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투자 줄줄이 손실…1년 만에 1600억 증발
업황 악화에 지분 투자 기업 대부분 주가 급락…1633억원 평가손실
2023년 1616억원 평가이익 반영한 것과 대조
이재용 회장 '사즉생·삼성다움' 강조…올 2분기 업황 회복 기대
공개 2025-04-09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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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토마토 김규리 기자] 반도체 시장에 찬바람이 불면서 삼성전자(005930)의 투자 수익까지 얼어붙었다. 지난해 반도체 업황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삼성전자가 투자한 대부분의 반도체 기업 주가가 줄줄이 급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사업보고서 내 타법인출자 현황을 통해 약 1633억원에 달하는 평가손실을 반영하고 해당 기업들의 장부가액을 하향 조정했다. 불과 2023년까지만 해도 이들 기업에서 약 1616억원의 평가이익을 거뒀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적 흐름이 1년 만에 급반전한 셈이다.
 
(사진=연합뉴스)
 
반도체 투자 기업 실적 악화로 삼성전자 지분 가치 '급락'
 
4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단순 투자 및 경영 참여로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반도체 기업은 총 13곳(상장사)이다. 에이테크솔루션(071670), 솔브레인(357780), 원익홀딩스(030530), 동진쎄미켐(005290), 에스앤에스텍(101490) 등 주요 반도체 지분 투자 기업 주가가 지난해 평균 30% 넘게 하락하면서 삼성전자의 투자 손실액도 크게 늘어났다. 이들 대부분 관계사로 편입되지 않는 10% 이내 투자 지분을 보유한 곳으로 지분법 손익 등 연결 회계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삼성전자가 투자사 중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한 곳은 에이테크솔루션이다. 삼성전자 금형사업부에서 분사해 설립된 기업으로 삼성전자가 약 15.9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로부터 2023년 43억원의 수익을 올렸지만, 지난해에는 -84억원의 손실을 냈다. 7% 지분을 투자한 엘오티베큠(083310)도 112억원에서 -149억원을 기록했다.
 
한때 ‘효자 종목’으로 불렸던 솔브레인(지분 5.6%)과 에스앤에스텍(8%)도 주가가 급락하면서 투자 손실을 안겼다. 2023년 한 해 동안 각각 40.5%, 65%으로 높은 주가 수익률을 기록했던 이들 종목은 지난해에는 40% 이상 하락하며 투자 손실 또한 -606억원, -338억원으로 손실 규모를 키웠다.
 
이외 5% 미만 투자 종목도 상황은 비슷하다. 원익(032940)아이피에스(-214억원), 동진세미켐(-439억원), 디엔에프(092070)(-122억원), 에프에스티(036810)(-135억원), 뉴파워프라즈마(144960)(-17억원), 케이씨텍(281820)(-7억원), 원익홀딩스(-14억원) 등 전년도에 흑자를 냈던 투자 기업은 일제히 투자 손실로 돌아섰다. 반도체 소재, 장비 전반에 걸친 기업들의 동반 하락은 산업 전체의 침체를 여실히 보여주면서 삼성전자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흔들었다.
 
삼성전자 역시 이러한 업황 악화의 영향을 피하지 못했다. 지난해에만 주가는 40% 이상 하락하면서 ‘5만전자’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여전히 벗지 못하고 있다. 시장 회복의 징후가 아직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 하락 우려까지 제기된다. 주력 사업인 반도체 분야의 부진에 지분 투자 손실까지 겹치면서 삼성전자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모습이다.
 
다만 전반적인 침체 속에서도 반도체 장비 검사 전문기업 와이씨(232140)에서 유일하게 성과를 거뒀다. 와이씨는 2020년 삼성전자로부터 473억원 첫 투자를 유치한 후 지속적으로 협력관계를 강화해 온 곳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86.65%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하면서 501억원 수익을 내 삼성전자의 투자 손실을 일부 상쇄했다.
 
삼성전자는 와이씨 지분 11.7%를 소유한 2대 주주다. 특히 삼성전자에서 25년간 근무하며 주요 사업을 이끌었던 장성진 전 부사장이 지난 2월 퇴임 이후 한달 만에 와이씨 신임 대표로 자리를 옮기면서 시장의 이목이 집중된 곳이기도 하다. 대표 취임과 비슷한 시기에 와이씨는 삼성전자와 511억원 규모의 장비 납품 계약을 따내는 등 더욱 관계가 공고해지는 모양새다.
 
삼성전자 측은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회사는 시황에 맞춰 투자 포트폴리오를 유연하게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재용의 '사즉생' 주문…본업인 반도체 기술 강조
 
삼성전자는 최근까지 휴머노이드, 인공지능(AI), 바이오 등 미래 신산업을 발굴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나 반도체 사업에서는 범용(레거시) 메모리 부진과 고대역폭 메모리(HBM) 납품 지연 등의 이슈가 겹치면서, 지난해 실적은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직접 나서 ‘사즉생’ 각오를 다지며 '삼성다움의 가치'를 되새겼다. 결국 삼성의 핵심 경쟁력인 반도체 회복을 다시 요구한 셈이다.
 
이 회장은 최근 임원 회의에서 “기술 중시와 선행 투자라는 전통을 반드시 이어가야 한다”며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이다”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진다. 기술 경쟁력 강화를 통해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재확인한 셈이다.
 
시장의 시선은 이전보다 낙관적이다. 올해 2분기부터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본격적으로 회복세에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삼성전자가 지분을 보유한 기업들의 실적 반등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장비 및 소재 기업들은 제조사들의 투자 확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만큼 업황이 되살아날 경우 삼성전자의 포트폴리오 수익성도 빠르게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트럼프가 언급한 반도체 관세 여부와 무관하게 삼성전자 중심으로 반도체 업종이 살아날 가능성이 높다”면서 “레거시(범용) 메모리(디램, 낸드) 가격은 오는 2분기 상승예상되며 올해 업황 및 실적 턴어라운드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김규리 기자 kk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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