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통상, 폐쇄 경영 선택…수천억 유보금 '오너 금고' 전락
주당 4100원 공개매수…오너 100% 지배
10년 무배당…유보금 3470억원·유보율 574%
공개 2025-06-17 06:00:00
이 기사는 2025년 06월 12일 10:41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김규리 기자] ‘지오지아’ ‘탑텐’ 등 50년 업력의 국내 토종 의류업체 신성통상(005390)이 지난해 6월 실패했던 자진 상장폐지를 다시 추진하고 나섰다. 회사는 의류시장 위기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상장사 자격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경영 효율화를 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밝혔지만, 그동안 주주환원 정책 없이 회사에 쌓아온 막대한 유보금이 오너 일가의 승계를 위한 실탄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과 주주의 비판을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진=신성통상)
 
두번째 자진상폐 결정…사실상 '주주 청산' 논란
 
1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신성통상의 최대주주인 가나안과 에이션패션은 다음달 9일까지 주당 4100원에 신성통상의 잔여 지분(발행주식총수의 16.13%, 2317만8102주)을 공개매수한 뒤 자진 상장폐지를 추진할 예정이다.
 
신성통상 측은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의류업계 불황이 지속되고 내부 경영에 집중하기 위해 자진 상장폐지를 진행하는 것”이라며 “경영 판단의 효율성과 신속성을 제고하기 위해서 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신성통상의 1·2대 주주는 각각 가나안(지분율 45.63%)과 에이션패션(20.02%)이다. 가나안은 염태순 회장의 장남 염상원 씨가 지분 82.43%를 보유한 사실상 개인회사다. 에이션패션 역시 가나안이 46.5%를 보유하고 있어 오너 일가의 핵심 지배 구도를 구성하고 있다. 이번 공개매수로 목표 지분인 16.13%를 확보하면 염태순 회장과 염상원 씨 등 오너 일가의 지분은 100%가 되며, 현행 자본시장법상 자진 상장폐지를 위한 요건(지분 95% 이상)을 충족하게 된다.
 
결국 이번 자진 상장폐지는 사실상 ‘주주 청산’에 가까운 행보로 평가된다. 염태순 회장의 장남 염상원 씨가 최대주주로서 그룹 전반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기 위한 마지막 절차로 해석되는 이유다. 동시에 수천억원에 달하는 유보금의 활용 투명성과 공정성에 대한 논란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시장에서는 이번 결정이 오너 일가가 외부의 감시 없이 회사 자금을 자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가나안과 에이션패션은 주당 4100원에 잔여 지분을 공개매수해 총 95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할 예정이다. 이는 가나안과 에이션패션이 보유한 현금으로 충당된다. 이후 정리매매 절차를 거쳐 소액주주의 지분이 정리되면 신성통상은 온전히 염태염·염상원 부자의 개인회사가 된다.
 
한 경영학과 교수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수천억원의 이익잉여금이 쌓인 상태에서 이사회 승인만으로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비상장 체제로 전환한다는 것은 경영의 폐쇄성을 더욱 강화하는 조치”라며 “주주 이익은 철저히 배제된 채 오너 일가의 장기 지배력만 강화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브랜드 호실적…이익잉여금은 '사금고행'
 
신성통상의 실적은 외형과 수익성 모두에서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여왔다. 2021년부터 2024년까지의 연결 기준 매출은 매년 완만한 증가세를 기록 중이다. 국내 SPA 시장에서 탑텐의 인지도는 빠르게 상승 중이다. 지오지아를 포함한 남성복 라인도 안정적인 매출 기반을 형성하며 백화점과 아울렛 채널에서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이번 자진 상폐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실적 성장세가 이어지는 동안 주주환원에 인색한 행보를 보이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수천억원 규모의 이익잉여금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결국 상장폐지 이후에는 오너일가의 개인회사에 흡수돼 사금고 역할을 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성통상의 이익잉여금은 2021년 1144억원, 2022년 2010억원, 2023년 2828억원, 2024년 3470억원으로 매년 큰 폭의 증가세를 기록했다. 자본유보율 역시 2020년(218.37%), 2021년(258.41%), 2022년(378.91%), 2023년(492.79%), 2024년 (582.18%)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반면 같은 기간 배당성향은 제로에 가깝다. 2023년 깜짝 배당으로 배당성향 8.68%를 기록한 것을 제외하고는 최근 10년간 무배당 기조를 유지했다. 코스피 상장사 평균 배당성향(20~30%대)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자진 상장폐지가 상법 개정안 통과 전, 오너 일가의 승계를 마무리 짓기 위한 ‘선제적 회피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일반주주의 권익 강화를 위한 상법 개정안이 논의 중이다. 해당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소액주주의 손해를 유발하는 합병·분할·상장 폐지 절차에 대한 견제가 대폭 강화된다. 이 때문에 사전에 시장 자진 퇴출을 통해 승계 작업에 집중할 것으로 보여서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IB토마토>와 통화에서 “여전히 많은 국내 상장사 회장과 전문경영인은 상장 유지에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는다고 착각한다”며 “주주와 국민을 호구로 보기 때문에 오너가의 사익 편취가 끊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경연 대신증권(003540) 연구원은  <IB토마토>와 통화에서  "최근 자사주 공시 의무 강화와 소각 의무화 가능성을 앞두고 자진 상장폐지를 결정하는 기업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상장기업으로서 행동주의 타깃이 되는 것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공개매수를 통한 자진 상장폐지를 선택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신성통상 측은 “상법개정 도입이 있기 전인 지난해 6월에도 자진 상장폐지를 위한 공개매수를 이미 진행한 바 있다”며 “이번 공개매수 건은 회사의 장기적 발전과 위기의 의류산업에 대응하기 위한 내부적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김규리 기자 kk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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