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무대부터 주총까지…'소유와 경영 분리' 원칙 눈길지난해 매출 3조5573억원 역대 최고…올해 5조원 목표자사주 3500억원 매입·8000억원 소각 등 주주 환원 시동
[IB토마토 김규리 기자]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의 장남 서진석
셀트리온(068270) 대표가 그룹 경영 승계를 위한 존재감 드러내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분 없는 오너 후계자'라는 독특한 위치에서 그룹 경영 전면으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 대표는 지난해 매입한 자사주 1억원 외 공식적인 지분율은 미미하지만 주주총회 주재, 자사주 매입·소각 주도, JP모건 등 글로벌 행사 참여 등을 통해 실질적 의사결정권을 강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셀트리온 2공장 전경 (사진=셀트리온)
무지분 경영자…차기 후계자로 입지 다지기
9일 재계에 따르면 서 대표는 국내 30대 그룹 내 주요 상장사 오너 후계자 중 이규호 코오롱 대표와 함께 지분을 보유하지 않은 승계자로 꼽힌다. 서 대표는 의장을 맡고 있는 셀트리온을 비롯해
셀트리온제약(068760), 셀트리온스킨큐어 등 주요 계열사는 물론 지주사 격인 셀트리온홀딩스의 공식 지분도 전무하다. 한화, GS, BGF, CJ 등 주요 그룹들이 오너 일가에 지분을 승계하거나 계열사를 분리하는 행보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서 회장이 강조해온 ‘소유와 경영의 분리’ 원칙 아래 이례적인 무지분 경영 승계를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1984년생인 서 대표는 2014년 생명과학연구소를 통해 셀트리온에 입사한 후 10년 만에 대표로 고속 승진했다. 바이오의약품 연구·개발부문에서 근무했고, 2017년부터는 셀트리온스킨큐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이후 2년 뒤 다시 셀트리온으로 복귀해 주로 이사회에서 활동했다.
2023년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 통합 이후 서 대표는 셀트리온 총괄 대표이사로 선임돼 서 회장과 함께 경영을 이끌고 있다. 서 대표는 건강상의 이유로 주총에 불참했던 서 회장을 대신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주총 의장으로 나서 주가 하락과 공매도 등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주주들을 홀로 달랬다. 제약·바이오 분야 최대 투자 행사인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서도 메인 트랙 발표자로 나서는 등 글로벌 무대에서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셀트리온 측은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서진석 대표는 지난해 1억원 자사주 매입 외 공식적으로 보유한 지분은 없지만 이사회 의장과 회사 대표로서 경영을 이끌고 있다”며 “커지는 국내외 불확실성 속에서도 회사의 흔들림 없는 성장과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서 대표의 '무지분 경영'은 새로운 승계 모델로 주목받고 있지만 여러 과제도 안고 있다. 특히 실질적인 소유권 없이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무지분 경영은 상속세 문제에선 유리할 수 있지만 경영권 방어 측면에선 취약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지분 없이 장기적으로 경영권을 유지하려면 결국 탁월한 경영 성과를 보여주면서 시장과 주주들의 지지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국내에서 오너 지분으로 경영을 세습하는 모습과 달리 일본, 스웨덴 등에서는 단순히 가족이라고 해서 경영을 맡기기 보다 검증을 받는 인물로 오너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이오시장의 위기 속 서대표의 리더십 시험대…쏟아지는 밸류업 정책 주도
서 대표의 경영 행보는 전 세계 바이오 산업이 침체를 겪는 상황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금리 인상과 투자 심리 위축으로 바이오 기업들의 주가가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가운데 셀트리온 역시 녹록지 않은 시장 환경에 직면해 있다.
실적은 일단 한시름 놓았다. 지난해 셀트리온은 연결 기준 매출액 3조5573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63.5% 증가해 역대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그러나 셀트리온헬스케어와의 합병 관련 비용 부담으로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24.47% 하락한 4920억원을, 당기순이익은 22.4% 떨어진 4188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셀트리온은 연매출 5조원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이런 가운데 셀트리온은 최근 주주친화 정책을 대폭 강화하며 업계에서 가장 적극적인 자사주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다. 이를 주도하는 인물 역시 서 대표다.
셀트리온은 지난해 약 4360억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과 7000억원 이상의 자사주 소각을 완료했다. 올 연초부터 세 차례에 걸쳐 총 35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추가 매입했다. 같은 기간 완료했거나 진행 중인 자사주 소각 규모도 8000억원을 넘어섰다. 또한 오는 2027년까지 연평균 매출액 30% 성장, 자기자본이익률(ROE) 7% 이상 유지, 3년간 평균 주주환원율 40%대 달성을 골자로 하는 ‘밸류업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증권업계 한 연구원은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셀트리온의 지속적인 자사주 매입과 소각은 단순한 주가 부양책이 아니라 '무형의 경영권' 확보 전략으로 볼 수 있다"며 "서진석 대표가 지분 없이도 주주들의 신뢰를 얻어 경영권을 공고히 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지 지켜봐야 한다"라고 분석했다.
김규리 기자 kk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