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수·합병(M&A) 시장이 전반적인 침체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대기업들의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에 따른 대형 거래가 새로운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경기 둔화 속에서 주요 기업들이 유동성 확보에 나서면서, 사모펀드(PEF)가 주도하는 ‘빅딜’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IB토마토>는 올해 성사 가능성이 높은 주요 대형 M&A 거래들을 조망하고, 그 배경을 짚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홍준표 기자] 맥쿼리자산운용이 국내 산업용 가스 3위 기업 DIG에어가스의 매각에 속도를 내며 올해 인수합병(M&A) 시장의 최대어 중 하나로 부상했다. 매각 희망가는 5조원에 달하지만, 지난해 실적이 시장 기대를 밑돌며 4조원대로 조정될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반도체 업황 회복으로 글로벌 사모펀드(PEF)들의 치열한 인수 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기대되나 트럼프 정부의 고율 관세 정책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맥쿼리자산운용은 DIG에어가스 매각 주관사로 JP모간과 골드만삭스를 선정한 뒤 법률 자문사에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선임하면서 매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주요 인수 후보에게 최근 티저레터(투자 안내문)를 발송했고, 예비 입찰은 오는 5월에 실시될 예정이다. 매각 대상은 DIG에어가스 지분 100%며, 매각 희망 가격은 5조원으로 알려졌다.
DIG에어가스는 1979년 대성산업과 글로벌 산업용 가스 기업인 프랑스 에어리퀴드가 합작해 설립했다. 대성산업이 재무상황 악화로 2017년 MBK파트너스에 1조8000억원에 회사 경영권을 매각했고, 이후 2년 뒤 맥쿼리자산운용이 MBK파트너스가 보유한 지분 100%를 2조5000억원에 인수해 DIG에어가스로 상호를 변경했다.
DIG에어가스 공장 전경(사진=DIG에어가스)
EBITDA 추정치 하회…몸값 떨어지나
맥쿼리자산운용이 인수한 이후 DIG에어가스의 실적은 상승세였다. 2019년 5914억원에 그친 DIG에어가스 매출은 2023년 7312억원으로 4년 만에 23.7%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4.9% 늘었고, 순이익은 354억원에서 1227억원으로 3.5배가량 급증했다.
매각가로 5조원이 거론되는 이유는 DIG에어가스의 지난해 상각전영업이익(EBITDA) 추정치 2500억원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멀티플(거래배수) 20배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산업용 가스 회사는 확정적인 미래 실적까지 고려해 몸값을 책정하기 때문에 통상 EBITDA 멀티플 20배를 적용한 가격에 거래된다.
그러나 지난달 전자공시시스템에 발표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DIG에어가스의 지난해 EBITDA는 2106억원으로 추정치를 밑돌면서 매각가는 4조원 안팎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지난해 에어프로덕츠코리아의 매각가가 연간 EBITDA 추정치 3000억원를 기준으로 멀티플 약 16배인 5조원에 거론됐던 점을 감안하면, DIG에어가스는 당초 예상 매각가보다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에어프로덕츠코리아는 가스를 공급하기로 했던
삼성전자(005930) 평택캠퍼스 5공장(P5) 건설이 전면 중단되면서 실적 전망치가 대폭 하향 조정, 이에 따라 경영권 매각도 전면 취소된 바 있다. 당시 시장에서 거론되던 몸값 5조원은 에어프로덕츠코리아 2023년 EBITDA(2328억원)에 P5에서 얻게 될 연간 EBITDA 추정치 약 750억원을 더한 뒤 16배를 곱한 수치다. 그러나 건설 중단으로 750억원이 빠져 연간 EBITDA의 16배는 약 3조7000억원에 불과, 끝내 매각은 취소됐다.
트럼프 정부의 '고율 관세' 변수
향후 매각 성사나 몸값을 좌우할 변수로는 반도체 업황 전망이 꼽힌다. 산업용 특수가스는 일반적인 산업용 가스와 달리 주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기차 배터리 등 정밀성을 요구하는 산업군에 사용되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황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좋지 않았다. 그러나 메모리 값이 반등했고, 삼성전자도 8일 발표한 1분기 잠정 실적이 컨센서스를 크게 상회하면서 힘이 실렸다. 업계에선 일시적 반등이 아닌 실적 개선의 시작이라는 진단이 나오면서 업황에 대한 기대감은 긍정적인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그러나 일각에선 아직까지 낙관하기엔 이르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를 품목별 관세 부과 대상으로 직접 언급했기 때문이다. 현재 반도체는 상호관세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그러나 철강, 자동차처럼 25% 수준의 고율 관세가 적용될 경우 업황 회복 흐름은 다시 꺾일 수 있다는 우려다.
DIG에어가스 인수전에는 지난해 에어프로덕츠코리아 M&A에 참전했던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칼라일, 브룩필드 등 글로벌 사모펀드가 뛰어들 전망이다. 환율 효과로 해외 자본이 한국에 투자하기에도 유리한 상황이다. 특히 KKR를 비롯한 일부 사모펀드는 2022년 SK머티리얼즈에어플러스와 지난해 에어프로덕츠코리아 인수전에 참전했지만, 결국 매각이 중단되면서 이번 인수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기업 중에선 2023년 산업가스 사업부를 신설한 포스코도 유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된다. 포스코 산업가스 사업부는 지금까지 계열사에 산업용 가스를 공급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DIG에어가스를 인수하면 시장 점유율 확대를 노릴 수 있다.
홍준표 기자 junpy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