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개점휴업 상태였던 인수합병(M&A)시장이 활기를 되찾고 있다. 시장에선 조 단위 매물이 연이어 나오기 시작했고 사모펀드(PEF)를 비롯한 자본시장 참가자들은 새로운 기회를 앞두고 채비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국내 대표 사모펀드 운용사인 한앤컴퍼니는 최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키플레이어'로 꼽히는 한앤컴퍼니의 고전은 현재 M&A 시장을 반영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IB토마토>는 한앤컴퍼니 사례를 통해 2024년 하반기 M&A시장을 진단하고 향방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최윤석 기자] 한앤코는 최근 4조7000억원 규모 펀드 조성을 마무리했다. 당초 목표치를 상회하는 결과로, 펀드 조성 전부터 한앤코는 펀드의 2차 클로징 자금을 통해 새로운 포트폴리오 구성을 진행했다. 이번에도 한앤코는 인수합병으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볼트온(Bolt-on)'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 전략은 한앤코의 강점이자 약점이 되고 있다. 기업의 규모 확대 과정에서 재무구조가 악화되고 지속성에서도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4조7000억원 규모 4호 펀드 조성 마무리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앤코는 최근 약 4조7000억원(35억달러) 규모의 4호 블라인드 펀드 조성을 마치고 현재 포트폴리오 구성을 진행 중이다. 해당 펀드는 당초 4조4000억원 목표로 조성이 진행됐으나 초과 달성해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에서 결성된 투자 펀드 중 최대 규모로 기록됐다.
(사진=한앤컴퍼니)
이번 4호 펀드는 한앤코의 중장기 사업의 핵심이다. 앞서 한앤코는 지난 2011년 1호 펀드를 약 7억5000만 달러로 결성한 것을 시작으로 2014년 2호 12억달러, 2019년 3호 26억달러 규모 조성에 성공해 매번 성장을 이뤄왔다. 4호 펀드는 이전에 비해 규모가 2배 이상되는 만큼 턴업을 위한 발판이라는 평가다.
한앤코는 4호 펀드의 첫 번째 포트폴리오로 미용의료기기 업체 루트로닉을 선택했다. 한앤코는 2조5000억원 규모이던 펀드 2차 클로징 시점부터 루트로닉 인수를 추진했다. 총 투자 규모는 9570억원으로 당시 최대주주 황해령 루트로닉 대표의 지분 514만6304주를 주당 3만6700원에 매수했고 일반 개인주주를 대상으로 공개매수를 진행해 7715억원 어치를 사들였다.
한앤코는 루트로닉에서도 역시 볼트온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올 1월 한앤코는 루트로닉을 통해 미국 피부재생 의료기기 기업 사이노슈어를 3500억원에 인수했다. 해외 업체 인수를 통한 해외판매망 확충과 더불어 사업 간 시너지를 노린다는 계획이다.
재무건전성 악화, 고배당 등 볼트온 전략 부작용
4호 펀드 운용에서도 한앤코의 볼트온 전략을 계속될 전망이다. 하지만 볼트온 전략은 한편으론 투자자 이익 극대화에만 초점이 맞춰진다는 비판을 받는다. 실제 한앤코로 경영권이 넘어간 쌍용C&E의 경우 회사채 발행에서 재무 건전성 악화로 인한 미매각이 발생했다.
지난 6월 쌍용C&E는 10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서 2년물 700억원 모집에 380억원의 매수 주문을 받는 데 그쳤다. 300억원 규모 3년물에선 320억원 주문을 받아 가까스로 목표 물량을 채웠지만 주력인 2년물에선 목표액의 절반 정도만 겨우 채웠다.
수요예측 미매각은 건설경기 침체 장기화에 따른 실적 부담과 더불어 한앤코에 대한 배당 확대, 공개매수와 자진상장폐지 과정에서의 재무안정성 악화가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 100% 지분 인수가 진행되기 시작한 1분기까지 쌍용C&E의 건전성 지표는 악화일로다. 1분기 쌍용C&E의 총차입금은 지난 1분기까지 1조8139억원으로 불어났다. 보유 현금성 자산을 제외한 순차입금 또한 지난 1분기 기준으로 1조6375억원을 기록해 2023년 말 1조2920억원에서 불과 3개월만에 26.7% 증가했다. 부채비율 또한 기존 130.5%에서 71.2%p 증가한 201.7%를 기록했다.
취약해진 건전성에 신용평가도 하향 조정됐다. 올 3월 한국신용평가와 NICE신용평가는 각각 쌍용C&E의 신용등급 전망을 ‘A(안정적)’에서 ‘A(부정적)’으로, ‘A(안정적)’에서 ‘A(부정적)’로 하향 조정했다.
신용평가사 한 관계자는 “공개매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차입금 조달과 자기자본 감소로 쌍용C&E의 1분기 부채비율은 200%를 상회했고, 차입금의존도도 49.8%까지 치솟았다”라며 “대규모 투자와 배당으로 차입금이 큰 폭 늘어난 상황에서 공개매수를 진행해 재무구조가 나빠진 점은 우려된다”라고 평가했다.
강점이자 약점 된 볼트온 전략
한앤코는 수익 구조가 안정적인 기업을 인수해 비용을 절감하고 규모를 키우는 볼트온 전략을 통해 규모의 경제와 고배당으로 수익을 실현해왔다. 이는 펀드에 출자한 투자자 입장에선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하게 하는 긍정적인 요소다. 하지만 기업의 지속성과 건전성 측면에선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 한앤코는 볼트온 전략이 매각 과정에서 노조의 반대를 불러일으켜 회사 인수에 실패한 바 있다. 지난 2019년 롯데카드 매각에서 롯데그룹은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한앤코를 선정했다. 하지만 선정 직후 노조의 격렬한 반대에 직면했다.
당시 롯데카드 노조는 성명문을 통해 “단기간 내 차익을 거둬 되파는 사모펀드 특성상 투자 없이 비용만 줄이는 구조조정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라며 “한앤컴퍼니 매각을 백지화하지 않을 경우 집단행동에 나설 것”이라 밝혔다.
결국 롯데그룹은 그해 5월 한앤코와의 배타적 우선협상기간 만료 직후 우선협상대상자를 한앤컴퍼니에서 MBK파트너스와 우리은행 컨소시엄으로 전격 교체했다. MBK파트너스도 노조가 반대 입장을 낸 사모펀드였지만 MBK파트너스는 5년간 고용보장을 조건으로 내걸어 노조의 반대를 무마시킬 수 있었다.
다만 한앤코에 대한 이 같은 시선에 대해 이는 사모펀드라는 사업구조가 갖는 태생적인 한계 때문이라는 항변도 나온다. 사모펀드는 때에 따라 기업 운영의 주체가 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시장에 자금을 융통하고, 이를 통해 기업이 지속성을 갖도록 한다는 논리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한앤코를 비롯한 사모펀드에 대한 시선이 개인투자자부터 금융당국에 이르기까지 곱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개별 기업이 아닌 국가 경제와 산업 전반을 놓고 볼 때 사모펀드의 자금 운용은 어느 기업에는 단비가 될 수도 있고 경영 선진화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