 확장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으며, 충전 생태계가 새로운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국내 배터리사들도 사업 다각화에 나서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 외에도 우주선과 자율주행 로봇, 선박, UAM 등 다양한 분야에 원통형 배터리를 공급하며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다. ESS(에너지저장장치) 부문에서도 지난해 50GWh 이상 수주를 확보했다.
 
이 관계자는 <IB토마토>에 “결국 중국과 차별화하는 방법은 성능이 좋은 프리미엄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데 집중을 하되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서 배터리 공급 영역을 넓혀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 의견은 달랐다. 투자업계 한 배터리 전문연구원은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프리미엄 전략도 크게 유의미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중국은 오랜 시간 연구개발과 테스트로 쌓아놓은 노하우가 많은 상태”라며 “국산 배터리가 중국산에 비해 가격경쟁력도 떨어지는데 품질 측면에서도 지면 사실상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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